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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코딩 선생님, 장난감 애벌레

미국은 올해부터 3년 동안 초·중·고교 학생이 컴퓨터과학 수업을 듣도록 국회에 예산을 요청했다. 이른바 '모두를 위한 컴퓨터과학' 프로젝트다. 예산 규모는 40억달러, 약 5조원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SW)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 도는 전단지만 보면 분명 그렇다. 한데, 컴퓨터 교육이 입시 가산점을 얻기 위한 '단기 속성'으로 이뤄지는 것이던가. 핵심은 코드를 만지는 기술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하게 돕는 것이다.

  • 이희욱
  • 입력 2016.02.28 04:32
  • 수정 2017.02.28 14:12

장난감 애벌레 '코더필러'는 스피커와 전원 단푸가 달린 머리 부분과 8개의 몸통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신경제에서 컴퓨터과학은 선택 대상이 아닙니다. 아동의 기본 교육인 읽기, 쓰기, 산수와 더불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월30일 또다시 컴퓨터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은 올해부터 3년 동안 초·중·고교 학생이 컴퓨터과학 수업을 듣도록 국회에 예산을 요청했다. 이른바 '모두를 위한 컴퓨터과학' 프로젝트다. 예산 규모는 40억달러, 약 5조원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SW)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 도는 전단지만 보면 분명 그렇다. 한데, 컴퓨터 교육이 입시 가산점을 얻기 위한 '단기 속성'으로 이뤄지는 것이던가. 핵심은 코드를 만지는 기술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하게 돕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만지고, 캐릭터를 움직이고, 건물을 짓고 아이템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교육의 걸음마 아닐까.

그럼에도 국내에선 여전히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 온도차가 심하다. 3대가 모인 명절 풍경을 보자. 스마트폰을 놓고 끊임없는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머리로는 인정하되 관습적 거부감을 단호히 버릴 수 없는 게 부모들 심정이리라.

'컴퓨팅 교육'과 '재미'를 모두 잡는 절충안은 간단하다. '컴퓨팅 교육을 돕는 놀잇감'을 제공하면 된다. 미국 완구업체 피셔프라이스가 내놓은 '코더필러'(Code-a-Pillar)가 바로 그런 사례다.

코더필러는 장난감 애벌레다.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6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처음 공개됐다. 겉보기엔 3∼4살 꼬마들이 갖고 노는 여느 플라스틱 완구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코더필러는 선생님이다. 3~8살 아이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자연스레 익히도록 돕는 장난감 선생님이다.

코더필러는 스피커와 전원 단추가 달린 머리 부분과 8개의 몸통 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몸통엔 다른 기호들이 저마다 다른 색깔로 표시돼 있다. 이들 몸통은 그 자체로 프로그래밍된 명령어 덩어리다. 직진, 좌우 방향 전환, 음향 효과, 음악 재생 등의 명령을 저마다 담고 있다. 몸통 앞뒤에 달린 USB 포트를 이용해 블록 조립하듯 끼워 연결할 수 있다. 아이가 조립을 마치고 전원을 켜면, 장난감 애벌레는 조립된 순서대로 명령을 수행하듯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이리저리 몸통 순서를 바꿔 끼워가며 아이는 자연스레 프로그래밍 명령어 실행에 대한 개념을 익힐 수 있다.

피셔프라이스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몸통 3개로 구성된 확장팩도 내놓을 예정이다. 이 확장팩을 끼우면 기존 움직임 반복, 180도 회전, 다른 불빛이나 음향효과 등의 추가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올여름께 50달러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확장팩은 15달러에 별매된다. 피셔프라이스는 코더필러와 연동해 쓸 수 있는 iOS·안드로이드OS용 응용프로그램(앱)도 내놓을 계획이다.

<로봇터틀>도 놀이와 컴퓨팅 교육이 결합된 흥미로운 사례다. <로봇터틀>은 보드게임으로 아이들에게 코딩 원리를 가르치려 한다. 아이들은 각자 좋아하는 거북이 카드를 보드 위에서 움직이며 보석을 모아야 한다. 거북이 카드에 새겨진 명령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프로그래밍의 기초 원리를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로봇터틀>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에서 기존 목표액의 30배에 가까운 63만달러를 모으며 가장 많은 모금액을 기록한 보드게임으로 기록됐다.

<로봇터틀>을 개발한 댄 섀피로는 '왜 게임을 앱으로 만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로봇셔틀> 상자를 개봉했을 때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번졌어요. 우리는 마주 앉아 게임을 즐기며 '와우' '아하' '으악'을 연발했죠. 저도 프로그래밍하는 기쁨을 아이들과 온전히 공유했고요."

악보를 읽는 법은 누구나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다. 그렇다고 모두 음악가가 될 이유는 없다. 컴퓨팅 교육도 다를 바 없다. 기본적인 코딩 원리를 익히는 것은 정보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필수 교양이다. 코더필러도, <로봇터틀>도 이 거대한 움직임의 첫걸음일 뿐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 진절머리가 났다면, 스크린 바깥에도 선생님은 있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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