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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8일 04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9일 14시 12분 KST

스포트라이트

영화는 보스턴의 시가지, 주택가, 펍 등을 자주 비춘다. 궁금해진다. 거기엔 희망이 있습니까? 더 나아질 수 있습니까? 고통이, 고통받는 이들이 줄어들 수 있나요? 불의와 타협하거나 기죽어 사는 이들이 적어질까요? 다른 주인공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들도 힘들어했고, 은연중에 누군가가 터뜨려주기를 바랐고, 중요한 순간엔 돕고....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제도보다 문화다. 나쁜 걸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를 지지하고 갈채를 보내는 문화가 있는 사회.

팝엔터테인먼트

필리버스터 때문에 유명해진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1939년 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필리버스터의 승리로 끝난다. 초짜 상원의원 스미스가 재벌과 정치인이 야합해 만든 댐 건설 예산안을 막으려고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 대다수 의원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방청석을 찾고 기자들도 스미스에게 동조하지만 재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언론의 보도는 스미스에게 적대적이다. 연설 시작 23시간이 지나 스미스는 체력 고갈로 기절하는데, 재벌과 야합했던 선배 의원이 양심선언을 해서 스미스의 승리로 끝난다.

프랭크 캐프라의 영화엔 일관되게 미국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낙천적 시선과 민중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다. 그런 그의 영화가 한때 위기에 처했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먹여 살릴 정도로 흥행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후배 감독 존 캐서베티스(카사베츠)는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던 1970년대 중반에 쓴 한 책에서 "진짜 미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프랭크 캐프라만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을 때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생각났고, 영화와 실제의 여러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엔딩이 다를 것이라는 씁쓸한 예상이 적중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존 캐서베티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곤 정치 제도와 상황이 늘 좋은 나라는 없고, 좋고 나쁨도 상대적인 차이인 만큼 민주주의는 항상 싸우면서 지키고 발전시켜가는 과정 그 자체일 거라는, '공자 말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씁쓸한 상태에서 얼마 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를 봤다.

보스턴 가톨릭 교구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추적했던 기자들의 실제 이야기란다. 신문사 탐사보도 팀의 기자 서너 명이 8개월 넘게 취재에 매달린다. 이런 이야기면 십중팔구 주인공 기자에게 양념을 친다. 이미 초심을 잃은, 닳고 닳은 기자에게 이 사건이 다시 초심을 강제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기자 자신이 어릴 때 성추행당했다거나 하는 개인적 동기를 집어넣는다. 주인공을 '관찰자'에서 보다 더 '당사자'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 영화는 안 그런다. 모두가 직업을 수행할 뿐이다. 심심한 것 같은데 보다 보면 다른 주인공이 나타난다. 성추행한 신부가 서너 명에서 십여 명으로, 십여 명에서 칠십 명으로 늘어날 때, 발각된 신부가 처벌되지 않고 병가나 전출 처리되고 있음이 드러날 때, 기자들은 스스로 놀라고 서로의 놀라는 모습을 확인한다. 그들이 살아온 보스턴 사회는 낯선 관찰 대상으로 괴물처럼 들어선다. 그리고 나타나는 또 다른 주인공은 성추행 사건을 소리 없이 합의시키기에 바빴던 검사, 변호사, 기록 은폐를 묵인한 판사, 성추행 사실을 알거나 스쳐 들었던 가족과 친지 등 보스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영화는 보스턴의 시가지, 주택가, 펍 등을 자주 비춘다. 궁금해진다. 거기엔 희망이 있습니까? 더 나아질 수 있습니까? 고통이, 고통받는 이들이 줄어들 수 있나요? 불의와 타협하거나 기죽어 사는 이들이 적어질까요? 다른 주인공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들도 힘들어했고, 은연중에 누군가가 터뜨려주기를 바랐고, 중요한 순간엔 돕고....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제도보다 문화다. 나쁜 걸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를 지지하고 갈채를 보내는 문화가 있는 사회.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보스턴 아닌 서울을 향해 '거기엔 희망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 나를 발견했다. 앞에 말한 '공자 말씀'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극장을 나왔다. 서울 시내를 걸었다. 봄이 와 있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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