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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8일 06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9일 14시 12분 KST

청년은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정치는 제도적 힘이다. 힘을 가진 자는 절대로 쉬이 내놓지 않는다. 직접 참여해서 빼앗아야만 한다.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듯 한두 자리 젊은이를 끼워 넣어 구색 맞추는 수준의 정치로는 청년의 미래가 개선되지 않는다. 청년 스스로 주도적으로 정치에 나서야 한다. 여의도만이 정치 무대가 아니다.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자신이 속한 모든 공동체가 바로 정치의 장이다. 이 모든 장에서 기성 정치인의 기득권을 무너뜨려야만 바라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

Gettyimage/이매진스

오랜 논란과 갖가지 파행 끝에 마침내 국회가 선거판을 마련했다. 의원 정수,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배분, 선거구 획정, 이 모든 것이 정치 기득권자들의 담합에 불과하다는 냉소가 따른다. 20대 총선이 한 달 남짓 후인데도 아직 많은 것이 오리무중이다. 정당의 후보들이 확정된 후에 어떤 파장이 일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여당에는 임기 후반에 접어든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과 퇴임 후의 거취가 걸린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살생부' '여론조사 결과 유출' 등 심상치 않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헤쳐 모여'와 '이합집산'은 야당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이념이나 정책보다 오로지 당선이라는 목전의 이해에 혈안이 되어 준동하는 모습에 식상한 국민이 한둘 아니다.

여의도 패거리들의 행태는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가중시킨다. 과거보다 미래가 창창한 청년 세대에는 가히 절망적인 풍경이다. 안 그래도 '헬조선!'을 무슨 아이돌 가수 이름처럼 입에 달고 사는 청년들이다. 높은 실업률과 자살률이 상징하는 한국 젊은이의 일상은 어둡기 짝이 없다. 부모, 조부모 세대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성공 스토리도 감동 없는 독경(讀經) 소리에 불과하다. '되돌아보기'가 아니라 '내다보기'로 자신과 사회를 설계해야 할 세대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대학 입시와 취업 전선에 꽁꽁 묶여 꿈조차 빼앗겼다. 행여 내 앞가림에 더하여 좋은 나라, 바른 사회 만들기를 꿈꾸는 청년이 있다면 그는 현실의 '루저'가 되기 십상이다.

청년이 열정을 잃은 나라는 장래가 없다. 열정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하곤 하는 것이 청년의 미덕이다. 정치는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기울기 마련이다. 정치는 모든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청년의 분노와 열정이 정치의 광장에 표출되어야 한다. 청년은 미래의 주인이기에 앞서 엄연한 현재의 주권자이다. 민주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양성되는 것이다. 스스로 주인 의식에 충만한 시민이라야만 민주 시민의 자격이 있다.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전형적인 국회의원의 모습은 결코 건전한 시민이 아니다. 바깥세상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의 입신출세에 매진한 사람이 여당 의원이 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패와 타락에 둔감해진다. 야당 의원은 어떤가? 사연이 무엇이든 평생 변변한 직장조차 없이 지낸 건달이 태반이다. 그러니 '새 정치' '새 사람' 구호에 청년들이 쉽게 귀를 내주는 것이다. 그러나 구호를 듣기만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정치는 제도적 힘이다. 힘을 가진 자는 절대로 쉬이 내놓지 않는다. 직접 참여해서 빼앗아야만 한다.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듯 한두 자리 젊은이를 끼워 넣어 구색 맞추는 수준의 정치로는 청년의 미래가 개선되지 않는다. 청년 스스로 주도적으로 정치에 나서야 한다. 여의도만이 정치 무대가 아니다.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자신이 속한 모든 공동체가 바로 정치의 장이다. 이 모든 장에서 기성 정치인의 기득권을 무너뜨려야만 바라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 청년에게 선거는 주인 되는 교육과 훈련이다. 자신이 사는 세상, 살아야 할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가장 기초적인 과정이다. 단 하루만의 주인이라도 좋다. 4월 13일,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많은 나라에서 분노한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우리의 역사도 그랬다. 1960년의 4·19도, 1987년의 6·29도 청년이 쟁취한 위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지난 1월에 치러진 타이완 선거에서도 청년의 힘은 위대했다. 생전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 '서우투(首投)'족은 사사건건 베이징에 휘둘리는 국민당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4·13 총선의 결과가 '정권 심판'이 되든 '야당 심판'이 되든 길게 보면 대수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기성 정치의 틀 속에서 청년은 곁다리 장식물에 불과하다.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장구한 세월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결정에 내맡긴 채 수수방관할 것인가? 새삼 청년 주권자의 각성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가 끝나는 즉시 '청년정당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적 경륜이 일탈과 부패의 체질화로 직결되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나라의 장래가 암담할 뿐이다. 보다 나은 세상의 밑거름을 후손에게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앞선 세대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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