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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5일 14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6일 14시 12분 KST

강화도조약 140년의 의미

강화도조약 140년을 맞는 올해는, 이 사건을 단지 한국과 일본의 관계, 일본의 한국 침략의 원년으로만 보지 말고, 봉건과 근대의 조우, 동양과 서양의 조우, 대륙과 해양의 조우라는 문명사적 차원에서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지난 140년 간 한국의 가장 중요한 관계국은 이전의 중국을 대신한 일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본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일국적 관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바로 저 세 가지 차원의 문명적 조우에 모두 일본이 긴밀하게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Encounter with the Three Kind of Civilization

1876년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 조약으로서 한국 근대화의 시발점을 이룬다. 1875년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난 일본 군함 운요호와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강화도조약의 의미는 단지 일본과의 분쟁 해결이나 조약 체결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은 문명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다음 세 가지 수준의 조우를 의미한다. 지난 140년의 역사를 한일 관계를 넘어서 문명적 관계로 볼 필요가 있다.

1. 봉건과 근대의 조우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 체제와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만국공법(국제법)에 기반한 근대 국가 체제의 만남이다. 이것은 봉건과 근대라는 전혀 다른 문명과 국제 질서의 충돌이었다. 이후 근대를 기준으로 이전의 봉건 체제는 전근대로 규정된다. 한국 근대화의 모든 문제가 이로부터 비롯된다.

2. 동양과 서양의 조우

서세동점의 과정에서 서양과 동양이 조우한 것이다. 사실 서양의 등장은 동시에 동양의 등장이기도 했다. 서양과의 조우로 인해 비로소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이전의 동아시아 체제는 자신을 동양이라는 상대적인 문명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양 문명론을 가장 앞장 서서 만들어간 것은 일본이었다. 1876년 우리가 만난 일본은 기존의 동양적 일본이 아니라 서양화된 일본이었다. 이 일본 뒤에는 서양, 정확하게는 미국이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이후 일본과 미국이 한국의 주요 관계국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대륙과 해양의 조우

16세기 이후 서양 세력은 해양을 통해 세계로 진출했으며, 그 결과 인류 최초의 세계 문명이 건설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동아시아에서는 기존의 대륙 세력과 새로운 해양 세력이 충돌하였으며, 그 결과 대륙국가인 중국을 대신하여 해양국가인 일본이 패권을 잡게 되었다. 1876년은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이 만난 때이기도 하다. 현재의 북중동맹과 한미일동맹의 블록 대립 또한 이러한 문명적 구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조약 140년을 맞는 올해는, 이 사건을 단지 한국과 일본의 관계, 일본의 한국 침략의 원년으로만 보지 말고, 봉건과 근대의 조우, 동양과 서양의 조우, 대륙과 해양의 조우라는 문명사적 차원에서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지난 140년 간 한국의 가장 중요한 관계국은 이전의 중국을 대신한 일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본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일국적 관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바로 저 세 가지 차원의 문명적 조우에 모두 일본이 긴밀하게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일 간에 얽혀 있는 복잡한 역사 문제, 군사동맹 문제 등에 대해서도 최대한의 역사적 퍼스펙티브를 갖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강화도조약을 맺을 당시의 우리측 대표단과 일본측 대표단.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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