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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보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도록 이끌어야 하는 이유

  • Martin Rees
  • 입력 2016.05.07 10:12
  • 수정 2017.05.08 14:12
ⓒ2001: A Space Odyssey

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친 과거의 진화는 이제 일반적인 문화의 일부이다. 근본주의자들만의 세상을 제외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인간을 진화 계보의 정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천문학자로서는 믿기 힘든 생각이다. 우리의 태양은 45억 년 정도 전에 생겼지만, 태양의 연료가 떨어지려면 아직 50억 년 정도가 남았다. 그리고 우주는 계속 팽창할 것이다.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 우디 앨런의 말을 빌리자면, 영원이란 아주 길다. 특히 끝으로 갈수록 길다.

인간 수준의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수십 년이 될 수도, 수백 년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펼쳐질 우주의 미래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고, 인류를 나타나게 만든 다윈설의 선택에 비하면 훨씬 짧다.

'축축한' 유기적 뇌의 크기와 처리 능력에는 화학적, 신진 대사적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 한계에 이미 가까이 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자 컴퓨터를 제약하는 요소는 더 적다. 양자 컴퓨터의 제약은 아마 더 적을 것이다. 앞으로 수십억 년 동안 이 컴퓨터들의 발전 가능성은 선캄브리아기의 유기체가 인간으로 진화한 것만큼이나 드라마틱할 수도 있다. 그러니 '사고'에 대한 어떤 정의로도, 유기적 인간형 두뇌가 했던 사고의 양과 강도는 AI가 미래에 할 사고에 비하면 미미할 것이다.

게다가 지구의 환경은 유기체인 우리에겐 맞지만 발달한 AI에게 최적이지는 않다. 로봇 제작자들이 가장 넓은 건설 공간을 갖게 될 행성간, 항성간이 더 좋을 수 있다. 이 공간에서 비생물학적 '두뇌'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로 힘을 키우고 과학적 성취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나는 만약 SETI가 명백히 인공적인 신호를 감지한다면 - 물론 누구도 별로 기대하고 있지 않은 일이다 - 그것은 지구와 같은 행성의 문명보다는 자유롭게 부유하는 비유기적 '뇌'에서 오는 신호일 가능성이 가장 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로 수십억 년씩 뻗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세기가 결정적 시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시대는 인간들이 전자적(그리고 어쩌면 불멸의) 독립체로의 전환을 시작하는 시대이며, 이 독립체는 우리의 영향을 지구 너머 먼 곳까지 퍼뜨리게 될 것이며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게 될 것이다. 혹은 어두운 시각으로 본다면, 이 세기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이러한 엄청난 미래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시대가 될 것이다.

내게 더 어두운 미래까지 상상할 시간이 없다는 게 잘된 일인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다시 집중해 보자.

내가 이 시리즈에서 제기하는 이슈들에서 내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은 위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한다. 비행기 추락, 음식 속 발암 물질, 낮은 방사선량 등이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이 부상하는 위협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실 같지 않을 수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위협들이다. 이중에는 환경에 관련된 것도 있고, 신기술이 불러 올지 모를 좋지 않은 것들도 있다.

중요한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친숙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닌 것과는 다르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알마덴 저수지의 말라붙고 갈라진 바닥에 있는 차. 2014년 1월 28일. (Justin Sullivan Via Getty)

존재 자체를 파괴할지도 모를 이런 위협들은 분명히 전문가의 분석을 받아야 한다. SF에 불과하다고 넘겨버려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정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발생 가능성이 더 높은 위협들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는 방법을 고려하고, 통제 불능이 될 수 있는 기술 발전에 대해 경고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캠브리지에서 그런 목표를 가진 단체를 만들었다. 다른 곳에도 비슷한 단체가 몇 개 있다. 위험이 너무나 커서, 이런 단체들이 재앙의 가능성을 0.1%만 낮출 수 있다 해도 밥값을 하는 것이 된다.

분명 정치인들과의 대화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부 자문으로 일했던 과학자들은 불만스러울 정도로 영향력이 적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미결 서류함과 매체의 영향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시민, 행동가로서 널리 읽히는 책, 시민 단체, 블로깅, 저널리즘을 통해 더 큰 성과를 거둘 때도 있다. 그들에겐 공개 토론회에 정보를 주고 질을 높일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늘 모든 정책의 경제, 사회, 윤리적 면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시민으로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대중과 매체에 의해 널리 퍼지고 알려진다면, 장기적 전세계 문제들이 정치 의제로 부상할 것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서 온 다음 세대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21세기 거의 내내 살아있을 것인 젊은이들이 장기적 이슈들, 전세계 이슈들에 더 관심이 많고 불안해 한다고 한다.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까?

세계 지도자들의 탈을 쓴 연기자들이 COP21 U.N. 기후협약 전날 아침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ERIC FEFERBERG/AFP/Getty Images)

모두가 오늘날 서구인들보다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지속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데 과학적 장애가 없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새로운 위험들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 위험들은 책임있는 혁신의 문화로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생물공학, 발달된 AI, 지구공학 분야가 그렇다. 그리고 전세계 기술적 노력의 취지를 더욱 중요시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적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까다로운 정치와 사회학이 비관주의를 낳는다. 내가 이 시리즈에서 묘사한 시나리오 - 환경 저하, 억제되지 않은 기후 변화, 첨단 기술의 의도치 않은 결과 - 들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심지어 재앙에 가까운 차질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 세계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구조적 실패가 있다.

'우주선 지구'는 텅 빈 공간을 질주하고 있다. 승객들은 불안해 하고 있으며 짜증을 잘 낸다. 그들의 생명 유지 시스템은 잘 고장난다. 하지만 계획 세우기, 지평 탐색, 장기 위험 인식은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가 미래 세대들에게 빈약하고 위험한 세계를 물려주게 될 지속 불가능한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간다면 정말 수치스러울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21세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아는, 그리고 과학만으로는 제공할 수 없는 가치를 따르는 자연 과학자들, 환경 운동가들, 사회 과학자들, 인도주의자들의 효과적인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결론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인용하겠다. 위대한 면역학자 피터 메더워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를 위해 울리는 종은 ... 산에 있는 소의 종과 비슷하다. 그 종은 우리의 목에 달려 있으며, 조화롭고 듣기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의 잘못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Science and Philosophy Should Guide Today's Youth in Creating a More Sustainable World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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