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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동안 시험감독 없이 시험을 치룬 고등학교

  • 강병진
  • 입력 2016.03.10 08:37
  • 수정 2016.03.10 08:38
ⓒ연합뉴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올해로 개교 62주년을 맞은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학생들의 중간·기말고사는 늘 특별한 다짐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은 1교시 시험 시작 5분 전 다 함께 손을 들고 '무감독 시험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라는 선서를 한다.

이후 매 교시 시험 시작에 앞서 양심과 명예를 지키겠다는 구호를 힘차게 외친다.

고사 담당교사는 선서와 구호 제창이 끝나면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교실 밖으로 나간 뒤 종료 10분 전 돌아와 답안지를 교환·회수하고 시험을 마친다.

반세기 넘는 세월 수많은 명사를 배출한 이 학교 3만7천여 동문이 자랑으로 여기는 전통은 60년 전 시작됐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개교 당시 초대 교장을 맡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고 길영희 선생(1900-1984)은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해 온 교육 계획 하나를 실천에 옮겼다.

바로 감독 교사 없이 학생들 스스로 시험을 보는 제도였다.

1956년 1학기 중간고사가 처음 무감독 아래 치러졌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당시 전교생 569명 가운데 53명이 60점 이하를 받아 낙제한 것이다.

길영희 교장은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낙제생들에게 "제군들이야말로 믿음직한 한국의 학도"라고 오히려 칭찬한 뒤 "다음에 더 열심히 노력해 진급하라"고 격려했다.

다음 학기에 이들은 모두 시험을 통과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학교 교훈인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무감독 시험은 도입 당시에는 구국운동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무감독 시험은 대학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내신 성적의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가 제기돼 존폐 논란을 겪었다.

그러나 학생, 학부모, 교사, 동문 설문조사를 통해 제도의 우월성이 인정돼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계속 시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제물포고 박성우 교감은 9일 "양심적 참인간이 사회의 올바른 지도층이 되고 사회 정의를 이룰 초석이 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 오랜 시간 이 제도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물포고 총동창회는 무감독 시험제도를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동문 출신 교수 4명이 무감독 시험 60년의 성과와 의미를 짚는 연구 용역을 마쳤다.

총동창회 관계자는 "제물포고가 무감독 시험을 처음 시행한 이후 현재 국내 10여개 중·고교가 이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아직 시험제도가 문화재로 등록된 사례는 없지만 국내 최초·최장 무감독 시험으로 가치가 큰 만큼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제물포고 학생들이 대를 이어 60년간 다짐해온 양심의 선서는 목적과 결과에 매달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무감독 시험은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감독 시험의 정신을 생명으로 압니다. 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서는 우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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