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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태어나 | 영화 '동주'를 보고

두 번이나 관람한 이 영화에서, 똑같이 설움을 울어낸 장면은 마지막 동주의 독백이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은 것이, 시인이 되고 싶은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두 손 앞의 종이를 마음처럼 찢어내는 그 장면은 내 가슴도 비틀어 찢었다. 얼떨결에 얻은 PD란 이름 앞에, '해직'이란 이름까지 추가로 붙은 이후로는 만들게 되는 것들이 달라졌다. 공정하지 못한 언론에 대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 무언가를 만들고 말할 일이 많아졌다.

  • 권성민
  • 입력 2016.03.05 14:02
  • 수정 2017.03.06 14:12
ⓒ메가박스플러스엠

태극기를 보고 싶어진 것이 얼마 만이었더라. 영화 <동주>에서 동주와 몽규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장면이다. 유람선 갑판 위에 선 두 사람의 어깨 뒤로 일장기가 얄궂게도 펄럭인다. 바로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에, 그래, 꼭 직전에 튼다. 광고 단가가 제일 비싼 그 자리. '창조경제'를 찬양하는, 실상 '대한 늬우스'의 부활과 다름없는 그 광고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는 그리도 역할 수가 없었는데. 불과 한 시간쯤 뒤엔 암흑 같던 시기 남의 나라로 떠나는 두 청춘의 어깨너머로 아까 그 태극기가 그토록 보고 싶었다.

그 날의 일장기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 하게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못하게 하는 펄럭임이었다. 동주는, 몽규는 알았을까. 그들이 평생 그토록 보고 싶어 했을, 공활한 하늘 아래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가 그날의 일장기와 비슷한 노릇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 못할 설움을 당하고, 고통받고 소외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어 강한 조국을 되찾고 싶었는데, 불과 수십 년 뒤에는 그 '강한 조국'을 위해서 말 못할 설움도 삼키고, 고통받고 소외당해도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게 되리라는 것을. 이유 없이 끌려간 어린 여인들 앞에 치를 떨며 나라를 되찾고 싶었는데, 바로 그 나라가 이제는 백발이 된 그 여인들에게 나라를 위해 이해하고 희생하라는 말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몽규가 욕지기를 뱉으며 집어 던진 연희전문학교의 졸업장, 그 졸업장을 건네며 내선일체 대일본제국을 찬양하던 이사가 독립된 조국 국가의 작사가로 알려지게 되리라는 것을. 그 가사를 4절까지 욀 줄 아느냐며 애국심을 검열하는 나라가 되리라는 것을.

두 번이나 관람한 이 영화에서, 똑같이 설움을 울어낸 장면은 마지막 동주의 독백이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은 것이, 시인이 되고 싶은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두 손 앞의 종이를 마음처럼 찢어내는 그 장면은 내 가슴도 비틀어 찢었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에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버릇처럼 밥상머리를 끌어안고 앉아 아버지가 회사에서 한 무더기씩 가져다주시던 인쇄 오류 복사용지를 쌓아놓고, 하루가 가는 줄 모르게 무언가를 그려대곤 했다. 상상하고 싶은 게 많았다. 머릿속에는 늘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린 키만큼 쌓여있던 복사용지는 늘 부족했다.

자랄수록,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복사용지 시절부터 끊지 못한 버릇으로 그린 만화는, 어느새 학교에서는 친구들 손을 타고 교실을 넘어다니며 탐독 되고 있었다. 인터넷이란 걸 처음 만날 때 즈음부터는 커뮤니티에 소설을 썼다. 아직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시간만 나면 PC방으로 달려갔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일 분씩 떨어지는 시간을 보며 서둘러 한 편을 마무리 짓고는 했다. 소설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메일을 받는 것이 기분 좋았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시간을 들여 읽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만화와 소설은 재능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서 연극이 되고, 콘서트가 되고, 뮤지컬과 영화가 되었다. 내 머릿속, 내 손끝에서 나온 것들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한결같이 황홀했다.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계속 이런 일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연이 필연인지, 대학을 졸업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예능 PD가 되었다. 얼떨결에 얻은 이름이라 늘 생각하고 있지만, 어릴 적부터 품어온 막연한 바람에는 퍽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리고 꼬박 3년을 채우고 그 이름을 빼앗겼다.

얼떨결에 얻은 PD란 이름 앞에, '해직'이란 이름까지 추가로 붙은 이후로는 만들게 되는 것들이 달라졌다. 공정하지 못한 언론에 대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 무언가를 만들고 말할 일이 많아졌다.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말해 달라고 손을 뻗어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건 사실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사는 이 사회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고 울분을 삼킬 때, 미약하게나마 내 손에 든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한 줌 덜어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또다시 무력함을 확인하는 일이다. 콘텐츠는 자주 무력하다. 요즘 같이 눈만 들면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라고, 때론 그 사람들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때론 그러다 지친 사람들의 마음 어루만지는 것이 콘텐츠라며 의지를 다져보지만, 그런데도 콘텐츠는 결국 무력할 때가 많다. 마치 세상을 바꾸기라도 할 것처럼 파문을 일으키는 콘텐츠들이 등장해도, 이내 돌이 가라앉은 수면처럼 잔잔해지는 장면들을 수없이 본다.

하물며 시란 어떠한가. 동주는 얼마나 많은 순간, 절망 같은 무력함을 마주했을까. 그의 오랜 벗이 제 몫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고,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남의 나라 이름을 써가며 동료들을 모으고 있을 때, 동주는 제 방 바닥에 누워 농짙은 싯말로 고뇌를 읊조리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만큼이 벗의 무게였고, 딱 그만큼이 동주의 몫이었다.

끝내 동주는 그 무게만큼의 부끄러움을 한 조각도 덜어내지 못한 채 형무소에서 눈을 감았다. 날 때부터 식민의 하늘 아래였고, 결국 광복을 한 걸음 앞에 두고 내 나이만큼의 삶을 끝내야 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그 유려한 언어를 나래 펴지 못했다. 평생을 기지개 한 번 시원하게 켜지 못한 채, 어깨를 움츠리고 살았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써나간 그 싯말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어 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라는 그 말이 지독히도 슬펐다.

해직PD이자 프리랜서PD로 생활하는 동안, '해직PD'에게 들어오는 일거리들과 '프리랜서PD'에게 들어오는 일거리는 확연히 다르다. 한 번은 어느 게임회사에서 부탁한 외주 작업을 할 일이 있었다. '프리랜서 PD'에게 들어온 일이다. 자사의 인기게임 OST가 제작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모처럼 민주주의, 공정언론, 노동과 인권 같은 단어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상상과 유희로 가득한 작업을 하게 됐다. 즐거웠다. 휴가 같은 그 즐거움이 부끄러웠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즐거운 작업만 하며 살 수 있었을까.

<동주>가 끝나고 올라가는 크레딧 뒤로는, 여느 젊음과 다를 바 없는 그네들의 푸르른 모습들이 펼쳐졌다. 웃고 떠들고, 설레고 장난치고. 허구처럼 아름다워 다시 눈물을 삼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동주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다른 때, 다른 시였다면, 별을 노래하며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됐을까.

아니다. 동주는 내 나라 말, 내 나라 글로 시를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오늘에 와서도 제 몫의 무게를 졌을 것이다.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마음껏 펄럭이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싶어서 부끄럽다 곱씹었을 테다. 어느 때 어느 곳인들 고통이 없고, 그저 아름다움만 좇기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 후꾸오까 형무소 /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 너의 피 묻은 가락들 /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 그 앞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습작기 작품이 된단들 / 그게 어떻단 말이냐 / 넌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있으면 되는 거니까 / 예수보다 더 젊은 영원으로

동주의 또 다른 오랜 벗, 문익환 목사가 '동주야' 부르는 말을 제목으로 붙인 시의 일부다. 동주 자신은 평생을 부끄러워하며, 무력하기 그지없다 여겼을 싯말들을 되짚어주는 문 목사의 말이 내 마음도 도닥인다. 시대 앞에 무력했던 언어들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또다시 꽃 핀다. 결국 동주는 그 열매를 보지 못하고 젊은 눈을 감았지만, 내게 그렇듯 또 수많은 누군가에게 그렇듯, 그의 시는 오롯이 고뇌했던 그의 서른 인생만큼의 흔적을 다시 살아내고 있다. 그렇게 열매를 제 눈으로 못 보더라도 제 가끔의 무게를 감당하면 될 일이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고 쓰고 좇고 싶은 것이 부끄럽지만, 여전히 내 몫의 즐거움을 좇고, 내 몫의 부끄러움 또한 살아내고저 이렇게 글에 새긴다.

* 이 글은 피디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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