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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이어』 속 야생의 고담 | 앨런 무어와 스웜프 씽의 족적

앨런 무어는 고담 시를 배경으로 아주 특별한 이야기 하나를 선보인다. 내용은 이렇다. 식물인 스웜프 씽과 인간인 애비 케이블이 육체관계(?)를 나누는 장면이 누군가에게 촬영되어 유포된다. 애비는 대중의 마녀 사냥을 당해 고담에 붙들려 간다. 분노한 스웜프 씽은 무서운 속도로 고담을 향하여 질주하여 고담의 법정의 모든 사람들을 덩굴 속에 붙잡아두고 애비를 석방하라 경고한다.

  • 이규원
  • 입력 2016.03.07 12:57
  • 수정 2017.03.08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23] 『제로 이어』 속 야생의 고담

─ 앨런 무어와 스웜프 씽의 족적

이번에는 뉴52 배트맨 4권과 5권 『제로 이어』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배트맨 팬에게 가장 와 닿을 역사의 흔적은 4권 88~89쪽에 있다. 악당의 목을 왼팔에 끼고 하늘을 나는 배트맨 아래에서 다른 악당들이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 장면은, 사실 《디텍티브 코믹스》 27호의 커버를 오마쥬한 것이다.

배트맨의 데뷔작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만화책인 《디텍티브 코믹스》 27호의 커버를 오마쥬한 『제로 이어 - 비밀의 도시』본문 속 장면.

(이미지 출처 위: http://dc.wikia.com/wiki/Detective_Comics_Vol_1_27?file=Detective_Comics_27.jpG, 아래: 세미콜론)

그 다음은 프랭크 밀러가 1986년에 쓴 작품으로 배트맨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 1호의 커버를 오마쥬한 5권의 장면이다, 국내에는 2권의 책으로 묶여져 출판이 되었지만, 원래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전체 4호의 리미티드 시리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오마쥬는 후속권인 뉴 52 배트맨 7권인 『엔드게임』에서도 이어지는데, 갑옷을 두른 배트맨이 슈퍼맨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장면, 모든 싸움을 뒤로 한 후 코스튬을 벗은 웨인이 고담의 거리를 걷고 있는 장면 등도 그렉 카풀로 식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배트맨의 기원을 다룬 『비밀의 도시』에 이어, 『어둠의 도시』에서는 곧 개봉 예정인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에도 큰 영향을 준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표지를 오마쥬했다.

(이미지 출처 왼쪽: http://dc.wikia.com/wiki/Batman:_The_Dark_Knight_Returns_Vol_1_1?file=Batman_-_Dark_Knight_Returns_1.jpg, 오른쪽: 세미콜론)

DC 유니버스의 시대 구분

그러나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특별한 비밀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제로 이어』의 거대한 줄거리를 이루는 야생의 도시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그 기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모던 에이지' DC 유니버스의 기원과도 맞닿아 있다.

우선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서 DC 유니버스의 시대 구분을 잠깐 소개한다. 대공황으로 침체된 사회, 거리를 장악한 갱단들, 그 갱단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범죄와의 전쟁. 슈퍼 히어로는 1930년대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탄생했다. 1930년대에 슈퍼맨과 배트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등의 DC 만화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가 전쟁이 끝나고, 만화책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주장이 미국 전역에 들끓고, TV 등의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는 등 환경이 변하면서 1950년대 급격히 인기가 떨어졌다. 이 첫 번째 시대를 '골든 에이지'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1960년 케네디 대통령, 비틀즈와 같은 새로운 대중문화 아이콘의 등장, 미국의 우주 탐사, 그리고 영국에서 건너온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소설 등이 미국을 휩쓰는 시대가 온다. 마블 코믹스는 새로운 도전 앞에 놓인 청년들에게 새로운 슈퍼 히어로들을 소개하였는데, 그들이 판타스틱 포, 스파이더맨, 어벤저스 등이었다. DC 코믹스는 자사의 슈퍼 히어로를 상황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했고, 기존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대신 저스티스 리그가 탄생하였다. 이 시기가 슈퍼 히어로의 새 부흥기인 실버 에이지다.

1970년대에 DC에서는 배트맨과 그린 애로우, 그린 랜턴 등의 캐릭터로 당시 마약, 알코올 중독, 인종 차별, 베트남전 후유증 같은 사회 이슈들 속에 슈퍼 히어로를 직접 뛰어들게 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같은 시기 마블에서는 야만인 코난과 스타 워즈 등이 인기를 얻었고, 스파이더맨은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을 통해 더 큰 상실과 절망으로 빠져든다. 아이언맨의 알코올 중독을 다룬 '병 속의 악마'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오늘날 마블의 인기 캐릭터인 '팔콘', '블랙 팬서', '루크 케이지', '스톰', '블레이드', DC의 인기 캐릭터인 '존 스튜어트(그린 랜턴)', '블랙 라이트닝', '사이보그' 등 흑인 히어로들이 모두 이 시대에 태어났다. 퍼스트 클래스 다섯 멤버로 운영되던 엑스맨은 캐나다의 울버린, 러시아의 콜로서스, 아프리카의 스톰, 미국 원주민인 썬더버드, 일본의 썬파이어 등 다양한 국가와 인종으로 구성된 새로운 멤버진을 선보였다. DC에서는 이 시대를 브론즈 에이지라고 한다.

그리고 흔히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왓치맨』, 그리고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로 대표되는 1985~1986년을 기점으로 모던 에이지가 시작된다.

스웜프 씽

그런데 브론즈 에이지 시기에 DC에서 크게 인기를 쳤던 만화 시리즈 중에 《스웜프 씽》이라는 만화가 있다. 주인공인 늪지 괴물을 창작한 작가는 렌 윈. 그는 앞서 이야기한 마블 코믹스 엑스맨을 새로이 탄생시킨 작가로도 또한 유명하다. 주인공은 알렉 홀랜드다. 과학자인 알렉 홀랜드는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는 생명 복원 화학식을 발명한다. 그런데 이 화학식이 창출할 수 있는 막대한 부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자들이 홀랜드에게 거래를 제안하는데, 그가 거부하자 무력으로 쓰러뜨린 후에 폭탄을 설치해 연구실을 폭파시킨다. 홀랜드는 폭발 속에 온 몸이 화염에 휘감긴 채 근처의 늪지로 뛰어드는데, 얼마 뒤 늪지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스웜프 씽》 스토리는 렌 윈 이후 《아이언맨》의 걸작으로 꼽히는 '병 속의 악마', '아머 워즈' 등의 작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미클라이니를 거쳐서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총 24이슈로 인기리에 출판이 되었고, 이 시리즈를 1982년에 오늘날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영화화한다. DC에서는 영화 개봉에 맞추어 《사가 오브 스웜프 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2번째 시리즈 출판을 시작한다. 새로운 시리즈의 작가는 당시 슈퍼맨, 원더우먼,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등 DC의 대표 타이틀에서 활약하던 베테랑 작가 마틴 파스코였다. 파스코는 스웜프 씽의 이야기를 괴물로 변한 과학자의 복수극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결합한 새로운 모험을 선보였고, 20호를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를 떠난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전설이 시작된다. 영국 출신의 31살의 작가. 앨런 무어가 그의 뒤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스크림」의 웨스 크레이본이 감독한 「스웜프 씽」 영화판의 포스터. 《House of Secret》라는 잡지의 단편으로 처음 시작되었던 이 시리즈를 통해 DC의 인기 캐릭터 콘스탄틴이 탄생하였으며, 21호부터 진행된 리부트는 천재 앨런 무어의 미국 데뷔작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wamp_Thing_(film)#/media/File:Swampthing.jpg)

앨런 무어

DC 코믹스의 만화 시리즈에 그 족적을 남기기 전 앨런 무어는 철저하게 감시되고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 권력에 도전하며 혁명을 일으키는 무정부주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브이 포 벤데타』, 그리고 정 반대로 권력이 만들어낸 강력한 초인과 무섭고도 위험한 힘과 폭력에 도취된 초인을 그린 『마블맨』(저작권 문제로 이후 미라클맨으로 제목이 바뀌었고, 작가 이름에서도 앨런 무어의 이름이 지워졌다. 국내에는 『미라클맨』으로 출판.)이라는 두 히어로의 이야기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두 이야기는 신비한 초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1980년대 영국 사회가 겪던 사회 갈등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왓치맨』으로 만화책 사상 처음으로 SF 문학상인 휴고 상을 받은 전설의 작가 앨런 무어. 그가 같은 시기 그려낸 상반되는 두 작품, 『브이 포 벤데타』와 『미라클맨』의 표지.

(사진 제공: 시공사)

그런 앨런 무어에게 주목한 DC 코믹스의 편집자들은 《스웜프 씽》을 그가 원하는 어떤 식으로든 써도 좋다고 허락하면서까지 그에게 스토리를 부탁한다. 창작의 자유를 부여받은 무어는 렌 윈이 탄생시킨 괴물이 된 과학자의 복수극, 파스코가 덧붙인 신비주의의 레이어 위에 생각지도 못했던 상상력의 향연을 펼쳤다.

알렉 홀랜드는 늪지 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었으며, 지구의 영혼인 가이아가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엘리멘탈 아바타라는 것이다. 홀랜드의 영혼은 그저 식물의 몸체에 갇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이 밝혀짐과 함께 스웜프씽의 숙적인 안톤 아케인의 딸 애비는 스웜프씽과 사랑에 빠진다. 이 스토리로 시작한 앨런 무어의 미국에서의 첫 작품이 바로 《스웜프 씽》 21호였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오늘날 DC의 '버티고' 레이블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된 한편, DC 코믹스의 초자연적 세계를 넓혀나가는 중심적인 스토리가 되었다. 그 유명한 존 콘스탄틴의 《헬블레이저》 시리즈 역시 《스웜프 씽》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배트맨과 스웜프 씽

어쨌든 1986년 《스웜프 씽》 52~53호에서 앨런 무어는 고담 시를 배경으로 아주 특별한 이야기 하나를 선보인다. 내용은 이렇다. 식물인 스웜프 씽과 인간인 애비 케이블이 육체관계(?)를 나누는 장면이 누군가에게 촬영되어 유포된다. 애비는 대중의 마녀 사냥을 당해 고담에 붙들려 간다. 분노한 스웜프 씽은 무서운 속도로 고담을 향하여 질주하여 고담의 법정의 모든 사람들을 덩굴 속에 붙잡아두고 애비를 석방하라 경고한다.

"잘 들어라. 도시의 인간들이여, 너희 종족에 대한 나의 인내심도 이제 끝에 이르렀다. 너희의 탐욕과 잔인함, 견딜 수 없는 오만함.... 너희는 대지를 망치고, 강을 오염시키고, 초목을 파괴하였고.... 급기야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노라 떠벌였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이 자연이 어깨를 으쓱하고 눈썹을 치켜들기만 해도, 너희는 다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웜프 씽은 한순간에 고담 전체를 초목이 뒤덮인 야생으로 되돌리고, 배트맨은 스웜프 씽을 물리치려고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들고 달려들지만 자연의 힘을 이기지 못한 채 굴복한다. 고담의 시민들 중에는 이 상황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며 스웜프 씽을 숭배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배트맨 역시 애비를 감금한 법적 근거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만일 이런 법 적용이 타당하려면 화성에서 온 마샨 맨헌터나 메트로폴리스의 슈퍼맨까지 적용해야 할 것이라 설득하여 애비를 석방시킨다. 그러나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애비의 석방에도 불구하고 스웜프 씽을 죽이려는 자들의 암살 시도에 의해 결국 스웜프 씽은 네이팜탄을 맞고 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죽음 이후 이슈들에서 스웜프 씽의 모험은 더 먼 우주와 생명의 영역을 넘어서는 곳까지 확장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DC 코믹스가 2011년에 뉴 52를 런칭하면서 스콧 스나이더라는 천재 작가가 2개의 작품을 맡았는데, 하나가 《배트맨》이었고, 다른 하나가 《스웜프 씽》이었다는 사실이다. 스나이더는 배트맨 『제로 이어』에서 고담을 온통 식물로 뒤덮인 야생의 도시로 만드는데, 재미있게도 이 모습은 《스웜프 씽》에서 앨런 무어가 선보였던 바로 그 모습이다. 1986년 DC 코믹스의 모던 에이지를 촉발시키는데 기여했던 앨런 무어가 선보였던 그 장면, 그 시절 고담의 모습을 밑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서 배트맨과 악당들이 벌이는 두뇌 대결과 캐릭터의 향연을 펼치는 스콧 스나이더의 솜씨. 이렇듯 곳곳에 담긴 옛 DC 걸작들의 자취가 뉴 52 배트맨 시리즈를 곱씹을수록 재미있어지는 이유이다.

《스웜프 씽》 52~53호에서 스웜프 씽이 일으킨 고담의 야생화는 『제로 이어 - 어둠의 도시』에서 파멜라 아이슬리 박사(훗날의 포이즌 아이비)의 연구품을 사용한 리들러에 의해 재현되었다.

(이미지 출처 위:

http://batmangothamcity.net/wp-content/uploads/2014/07/gotham-city-swamp-thing-1.jpg, 아래: 세미콜론)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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