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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학교교육,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나?

한국의 교실에도 다양한 능력의 차이, 수준의 차이, 흥미의 차이, 장래 희망의 차이가 있는 아동들이 함께 앉아 있다. 당연히 개별화 지도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에서 고득점을 하는 데는 개별화 지도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개별화 교육의 여건을 갖추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럴 재원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교육시스템을 지속시킨다면 '학포자'의 양산은 불가피하다. 이는 각 개인들에게 최적의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교육이며 이는 개인적, 사회적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연합뉴스

2030 학교교육,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나?(1) -Learning & Redesign Lab 연구소 사례를 중심으로

글 |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eduinnovator@21erick.org

1. 시작말

지난 칼럼에서는 "2030년 학교교육은 어떤 모습일까?"란 주제로 2회에 걸쳐 미래 학교교육의 모습에 대한 예측을 살펴봤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다음의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 그러나 미래는 저절로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과 실천적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면이 크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학교교육도 지금 바람직한 상(像)을 디자인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벨기에의 '학습 및 재설계 연구소(The Learning and Redesign Lab)'가 2014년에 공개한 "2030년 미래학교: 어떻게 학교와 일터를 매력적인 장소로 전환할 수 있을까?(The New School in 2030: How can we make learning and working attractive?)"란 연구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2030 학교교육,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나?"란 주제로 필자의 견해를 더해 미래학교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실제 이 연구보고서는 벨기에(더 정확히는 벨기에의 플랑드르 자치지역)의 학습연구소와 핀란드의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HDL)의 공동 작업에 가깝다. 표면적으로는 플랑드르 교육부와 교육위원회, 그리고 킹바우도우인 재단(King Baudouin Foundation)의 공동 사업으로 추진되었지만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HDL)의 스튜디오 연구방식(studio-like)법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주]

1) 플랑드르(Flandre) - 벨기에는 3개의 자치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것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플랜더즈(Flanders)(네덜란드어로는 플랑드르)다.

2)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HDL) - 핀란드의 미래사회 설계를 담당하는 혁신기금 기구인 SITRA가 2009-2013 사이 한시적으로 운영한 연구소다. 'In Studio: Recipes for Systemic change'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냈는데 2050까지의 미래사회에 대해 조망하고, 'Education Studio'에서는 미래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다루고 있다.

3) HDL 전략적 디자인 모델(HDL Studio Model) - 사람을 모으는 방법, 창의를 샘솟게 하는 스튜디오란 장소, 열린 절차(open-ended process) 등을 통해 통합적 비전을 마련하고 전략적 개선을 위해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절차다. 이는 규모가 크고 복잡하며 경계가 불분명한 도전적 과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총체적이고 완결적인(holistic, complete) 해결 아키텍쳐까지 개발하는 전략적 디자인 기법이다. 지역과 국경을 뛰어넘는 인적 구성도 특징의 하나다.

이 연구 결과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내용이 매우 탁월하여 한국의 미래교육 설계에 주는 시사점이 많다는 점이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와 생각의 깊이는 연신 감탄을 자아낼 수준이다. 이 연구가 또 특별한 것은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가 개발한 스튜디오 포맷을 이용하여 연구했다는 점이다. 스튜디오는 학습과 창의적 활동이 활발한 예술가의 작업실이다. 스튜디오 방식의 연구 절차란 일종의 연구를 위한 절차 템플릿이다. 5일이 소요된다. 첫 2-3일 동안은 내재화, 관찰, 가설 설정 등으로 시작한다. 중반부터는 비전 개발과 해결의 모형 도출에 박차를 가한다. 이 연구소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 '문제, 사람, 프로세스, 장소'란 네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연구를 구체화해 간다. 이 연구의 주역 10명의 모습니다. 여성의 비중이 40%나 된다.

'사람'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소개하면, 약 8-10명의 창의적이고 이질적인 자질을 가진 팀을 구성하여 비전을 개발하고 해결책을 구상하게 한다. 이들은 5일간 합숙을 하면서 작업을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서 합숙에 들어간다. 여기에 역시 8-10명 수준의 전문성이 높은 객원연구원을 두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의무를 부여한다. 다시 여기에 2-3명의 수퍼바이저를 두고 시스템 사고를 통해 어떻게 디자인을 하고 시각화할 것인가 등의 역할을 맡겨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아울러 교사, 교육학자, 의무실 책임자, 학부모, 아동, 청년, 정책결정자, 사업가, 활동가 등의 역할도 빌린다. '프로세스'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정신을 잘 살려 문제를 해결할 때 창의적 디자인 팀이 짧은 기간 내에 비전과 해결책을 구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2. 연구(진)의 2가지 핵심 질문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일이다. 이 연구소도 이 연구를 아래의 2가지 핵심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두 가지 질문은 매우 미래지향적인 열린 질문이며, 기존의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 학교교육의 목표, 역할, 조직과 운영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고취시키고 이끌어 낸다. 이들은 이 연구를 'a work in progress'라고 규정한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는 지속적으로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하고, 조정·수정하며, 의문을 던지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또한 이들은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신념을 평가하고 미래에 대한 가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열려있고 우리가 흔히 실수하고 놓치는 부분들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이들은 왜 질문을 이렇게 많이 던질까? 문제해결과 질문의 관계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들어보자.

"만일 나의 생명이나 삶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첫 55분을 문제해결을 위한 질문의 구상에 쓰겠다. 적합한 질문만 도출할 수 있으면 나는 그 문제를 5분 내에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머리가 좋고 현명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그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가 미래학교를 설계하기 위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모두 열린 질문이며 교육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들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교육개혁을 위해 한국 교육계는 이런 질문을 체계적으로 던진 적이 없다.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HDL)의 문제해결을 위한 스튜디오 방식은 한국도 배워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HDL의 최종 연구보고서(In Studio: Recipes for Systemic change)에는 변화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하나만 예로 제시하겠다.

"새로운 종류의 도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제의 해결이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것은 문제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역별 전문화가 지배적인 문화 속에서는 이런 복잡한 문제를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문제는 계속 역동적으로 변하고 그 복잡성은 날로 증가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 간에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 형성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어설프게 문제를 정의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여 추진하면 결과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34쪽, 필자 의역)."

"낙관주의는 기존의 여건을 구조적으로 자리를 잡아 변하기 어려운 사실(static fact)로 보지 않고 일시적 현상(status quo)으로 해석하게 한다(47쪽)."

☞ 필자는 이상의 두 인용문을 읽으면서 이들이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들려주는 말처럼 생각되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한국의 교육부나 교육청들은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는 능력이 지금보다 크게 향상되어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바른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오늘날의 교육문제는 복잡계 자체이다. 이런 측면에서 벨기에 연구소와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가 던지는 질문들은 문제해결에 새로운 상상과 접근을 도와준다.

3. 2030 학교교육의 혁신을 위한 연구 의제

이 연구소는 위 두 가지 질문에서 출발하여 미래학교를 디자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새롭게 검토해야 할 내용과 주제에 대해 질문 형식을 통해 종합적으로 짚어본다. 이를 위해 기존의 각종 연구결과는 물론 특별히 마련된 세 편의 브리핑페이퍼를 바탕으로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3.1 교육과정

본 연구는 미래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미래에 교육에서 공통으로 배워야 할 지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공통의 지식, 공동의 기능 및 태도를 다루는 핵심 교육과정이 존재하는가?"

"시작점에 갖추어야 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공통의 지식이 존재하는가?"

"지식기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체계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기본적인 지식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초등, 중등, 직업교육 별로 동일한 수준으로 지식의 서술이 가능한가?"

"이러한 수준들은 참여, 사회통합, 지속가능성, 자율, 책임, 창의성 등의 핵심 가치와 어떻게 연계되는가?"

☞ 이상의 질문은 기존의 교육과정 접근법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너무나 당연시 여기던 기존의 질서와 원칙이 타당한가란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는 표준화에 대한 한계와 효용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기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의 체계화도 가능한가란 질문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전통적인 지식 외에 창의성, 호기심, 도전정신, 혁신 등과 같은 소위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을 포함한다. 이런 새로운 역량을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고 타당한가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참여, 사회통합, 지속가능성, 자율, 책임, 창의성 등의 핵심 가치와 어떻게 연계되는가?'란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이는 '21세기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가치가 매우 중요한데 기존의 교육과정 제도로 이게 가능하겠는가'란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교육학자 및 정책결정자들 중에 이런 질문을 떠올리며 고민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 없는 국가의 학교교육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3.2 다양성과 개인화

21세기는 세계화, 기후변화, 빈곤, 난민, 저출산 등으로 인해 국가 간 이주가 더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는 이주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갈수록 많은 나라들이 다문화 사회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고,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게 된다. 이미 한국도 이런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HDL 연구보고서는 아래와 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

"미래사회에 성공적인 교육시스템이란 그것이 다양성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모든 학생으로 하여금 수업에 참가해 성장할 수 있게 하는가의 여부로 정의될 것이다(A successful education system in the future will be defined by how well it handles diversity and enables all students to participate and thrive)."

그래서 주요국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차이와 선호도를 반영하기 위해 개별화 수업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별화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 DI)는 학업성취도 향상만이 목적이 아니다. 개별화 지도를 하지 않고는 소수 학생을 제외한 다수의 학생을 낙오하게 만든다. 이는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을 해친다. 개별화 지도를 하지 않고는 모든 학생들의 참여와 동기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의 도입은 필수적이다. 경기도 교육청이 UDL과 같은 개별화 지도 시스템을 일찍이 도입한 캐나다 온타리오 주를 방문하여 현황을 살펴보며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개별화 지도와 보편적 학습설계의 도입 없이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실현"이란 공약은 공허한 수사(empty rhetoric)에 불과하다.

이 학습 연구소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양성과 개별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가?"

"개별화 지도식 접근과 표준화된 핵심 교육과정식 접근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가?"

"학습과 지식 영역에서 학생들의 차이와 선호가 확연히 달라 사회적 통합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교육시스템은 이런 차이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가?"

"모든 개인의 재능을 개발하는 일과 핵심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기본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가?"

"표준화된 시험은 다양성, 개인의 발달,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실현하려는 노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다양성에 대처하려면 대개 소규모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욕구는 대규모의 전달식 지도방식을 통해 충족될 수 있는가?"

☞ 한국에서도 다양성의 존중과 개별화 교육의 당위성에 대해서 자주 언급되고 있고 이에 대한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이 어떤 관계에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에 대해 깊은 연구나 토론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연구소는 이상과 같은 6가지 질문을 통해 깊은 분석과 검토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한국의 교실에도 다양한 능력의 차이, 수준의 차이, 흥미의 차이, 장래 희망의 차이가 있는 아동들이 함께 앉아 있다. 당연히 개별화 지도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표준화 시험에서 고득점을 하는 데는 개별화 지도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어떤 대학을 진학하든, 어떤 전공을 희망하든 예체능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수능이란 동일한 표준화 시험의 국·영·수 성적을 기본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의 기회 배분이 수능이나 내신이란 표준화 시험의 성적이 주요 기준이 되는 한 학교교육에서 다양성의 추구와 만족은 어렵다. 또한 개별화 교육의 여건을 갖추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럴 재원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교육시스템을 지속시킨다면 '학포자'의 양산은 불가피하다. 이는 각 개인들에게 최적의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교육이며 이는 개인적, 사회적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3.3 지식과 학습에 대한 관점

어떤 사회가 무엇을 지식으로 보는가, 또 무엇을 학습으로 보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학습 연구소는 지식과 학습의 관점에 대해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교육 시스템이 추구하는 지식과 학습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가?"

"그런 관점은 지식을 문화적 유산이 모여진 것이고 과거에 습득된 것이며, 또 이를 교육시스템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가?"

"학습은 이런 문화적 유산에 접근해서 이를 개인의 사고와 경험의 과정에 내재화시키는 능력에 관한 것인가?"

"학습은 새롭고 처음 보는 문제를 확인하고 분석하며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해법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지식에 관한 것인가?"

"사람은 비판적 태도, 혁신 역량, 창의성 등을 어떻게 습득하는가?"

"개별 학생에게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에 대해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주면 개별 학습자는 충분히 학습할 것인가?"

"학습은 개인이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행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성격인가?"

☞ 무엇이 지식이고 학습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지식과 학습은 오직 고입시, 대입시에서 고득점을 하기 위해 문제를 잘 푸는 요령을 익히고 반복 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학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식과 학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열린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지식과 역량의 관계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칼럼 127회 '지식·역량·학력의 바른 이해'/ 142회 2035년 학교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참조). 지식 없는 역량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때의 지식은 전통적인 교과 지식을 말한다. 그리고 학습이란 지식의 내재화를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내재화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저 시험 당일 답만 맞추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는 것이란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질 낮은 지식과 학습만 존재한다. 이를 위한 1인당 교육비가 세계에서 단연 1위라니 답답한 현실이다. 이를 중장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교육리더십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3.4 디지털화와 정보통신기술(ICT)

"디지털화와 정보통신기술은 새로운 세대 간 격차를 가져올 것인가?"

"ICT는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수단에 그치고 마는가, 아니면 사람의 사고와 경험에까지 영향을 주는가?"

"학생과 교육계 종사하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학습과 근무 환경에 ICT를 적절한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기능들을 갖추어야 하는가?"

"교육시스템은 이 영역에서 혁신적일 수 있는가, 아니면 보조적 역할에 그치는 정도인가?"

☞ 한국에도 학교수업에서 휴대폰 등 새로운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휴대폰의 사용이든 PC에서 하는 게임이든 그 자체는 중립적이란 의견이 대세다. 이들 매체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2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PC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ADHD적 증세가 심해졌다는 주장도 존재할 수 있고, PC의 특정 프로그램 사용을 통해 ADHD 증세를 가진 학생의 집중력을 높일 수도 있다. 수업에 게임을 활용하는 것은 어떤가? 물론 교육에 해로운 폭력적 게임은 아동의 뇌를 충동적이게 만들어 나쁘다. 하지만 교육게임은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맥락이 없고 따분한 내용에는 집중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게임은 더할 수 없이 좋은 학습 매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매체의 사용에 대해 획일적 접근은 말아야 한다.

3.5 지식의 생산성과 사회 불평등

"지식기반사회가 주로 상시적 개선과 혁신이란 역동성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라면, 교육제도를 어떻게 설계해야 모든 학생들이 학습과 혁신에 참여할 수 있는가?"

"과거에 형성된 문화적 유산인 지식의 전수를 강조하는 것은 개선과 혁신을 촉진하는가, 방해하는가?"

"공식적 학습과 비공식적 학습이 어떻게 학교교육 시스템에 함께 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

"지식기반사회란 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배우고 일하는 데 매력적인 장소이고,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전통적인 직업을 가지게 되며 뒤처지게 되는 곳인가?"

"개선과 혁신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참여, 지속가능성, 사회통합과 같은 매우 복잡한 문제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이런 영역에서 교육시스템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 이상의 6가지 질문 모두 묵직한 주제다. 앞의 3개 질문부터 살펴보자. 한국의 학교교육에 있어 '상시적 개선과 혁신'이란 말의 의미와 필요성을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해진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량의 함양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결할까와 같은 것을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지식의 전수 자체가 혁신을 방해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다루어야 하는 지식의 양이 너무 많다. 이것의 진도를 다 나가기 위해서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함양'을 위한 몇 주간에 걸친 프로젝트 수업 같은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위의 질문 중에는 지식기반사회가 고등교육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 않나란 질문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고등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가정배경이 어렵거나 공부에 흥미를 잃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동들을 진로교육을 통해 실업계로 보내거나 일찍이 직업세계로 내보내려 하는 한국의 풍토는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미국 같은 나라는 가난한 아동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경기가 안 좋거나 해서 구조조정이라도 할 때는 고졸이 먼저 해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교시스템은 매우 무책임하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못 따라오는 아동은 수업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배제된 이들은 계층 사다리의 낮은 층에 머물 수밖에 없다. '참여, 지속가능성, 사회통합'이란 가치를 학교교육이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개인의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개별화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학습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학교는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된다.

3.6 학습장소로서의 직장

"직장 환경(working environments)이 지식의 창출과 재능의 발달, 새로운 기능의 습득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사실이 함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와 일터의 경계가 어떻게 흐려져 갈 것인가?"

"직장의 세계와 전문가로서의 삶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증가하고 있는가?"

"학교시스템이 직장의 세계로까지 확장될 것인가?"

"직장은 주로 직업교육에서의 학습장소로서 의미를 갖는가 아니면 초중등, 고등교육의 경우까지 의미를 갖는가?"

"교사가 직업세계에 참여하는 기회가 증가할 것인가?"

"학교 밖에서 교사가 직업체험의 기회를 갖지 못할 경우 지식기반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학생을 잘 준비시킬 수 있는가?"

☞ 이상의 질문들은 '학습이 어디서 일어나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학습과 일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통념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학습을 하고, 직장에서는 일을 한다. 그러나 이런 통념은 사실일까? '학습'의 정의에 따라 이런 통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가령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학교에서 더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직장에서 더 잘 일어날 수 있는가? 학교에서 어떻게 학습을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데는 직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인지적 학습에 관심이 없거나 기존의 학교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의 경우는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일과 학습을 통합하면 배우기 위해서 일하고, 일하기 위해서 배우게 된다. 즉 학습과 일 간에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 동기는 저절로 강해진다. 학교는 미래의 필요를 위해 먼저 배워두자는 접근이지만 일터에서는 당장 필요해서 배운다. 그리고 일을 통해 즉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지식을 내재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특히 기존의 학교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동들에게는 일과 배움의 통합은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온타리오 주가 이런 제도를 잘 마련하고 있다.

'학습장소로서의 직장'을 다르게 표현하면 직장은 매우 효과적인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학교'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생각해보게 한다. 학교를 한국처럼 학교 울타리 안으로 한정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전통적인 학교에서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교육의 목표는 그리 크지 않다. 실제 많은 배움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든 아니든 학교 밖에서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학교 교육의 역할은 많이 봐줘도 30% 정도다. 학교교육을 통한 배움은 전체 배움의 고작 30% 정도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30%도 학교 혼자서 달성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를 보라. 사교육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래서 캐나다 온타리오 주 같은 곳에서는 아예 교육의 책임을 지역사회 전체가 져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란 속담을 자주 인용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아동의 교육을 위해서는 공동체 전체가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community to raise a child.)"란 표현을 쓴다. 그들의 교육과정은 부모의 책임과 역할을 명시한다.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 다양한 협력을 이끌어 낸다.

HDL 연구소는 "학교 밖에서 교사가 직업체험의 기회를 갖지 못할 경우 지식기반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학생을 잘 준비시킬 수 있는가?"란 매우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직업체험의 기회를 학생보다 교사가 먼저 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진로지도를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장이 학교보다 배움의 장소로서 더 효과적인 면이 클 수 있다면 한국의 고교과정을 1년 정도 줄이고 고교-대학-직장을 하나로 묶어 진행되는 교육과정이 점점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

3.7 정부와 학교의 역할 구분

"정부는 다양성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구축을 촉진시킬 수 있는가?"

"정부가 학교교육 시스템의 질을 모니터하는 주요 주체인가?"

"만약 우리가 더 이상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사용하지 않거나 정부 주도의 표준화 시험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면 이 때 교육의 질은 누가, 어떻게 모니터하게 될까?"

"교육에서 다양성을 실현하고자 할 때 정부는 어떻게 동등한 기회의 제공과 (기회·자원 등의)공정한 배분(fair distribution)이란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까?"

"정부는 어떻게 개발지향 연구를 장려해서 새로운 교육방식을 장려하고 미래 교육시스템을 위한 전형을 만들어 내도록 고무시킬 수 있는가?"

"정부는 정부가 만들고 부과한 기존의 각종 규칙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교육시스템의 개선과 혁신을 진작시킬 수 있는가?"

"혁신의 촉진자로서의 정부만의 역할이 존재하는가, 개별학교와 사회 파트너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학교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과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자율성(ownership)을 가질 수 있는가?"

☞ '정부와 학교의 역할 구분'에 관해 본 연구는 두 가지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 첫 4가지 질문은 다양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과 현재의 표준화된 교육과정, 표준화 시험을 통한 책무성 관리 등이 충돌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다양한 제약을 가하는 규칙과 법규를 그대로 두고 시스템 혁신이 가능하겠는가'란 회의론적 질문도 던지고 있다. 두 번째의 질문군에서는 혁신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정부와 학교의 역할론에 대해 말한다. 정부가 온갖 제약조건들을 만들어 놓고 학교로 하여금 혁신을 주도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란 질문이기도 하다. '공정한 기회의 제공, 공정한 자원의 배분'을 충족시키면서 다양성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대한 복잡성, 난해성도 암시하고 있다. 정부가 먼저 현명해져야 한다. 정부는 정부가 시작하고 만들어 놓은 각종 규정을 그대로 두고 학교가 혁신을 하기를 바란다. 이는 변화의 원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다. 정부의 생각이 좀 더 깊었으면 한다.

3.8 교육의 두 가지 목적과 충돌

"교육 시스템은 어떤 교육의 목적을 실현시켜야 하는가?"

"교육시스템은 기존의 룰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학교 밖 아동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학교는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교육시스템은 역량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가?"

"아동청소년들은 신체운동을 충분히 하는가?"

"학생들이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데 유연성이 있는가?"

"교육 시스템은 타 문화에 대한 공감 능력과 이해력을 길러주는가?"

[주] 위 첫 질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HDL 연구보고서에 나오는 질문이다.

미국의 철학자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의 '사회화로서의 교육과 개인화로서의 교육(Education as Socialization and as Individualisation, 1989)'이란 에세이집의 제목처럼 교육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하나는 교육의 기본 목적은 아동의 사회화란 주장이다. 이는 학교가 아동이 나중에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련의 교과지식, 기능, 사회적 규범(social norms), 가치관, 시민의식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교사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의 지식의 전수자가 된다. 다른 하나는 교육의 기본 목적은 아동의 개인화, 즉 자기다움의 완성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면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해 강제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은 학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접근에서 교사는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는 가이드로서의 역할만 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배울 내용을 자세히 확정하여 이를 강제로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들로 하여금 비판적 사고력을 발달시켜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형성하고 변화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유연한 교육과정을 필요로 한다. 또 새로운 기술의 활용을 통해 개별화 수업이 가능해야 하고 교사는 아동의 코치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로티는 이런 두 가지 서로 다른 지향을 하나는 '보수적(conservative) 접근', 다른 하나는 '진보적(radical left-wing) 접근'이라 부른다. 어떤 사람은 이를 '수동적 추종자(followers)'와 '능동적 결정자(shapers)'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 가지씩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보수적 접근에 있어 학교교육은 미래 직업세계로 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적응, 규율, 길들이기 등의 형식을 취한다. 또 교육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플랑드르 교육위원회는 EU의 교육정책이 이런 흐름을 강조하자 이에 경고를 보낸 바 있다. 문해력이나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은 창조적 글쓰기 활동, 체육, 문화 간 차이, 육체적 노동기술, 기계와 도구의 활용 등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엄격한 규칙과 법의 제정, 역량 프로파일의 제공, 국가수준의 표준화된 평가, 표준화된 성취목표의 설정, 이의 실현을 위해 예산과의 연동, 경쟁적인 시험 등을 동원한다. 이를 통해 소수에게만 성공의 길을 열어주고 다수의 학생들을 저성취자, 실패자로 만든다. 이렇게 실용주의 일변도로 교육을 이끌고 가면 이는 끊임없이 선발과 배제를 반복하면서 교육을 본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한 이런 접근은 배움의 즐거움을 앗아가고 진정한 발달의 기회를 빼앗으며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이는 또 무엇보다도 성장과 발달을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인 내적 동기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진보적 접근은 이와 다르다. 이 접근은 재능을 키워주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최선의 것을 발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심을 수용한다. 그리고 학생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또 교육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동청소년들에게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교육의 이런 역할은 빈곤소외계층 아동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이들은 학교가 아니면 역사를 배우고, 시와 소설을 읽고,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학교의 텃밭이 아니면 상추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볼 기회가 없다.

재능의 개발, 자아의 발달, 창조적이고 예술적 감각의 형성, 비판적 성찰,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 이런 것들이 가능할 때 자유와 진정한 해방(emancipation)이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그 효과성과 효율성에 대한 측정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의도가 매우 모호하며, 실행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할 것이다. 어렵게 생각될 것이다. 사실이다. 이런 교육의 접근을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이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이해당사자들 간에 깊은 신뢰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을 성숙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 중심의 새로운 교육 실험은 종종 실패와 갈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도 진보적 교육으로의 이행이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미래 교육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구축해 나갈 것인가? 사회화와 개인화, 보수적 접근과 진보적 접근, 이 둘은 2분법적으로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조화와 절충이 필요하다.

[알림] 벨기에 학습연구소의 본 연구 내용은 총 2회에 걸쳐 나누어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이 연구소는 미래학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학습공원(Learning Park)'을 제안하고 있으며 이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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