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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구조된 큰돌고래가 26일만에 바다로 돌아갔다(사진)

ⓒ연합뉴스

"어진아, 아프지 말고 잘 살아."

2일 오전 8시 20분께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에서 약 12㎞ 떨어진 해상.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특별한 이별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달 방어진항에서 탈진한 채 발견된 큰돌고래 '고어진'이 26일 만에 바다로 돌아간 것이다.

방어진항에서 구조된 고래라는 뜻에서 '고어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야생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과정은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정교한 준비와 노력을 요구했다.

방류 작전은 아직 한밤처럼 깜깜한 오전 6시부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보조풀장에서 시작됐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연구진과 고래생태체험관 사육사들은 풀장에서 고어진을 잡아 지느러미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달았다.

이후 들것으로 카고트럭에 옮겨실어 약 11㎞ 떨어진 방어진항까지 이동했다.

이때 피부가 마르지 않도록 거즈를 덮어 자주 물을 뿌리는 등 여러 명이 곁에 붙어 고어진의 상태를 살폈다.

방어진항에서 고어진을 실은 선박은 약 50분 동안 먼바다 쪽으로 이동, 방류 지점에 도착했다.

연안에 방류하면 선박과 충돌 위험이 있는 데다, 야생의 환경에 방류해야 적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충분히 멀리 나간 것이다.

고어진은 도르래와 연결된 들것에 실려 서서히 바다로 들어갔다.

이내 물속에서 몸이 자유로워진 고어진은 힘이 실린 꼬리 짓으로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곧장 사라져버린 돌고래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던 찰나 고어진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배 주변을 빠르게 돌기도 하고 배 밑으로 지나다니기도 하면서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감사함과 섭섭함을 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10여 분 동안 역동적인 움직임을 관찰한 관계자들은 고어진의 성공적인 적응을 믿으며 아쉽고도 기쁜 이별을 했다.

김슬기 고래생태체험관 사육사는 "구조 당시 많이 떨어졌던 체력이 치료를 받고 먹이를 잘 먹으면서 회복됐다"면서 "다만, 고어진이 구조될 때부터 선박이나 사육사를 피하지 않고 접촉하려는 성향이 강해 혹시나 해상에서도 선박에 가까이 접근해 다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어진은 2월 4일 오후 4시께 '방어진항 안에 돌고래가 들어왔다'는 제보로 발견됐다.

고래연구센터 연구진과 해양동물전문구조치료센터인 고래생태체험관 사육사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밤새 상태를 관찰한 결과 자력으로 항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한 상태인 데다, 그대로 두면 선박과 충돌 위험도 크다고 보고 돌고래를 체험관 보조풀장으로 옮겼다.

돌고래는 생후 2년6개월가량의 미성숙 개체로 몸길이 2m, 몸무게 108㎏ 정도였다.

등지느러미 등 피부에 어망에 걸려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외부 기생충도 발견됐다.

고어진은 수족관 돌고래들이 먹는 고등어 등 어류를 먹지 않았다.

사육사들은 주둥이 주변에 오징어 빨판 자국이 남은 점에 착안, 산오징어를 풀장에 풀었다.

고어진은 빠르게 움직이는 오징어를 사냥해 먹었고, 배가 부르면 오징어로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보이는 등 활기를 찾았다.

수족관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 산오징어 특성 때문에 사육사들은 하루 1∼2차례 수산시장을 오가며 산오징어를 공수했다. 고어진은 하루 10㎏의 오징어를 먹어치우는 식성을 자랑했다.

영양상태 등 회복 경과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와 구충제 투여 등 치료가 병행됐다.

이런 정성으로 고어진은 빠르게 회복했고,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26일 해양동물보호위원회를 열어 조속한 돌고래 방류를 결정했다.

치료를 마친 돌고래를 인공적으로 계속 사육하면 야생성을 잃어 자연 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애초 지난달 29일 방류가 예정됐지만, 기상 악화로 한 차례 연기돼 이틀 뒤에야 성사됐다.

해수부는 고어진에 부착된 GPS로 이동 경로와 적응 여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경리 고래연구센터 박사는 "근해에서 자주 목격할 수 없는 큰돌고래가 살아 있는 상태로 구조된 뒤 방류된 사례는 국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행여 어선들이 등지느러미에 작은 장치가 부착된 돌고래를 발견하더라도 독립적인 야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관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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