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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5번 모두 다른 상대와 싸운다

인공지능에게 4개월은 어떤 의미일까. 알파고는 100만번의 대국을 학습하는 데 4주 걸린다. 사람은 1000년 걸린다. 알파고는 <그녀>의 사만다처럼 계속 진화한다. 이세돌이 상대하는 첫 대국의 알파고와 세번째, 다섯번째 대국의 알파고는 사실상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알파고 알고리즘이 대국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변화하는가"라고 구글에 질문했더니, 구글은 "모든 경기에는 학습이 적용된다"고 답변해왔다. 계속 진화한다는 말이다.

  • 구본권
  • 입력 2016.03.03 11:53
  • 수정 2017.03.04 14:12
ⓒ구글

3월9일 오후 1시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5차례 연속 대국 첫 판이 시작된다. 2500년 바둑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대결로 불리는 대국이다. 2월22일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가 언론브리핑을 했다. 이번 대국이 바둑계와 인공지능, 그리고 바둑계 너머에 대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알파고는 특별한가

 그동안 컴퓨터와 사람의 대결은 여러 영역에서 진행돼왔지만, 바둑은 예외였다. 한국의 돌바람, 일본의 젠, 프랑스의 크레이지스톤과 같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등장하며 승률을 높여오긴 했지만, 세계 정상급 프로기사와는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바둑계는 10년 안에 컴퓨터가 '인간 대표'를 이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그런데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인 판후이 2단을 5전승으로 꺾으면서 국면이 달라졌다.

 그동안 컴퓨터의 강점은 뛰어난 연산능력이었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아이비엠의 슈퍼컴퓨터 딥블루도,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역대 최강의 우승자 켄 제닝스를 누른 슈퍼컴퓨터 왓슨도 연산력이 승리 비결이다. 하지만 바둑 한 판에서 가능한 수는 우주의 원자보다 많다. 최고의 슈퍼컴퓨터도 상대가 안된다고 본 근거다. 딥마인드가 채택한 인공지능은 다르다. 알려주지 않은 길을 스스로 찾아서 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딥마인드의 인공지능(DQN)은 최소한의 규칙을 사람에게 배운 뒤 스스로 게임하는 법을 터득해 금세 프로게이머 수준이 됐다는 걸 입증했다.

 알파고는 사람 두뇌처럼 신경망 구조로 작동한다.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연산하지 않고 가지치기를 통해 중요한 것만 걸러내 판단한다. 딥블루는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대결에서 한 수마다 2억개의 수를 검토했다. 바둑 한 수는 체스보다 10배 이상 경우의 수가 많지만 알파고가 한 번 둘 때 검토하는 수는 10만개다. 프로기사가 한 수에 1000가지를 검토하는 것에 비하면 많지만, 컴퓨터로서는 엄청나게 걸러낸 것이다. 체스 선수이자 바둑 아마 1단인 허사비스는 "알파고가 프로기사의 기법을 모방하도록 가르쳤고, 이후 스스로 3000만건의 기보를 훈련시켰다"고 2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혔다.

 바둑의 미래

 "나는 새로운 세대의 생각하는 기계에 밀려난 최초의 지식산업 노동자입니다. 퀴즈쇼 참가는 컴퓨터 왓슨에게 밀려난 첫 일자리가 아닐까요? 내가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2011년 왓슨과의 대결에서 패한 켄 제닝스가 한 말이다.

 이 9단이 "이번에는 4-1이나 5-0으로 내가 이길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번에 이기더라도 다음번 승부를 기대하기는 불안한 상황이다. 만약 이세돌이 진다면 바둑계는 어떻게 될까?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는 "사람 대표가 기계에 진다면 바둑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9단은 "바둑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컴퓨터가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라는 신비감이다. 그게 무너진다면 바둑계는 큰 타격을 입는다. 체스도 컴퓨터에 패한 뒤 인기가 몰락했다"고 말했다.

 이 9단의 자신감은 알파고의 과거에 기반한다. 이 9단은 "판후이와의 대국을 보건대 알파고가 나와 승부를 논할 정도의 기력은 못 된다. 이후 4개월 동안 계속 개선되었겠지만, 나와 승부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사비스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대국 이후 빠른 속도로 자기학습을 진행해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세돌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인공지능에게 4개월은 어떤 의미일까. 알파고는 100만번의 대국을 학습하는 데 4주 걸린다. 사람은 1000년 걸린다. 알파고는 <그녀>의 사만다처럼 계속 진화한다. 이세돌이 상대하는 첫 대국의 알파고와 세번째, 다섯번째 대국의 알파고는 사실상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알파고 알고리즘이 대국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변화하는가"라고 구글에 질문했더니, 구글은 "모든 경기에는 학습이 적용된다"고 답변해왔다. 계속 진화한다는 말이다. 이세돌도 "대국 때마다가 아니라 매순간 알파고가 진화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도 전날 기보를 복기하지만, 사만다처럼 진화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날마다 스트레스와 컨디션의 영향을 받는다.

 바둑판 너머  

 바둑은 지금 유례없는 조명을 받고 있지만, "이번에는"이라는 이세돌의 말처럼 앞날은 어둡다. 구글은 왜 100만달러나 걸고 인간 대표를 꺾고, 뭇 애호가들이 즐기는 인간의 영역을 없애버리겠다고 덤비는 것일까. 동기는 바둑판 바깥에 있다. 인간 최후의 영역으로 여겨진 경기마저 컴퓨터가 능가한다면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도와 활용 범위는 무한해진다.

 왓슨은 인간 퀴즈왕을 꺾은 뒤 유사한 퀴즈대결이 아닌 암치료와 휴머노이드 로봇에 투입됐다. 왜 바둑을 인공지능의 상대로 택했는지에 허사비스는 "알파고 개발에 적용한 방법론은 범용도구이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들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과학의 난제, 기후변화 모델링, 질병치료를 위한 분석 작업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닥치고 연산' 대신 중요한 것을 걸러내며 판단할 줄 아는 신경망 기반의 기계학습을 장착한 인공지능은 바둑판의 승패를 넘어선다. 사람의 사고방식을 모방할 뿐 아니라 더 뛰어난 결과를 내놓는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뛰어나도 의식 없는 똑똑한 기계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안심할 것도 못 된다. 튜링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컴퓨터과학자 엣스허르 데이크스트라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잠수함이 항해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다섯 판의 대국에서 호모사피엔스 대표가 이긴다고 해도 환호할 게 못 된다. 이미 인간 고유영역이 압도당하는 생존게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의 삶 많은 부분에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 경기가 바둑팬만의 게임이 아닌 이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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