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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다산동 52가구가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유

  • 원성윤
  • 입력 2016.02.29 12:18
  • 수정 2016.02.29 12:26
ⓒ한겨레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 30~40년 살아서 서로 아주 잘 알아요. 10년 정도 산 분들이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니까요. 모여서 같이 김장하고, 옥수수를 쪄도 함께 먹는 동네인데….”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구 다산동 한양도성 앞 다산성곽길(동호로17길)에서 만난 주민 추은경(39)씨가 말했다. 추씨와 함께 성곽길 아래쪽 동네로 내려가는 동안 만나는 주민마다 서로 인사를 나눴다. 추씨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 39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다.

하지만 적잖은 주민들이 마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서울 중구가 주민들의 땅을 수용해 공영주차장을 짓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구는 다산성곽길을 경리단길 같은 ‘뜨는 거리’로 조성하려고 한다. 문화관광 거점시설 가운데 하나가 공영주차장이다. 이를 위해 다산동 826-1번지 일대 4275㎡(1295평)를 강제수용한다는 계획이다. 주민 52가구, 150~200명이 수십년간 살고 있는 터전이다.

중구는 거점시설로서의 구실은 부대효과일 뿐, 이 마을의 심각한 주차난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한다고 강조한다. 그 명분으로 서울시 예산도 따냈다. 하지만 주민들의 얘기는 많이 다르다.

주민 정영례(77)씨는 “여기는 주차난 없어. 내가 운동하려고 자주 성곽길도 올라가는데, 거기도 주차난 없어”라고 말했다. 성곽길 역시 마찬가지다. 성곽길 바로 옆에서 사는 이아무개(44)씨는 “근처에 있는 장충체육관에 경기가 있을 때는 체육관에 주차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 길가에 차를 대 복잡하긴 하지만,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마을을 찾은 지난 21일은 통상 주차량이 가장 많은 일요일 오전이었지만, 성곽길과 아랫동네에선 ‘심각한 주차난’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곳의 주차난이 특히 심각한지 중구청에 문의해봤다. 김광태 중구 주차시설팀장은 “어느 곳 꼽을 것 없이 다산동 전체적으로 주차난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마치 비밀 군사작전처럼 주민들 모르게 행정절차를 진행해온 점이다. 토지 강제수용 대상 주민들이 지난해 10월12일 등기로 받은 공문을 통해 중구의 계획을 처음 접했다. 추씨의 어머니인 김정례(68)씨가 등기우편을 꺼내 들었다.

‘도시계획시설(녹지, 주차장) 중복결정을 위한 도시관리계획(안) 열람공고 알림’이란 제목의 공고문에는 “신설 주차장 신당동 826-1 일대 면적 4275.3㎡”라는 입안 내용과 “노후·불량 주거지 내 주차공간 확보 및 녹지공간 조성”이라는 이유가 짧게 적혀 있었다. 토지의 용도를 주차장으로 정하겠다는 의미지만, 이해하기 쉽진 않아 보였다.

“기자 양반은 이거 보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겠어요?” 김씨가 연신 “너무 억울하다. 이건 테러다”라고 말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다들 노인네들이라 이런 공문이 와도 자기 집이 수용된다는 사실을 몰라요. 이제야 좀 알기 시작한 거지.”

지난해 11월19일께에는 구청 직원이 찾아와 도로와 집 측량을 했다. “왜 측량을 하느냐. 여기를 수용하려 하는 것이냐”는 주민들의 질문에 구청 담당자는 “어디가 수용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측량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11월25일 최창식 구청장이 동네를 찾았을 때도 최 구청장은 “아직 주차장 위치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런 내용은 주민들이 녹음한 파일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구는 2014년 7월 최창식 구청장 취임 시점에 이 사업을 기획했고, 지난해 1월에는 ‘성곽 예술문화거리 조성 발전계획 수립’이란 보고서를 통해 윤곽까지 그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주민들에게는 쉬쉬하며 비밀리에 진행해온 셈이다. 더욱이 중구는 지난해 8월 서울시 예산을 지원받기 위한 투자심사 때는 “주민들이 다 안다”고 설명했다.

한 투자심사 위원은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렇다고 답했다. 담당자가 그렇게 말하니 ‘그게 사실이냐’는 식으로 따져묻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일요일 오전 서울 중구 다산동 한양도성 앞 다산성곽길 주변 풍경. 성곽길 바로 옆에 거주하는 이아무개(44)씨는 “평상시 주차난은 거의 없다. 바로 옆 장충체육관 경기가 있는 날에만 불법주차가 많아 불편한 정도”라고 말했다. 장충체육관 경기는 1~2주에 한 차례씩 열린다.

중구는 지난달 27일 처음으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의 첫 내용은 주차난 탓에 경기 부천시와 서울 양천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 뉴스 동영상이었다. 주민들이 격분해 설명회는 무산됐다.

주민이 떼어본 토지이용계획서를 보니 중구는 일대 토지이용계획을 지난해 10월12일 이미 주차장으로 바꿨다. 중구가 주차장으로 바꾸겠다고 열람공고를 했던 바로 그날이다. 절차적으로 열람공고 뒤 의견수렴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요식행위와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도시계획 관련 사안을 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얼마나 급하게 일을 진행하려 했는지를 보여줄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중구는 지난달 21일 주차장 건설 열람공고를 한 뒤, 약 한 달 정도 뒤인 지난 18일 인가고시까지 했다. 2018년 주차장 완공을 위해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주민 임은영(39)씨는 “실평수로는 8평밖에 되지 않아 보상을 아무리 받아봐야 저희 네 식구가 갈 곳이 없다. 다른 연세 드신 분들도 그 집 아니면 나가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할머니 때부터 이곳에서 살아서 어르신들도, 우리도, 자녀들도 서로 다 친구로 지내는 동네인데….”

지난 21일 이 동네 정영례씨는 그의 집에서 동네 주민 나영애(70)씨, 송경순(72)씨와 함께 거실 전기장판 위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송씨가 입을 뗐다. “이렇게 좋은 동네도 없어요. 김장을 해도 같이 하고, 놀아도 같이 놀고, 여기는 시골과 마찬가지예요. 대문도 밤에나 잠그고 살까. 서로 믿고 사는 동네지.”

나씨는 “손자들까지 7명이 함께 살고 있는데, 어디를 가겠어. 우린 못 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중구 김광태 팀장은 “수용 안 되는 집 주민들은 찬성한다”고 말했다. 수용 대상이 아닌 정영례씨는 이렇게 말한다. “주차장 들어와 외부 사람들 마구 들어오면 문 잠그고 다녀야 해. 도둑놈 생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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