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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7일 06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8일 14시 12분 KST

애사심을 강요하는 사회

애사심의 강요는 다른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원 1인당 몇 개씩 판매하라는 식이다. 보험 가입, 은행이나 증권사의 계좌 개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업종에 따라 TV나 냉장고가 떨어질 때도 있다. 결국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울 리 없다. 하여 일부는 그냥 자기 돈으로 할당량만큼 구입해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중고시장에 내다 판다. 그러면 이런 행태가 애사심과 주인의식으로 포장된다.

Gettyimage/이매진스

애사심, 주인의식 등의 단어를 일상에서 종종 접한다. 기업 회장의 신년사나 신입사원 연수과정 등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회사를 사랑하고 또 자신의 것인 양 아끼라는 뜻이니 말 자체는 아름답다. 그 취지도 이해할 법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보면 두툼하고도 짙은 회의가 밀려온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실화를 보자. 해당 기업은 지난해 3분기에 매우 큰 영업손실을 기록해 완전자본잠식에 빠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한데 이 과정에서 모든 직원에게 우리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언론에 따르면 1년차 신입사원은 1630만 원, 10년차 과장급은 4840만 원, 팀장급은 7000만 원대, 임원은 1억 원 언저리다. 이 정도의 현금을 보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상당수의 직원이 대출을 받느라 추가로 이자비용까지 부담한 상황이다.

물론 우리사주 매입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할인 혜택 등이 주어지니 좋은 투자기회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성에 근거했을 때 설득력을 갖는 말이다. 이처럼 할당량을 배분해 구입을 요구하는 행태까지 투자기회의 관점에서 옹호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해당 기업의 유상증자는 잘되는 사업에 기름을 뿌리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다. 투자 의욕이 생기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주가도 하락세를 지속하다가 최근 들어 거래정지됐다. (다만 거래정지는 유상증자를 반영해 곧 해소될 전망이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이를 통해 내부 분위기를 들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적지 않은 직원이 회사를 옮길 궁리를 하고 있지만 경기 둔화로 그조차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는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자는 기조 아래 우리사주 매입을 요구하고 근무시간을 대폭 늘렸다. 우리사주를 잔뜩 매입해서 애사심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알아서 나가라는 식이다. 직원들은 반쯤 체념한 상태에서 구조조정 풍문에 귀 기울이며 벌벌 떨 뿐이다.

애사심의 강요는 다른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원 1인당 몇 개씩 판매하라는 식이다. 보험 가입, 은행이나 증권사의 계좌 개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업종에 따라 TV나 냉장고가 떨어질 때도 있다. 결국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울 리 없다. 하여 일부는 그냥 자기 돈으로 할당량만큼 구입해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중고시장에 내다 판다. 그러면 이런 행태가 애사심과 주인의식으로 포장된다.

어쩔 수 없이, 그러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회사를 사랑하고 자신의 것인 양 아껴야 하는 참으로 이상한 사회다. '사랑'과 '아끼다'는 두 단어의 정의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계약된 시간 동안 계약된 노동력만 회사에 제공하면 직원의 도리는 충분히 다한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애사심 고취라는 게 별것 있겠는가. 일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해주고, 계약한 시간만큼 열심히 일하면 제때 퇴근해서 스스로의 혹은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애사심이 절로 생기지 않을까. 그런 회사의 직원이라면 회사를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다. 회사가 잘되어 제발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마음에. 이게 여기선 그렇게나 힘든가? 아니, 불가능한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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