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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3일 05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4일 14시 12분 KST

정책정당은 시대의 요구이다

야당은 2012년 대선 실패 이후 줄곧 '친노패권주의'와 '호남홀대론', 내용이 불분명한 '새정치론'에 휩싸여 지냈으며 전향적 정책담론이 실종한 것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 모두 정책담론이 사라진 상태에서 한국의 정당은 지역주의 정당으로 다시 돌아가 경쟁적으로 지역현안이나 관련 예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주된 관심사로 삼았다. 이런 지역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당 문화는 소선거구제와 결합되어 한국은 이제 동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일본식 토건국가로 치닫고 있다.

연합뉴스

글 | 이종오(전 명지대 교수)

4.13 총선이 이제 목전에 다가왔으며 총선 이후에 한국사회는 빠르게 차기 정권을 겨냥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은 이미 지난 연말부터 분당, 창당, 비대위 체제 구성 등으로 격렬한 재편과정에 돌입했으며 총선 결과에 따라 야권은 물론 여권 역시 큰 폭의 재편과정이 발생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내홍과 재편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이른바 계파와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한국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구체적 정책이나 정책적 가치를 두고 갈등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를 통해 공직 후보자를 공직에 진출시키는 선거 기구로서의 역할 이외에 사회적 갈등을 파악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정책기능은 매우 부족하며 바람직한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관한 설계기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정책과 이념이 부재한 정당은 존립할 이유가 없으며 이러한 정당의 정치인은 공적가치를 추구하는 국민의 대의원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직업인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이 시점에서 4년전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살펴보면 당시에는 그래도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핵심적 정책담론과 논쟁이 있었다. 특히 보수진영의 후보였던 현 박 대통령이 당시 대선출마선언문에서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가에서 국민으로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하였으며 국민행복 3대 과제로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제기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 한국정치가 사상논쟁, 민주대 반민주를 넘어서 실용적 정책담론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 정책경쟁이 벌어지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민주당 역시 2011년에 이미 당내에 경제민주화위원회, 보편적복지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정책담론을 준비하였다. 다만 한미FTA, 강정마을해군기지 문제 등 재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쟁점이 분산되었으며 정책논쟁에 있어서 박근혜 후보를 압도하지 못한 것이 야당의 대선실패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2012년의 분위기 속에서는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한국은 이제 정치민주화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3년 대선 직후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우선 보편적 기초노령연금에 관한 상이한 해석이 출현하였고 인수위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일자리 중심 창조경제'가 등장하면서 어느새 경제민주화 의제는 밀려나고 있었다. 2월 취임사에서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며 창조경제가 경제민주화의 앞자리를 차지하더니 2013년 11월 이후 대통령 연설문에서 경제민주화란 단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경제민주화의 수명은 일 년 남짓 했던 셈이다. 박근혜 정권이 보수적 복지국가를 지향할 것이라는 예상이나 기대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야당은 2012년 대선 실패 이후 줄곧 '친노패권주의'와 '호남홀대론', 내용이 불분명한 '새정치론'에 휩싸여 지냈으며 전향적 정책담론이 실종한 것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 모두 정책담론이 사라진 상태에서 한국의 정당은 지역주의 정당으로 다시 돌아가 경쟁적으로 지역현안이나 관련 예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주된 관심사로 삼았다. 이런 지역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당 문화는 소선거구제와 결합되어 한국은 이제 동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일본식 토건국가로 치닫고 있다.

개혁담론이 실종된 상황에서 경제, 사회적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와 기업이 정체에 늪에 빠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최근의 상황은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수출은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1970년 월간 수출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추세는 단기간에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삼성전자, 포스코와 같은 한국의 대표기업 거의 모두는 큰 폭의 이익감소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조선산업에서는 천문학적인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성장의 정체 특히 중국시장의 수요 감소에 기인한 것이다. 수요 감소는 기업 활동의 축소, 양질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내수시장의 축소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산과 소득이 취약한 중하위층이 상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더 받으며 이는 자산과 소득 그리고 나아가 기회의 불평등의 확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한국 뿐 아니라 선진공업국 일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 시장개입과 사회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한국에서 경기후퇴는 세계 최고수준의 노인빈곤율, 자살율, 저출산율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문제를 더욱 빠르게 악화 시키고 있다. 2012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론이 전면에 대두된 배경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깔려있었다. 당시의 이러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으나 이에 대응하는 정치적 의지는 오히려 약화되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는 다양한 정책언어를 개발할 것이다. 그러나 최선의 의제를 선거에 편리하게 이용하고 폐기한 지난 경험에 비추어 이런 용어 자체에 일반 국민들이 더 이상 감동하고 환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과제를 제기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이것이 일회성 선거용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가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의 경우 전통적 지역구도와 이념논쟁 이외에 참신한 정책언어를 개발할 의지와 능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1야당이 감동을 줄 수 있는 후보선정과 시의적절한 정책언어를 구사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의외의 결과를 거둘 수도 있다. 경제민주화와 사회정책을 중시하는 김종인 씨가 더불어 민주당의 비대위를 지휘하고 있으니 조만간 큰폭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러나 2004년 탄핵정국에서의 쉬운 승리가 열린우리당을 나태하게 만들어 결국 정권실패를 가져왔던 전례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러자면 이번의 야당 개혁은 총선승리를 넘어 알찬 사회적 내용을 지닌 정책정당으로의 성격변화 까지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를 기화로 현재의 여당 역시 비록 허구로 끝나긴 했지만 2012년 당시와 같은 대항 정책능력을 동시에 개발하였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고 정책능력과 정치능력이 다 같이 허약하며 국민의 신뢰수준이 바닥에 도달한 현재의 여야 정당만을 가지고 만약 앞으로 세계경제위기와 같은 사태가 온다면 과연 어찌할 것인가. 한국사회는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현실에 미리 대비하여야 할 것이며 튼튼한 정책정당을 꾸리는 것은 이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이 될 것이다.

글 | 이종오

(전) 명지대, 계명대 교수(사회학) 역임

서울대 상대 졸, 독일 마부르크 대학 철학박사(정치사회학)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 민교협 공동대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2003),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2006-2008)

(현) 사단법인 경제사회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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