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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의 횡포를 막고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

여야합의를 강조해왔던 국회의장은 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여 야당의 반발을 불러왔을까? 국회의장이 종전처럼 대화와 토론을 중시하면서 여야합의가 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했었다면 당연히 직권상정도 필리버스터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직권상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작동되고 있는 우리 정치풍토상 대통령과 청와대의 압력이 매우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횡포와 갑질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의원의 자율성 회복이 절대적이다. 의원의 자율성이 있어야 대통령과 청와대의 간섭 없이 여야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숙의하는 선진적인 의회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다. 당연 그 시작은 '공천민주화'이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2.29 06:48
  • 수정 2017.03.01 14:12
ⓒ연합뉴스

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여의도 정가를 긴장시키는 핵심 키워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천심사이고, 둘째는 필리버스터이다.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 실패 이후 국민공천제를 수호하려는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박과 대통령의 전략공천을 관철하려는 친박간 갈등이 공천심사를 계기로 고조되고 있고, 더민주당 역시 현역의원의 20% 공천배제(컷 오프)를 시작으로 공천전쟁에 돌입했다. 공천전쟁과 동시에 여야는 정의화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이 된 테러방지법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야당이 표결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맞서면서 끝 모를 대치국면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과 야당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 행위에 대해 "정말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 생각한다"며 비판했다.

따라서 당분간 여야갈등이 두 축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공천배제를 둘러싼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 두 갈등은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깊이 순환하고 있다. 또한 이 두 갈등은 어떤 결과가 있으면 그 앞에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인과론적으로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두 갈등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2월 25일 3선의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 발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된 사연 속에 잘 드러난다. 이 같은 사연은 여야 모두에게 공천갈등에 따른 권력투쟁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두 가지 갈등의 연관성 속에서 '필리버스터 속 눈물'의 의미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같은 갈등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안을 적극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강기정 의원은 왜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을 받아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5시간의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기 직전 자신의 지역구(광주 북갑)를 전략공천한다는 사형선고와 같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강 의원은 전략공천하겠다는 소식이 곧 지도부가 자신을 공천에서 배제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야합의를 강조해왔던 국회의장은 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여 야당의 반발을 불러왔을까? 국회의장이 종전처럼 대화와 토론을 중시하면서 여야합의가 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했었다면 당연히 직권상정도 필리버스터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직권상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작동되고 있는 우리 정치풍토상 대통령과 청와대의 압력이 매우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정원과 검찰 등 유무형의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의원의 약점을 잡거나 공천권을 무기로 의원의 자율성을 억압하여 국회를 행정부의 통법부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선거의 여왕인 대통령은 퇴임 후 권력방어용으로 진박의원의 선거승리를 위해 안보이슈 관련법을 중심으로 국민을 편가르기 하거나 진영대결구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횡포와 갑질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의원의 자율성 회복이 절대적이다. 의원의 자율성이 있어야 대통령과 청와대의 간섭 없이 여야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숙의하는 선진적인 의회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다. 당연 그 시작은 '공천민주화'이다. 공천권을 제왕적 대통령과 계파수장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줘서 의원들이 태생적으로 외압 없이 국민만 쳐다보고 민생정치에 전념할 수 있게끔 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YS-DJ의 민추협동지처럼 의회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한 초당적인 협력으로, 의원들의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서 제왕적 대통령의 국회종속과 의원종속을 끊을 수 있는 공천제도인 완전국민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를 법제화했더라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과연 여야 합의 없는 테러방지법이 직권상정 될 수 있었을까? 과연 새누리당에서 진박과 친박들이 자기 지역구 예산배정을 독식하며 우선공천(전략공천)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그 가능성은 적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갈등이 사라지고 비노들의 '문재인대표 흔들기'와 '친노패권주의라는 이미지'도 없었을 것이다. 당연 안철수 의원의 탈당도, 후속의원의 탈당도, 국민의당 창당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공천제도는 크게 상향식 경선과 전략공천으로 나눌 수 있다. 상향식 경선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개인 신상정보의 노출, 역선택, 유권자 동원 등의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이것을 보완할 수 방법은 여야가 동시에 오픈프라이머리를 진행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었다. 전략공천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비판했던 쪽에서 제시한 공천방식으로 외부인사를 공천함으로써 신진인사를 발굴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대 계파에 대한 공천 학살로 악용되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전략공천에 따른 신진인사의 발굴은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특정 계파의 도움 없이는 공천권을 따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계파정치에 포섭되어 계파정치를 재생산하는 숙주로 전락되는 악순환적인 문제가 있다. 계파정치에 포섭된 신진은 그동안 매 총선마다 현역의원 교체율이 평균 25%나 될 정도로 바꿔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의 질이 별로 나아지지 않은 이유와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법제화가 선행되지 않는 채, 추진되는 신진영입은 결국 계파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온존시키는 '뫼비우스의 띠'가 될 수밖에 없다.

강기정의원은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자신이 지금 왜 필리버스터를 하는지, 왜 공천에서 배제되었는지 그리고 둘의 관계에 대해 약간의 소회를 밝혔다. 강기정 의원은 "(19대 국회 이전) 그때는 필리버스터 같은 수단이 없으니까 점잖게 싸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국민으로부터 폭력의원이라고 낙인찍히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 저의 이번 4선 도전은 또 다른 의미를 가졌을 텐데"라고 덧붙이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이 자리가 몸싸움했던 자리가 아닌, 날을 새가면서 토론할 수 있었던 자리가 될 수 있어 감사하다"며 마무리 발언을 했다.

강기정 의원이 언급한 "싸움"과 "폭력의원"은 여야 상관없이 특정 계파의 수장이 대통령이 될 경우, 겪게 되는 비극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권력기관과 공천권을 무기로 의원들을 동원하고 국회를 통법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여야갈등과 입법교착 및 장외투쟁은 불가피했다. 당연 강기정 의원 역시도 계파보스의 보이지 않는 공천권 압력 속에 몸싸움을 전개하여 스스로 폭력의원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몸싸움으로 얼룩진 국회에서, 강한 규율과 당론으로 무장한 보스와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초당적으로 진지하게 대화와 토론을 하고 교차투표를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결국 계파보스의 공천권 압력 속에서 폭력의원이 되었던 강의원이 결국 그 폭력의 이미지 때문에 컷오프의 대상이 되는 비극을 맞았다. 그러나 이 비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오픈프라이머리 법제화 없이는 또 다른 제2의, 제3의 강기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희생양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총선공약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법제화'를 다시 약속하고 실천에 옮길 수밖에 없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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