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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었던 내가 우파를 떠난 이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진보주의자가 되었다

2001년 1월 20일, 나는 조지 W. 부시의 취임 축하 무도회에 있었다. 나는 몇 달 동안 부시를 위한 선거 운동을 했는데 쉽지 않았다. 플로리다 재검표 문제가 있었고, 플로리다 주 국무장관 캐서린 해리스는 수치의 15분을 겪었고, 연방대법원에서 부시 v. 고어 결정까지 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내 노동의 결실을 즐기며, 당선시키려고 내가 노력했던 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고 있었다.

선거 운동에서 내 역할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나는 20세였고 정치학과 종교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었으며, 이 선거를 우파를 위한 내 일의 시작점으로 보았다. 난 그 얼마 전 MTV 리얼리티 쇼 '로드 룰스'에 나와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세계관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한 터였다.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 순간을 뭔가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싶었다.

유세 중에 나는 젊은 공화당원 미팅에 참석하고, 부시가 신뢰하는 고문들인 앤드류 카드와 캐런 휴즈가 찾아왔을 때 자동차 행렬에서 그들이 탄 차를 운전했고,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는 셀러브리티 담당을 맡았다. 나는 스페셜 게스트인 드류 캐리 담당이었다. 그 날 저녁에 캐리는 자신은 사실은 공화당원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라고 했다.

"괜찮아, '저 진보주의자들' 중 하나만 아니면 되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 유세에 참여한 것이 보수주의 운동을 알리는 내 노력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 커리어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복음주의 지역 사회에 푹 젖어 자란 나는 기독교의 수사와 세계관이 너무나 친숙해서 그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80년대 말, 그리고 90년대 내내 복음주의는 커뮤니케이션과 프로모션에서 '가족의 가치', 군국주의, 낙태 반대 운동을 이리저리 변형한 구체적인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방향으로 갔다. 이 집단의 통일된 신학적 포지셔닝은 미국 복음주의 유권자들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바닥까지 오는 보라색 새틴 드레스를 입고 당시 유행하던 흰 아이섀도를 바른 채 새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와 춤추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클린턴/르윈스키 서커스에서 벗어나 개인의 책임을 증가시키고, 우파 정치의 수호 성인 로널드 레이건의 철학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 생각하며 설렜다. 나는 내가 곧 '저 진보주의자'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내 보수주의를 키웠던 바로 그것이 내 보수주의를 쓰러뜨릴 거라는 사실 역시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내 신앙이었다.

나는 평범한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나는 일주일에 몇 번씩 교회에 갔고, 개인적 만남에서 목사님의 조언을 구했고, 리얼리티 TV에 나가 유명해진 다음에는 교회 청년 모임에 가서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순수함'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종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자, 교회의 사람들은 진보적 인텔리겐챠들의 영향 아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경고했다.

'신을 믿지 않는 진보주의자'들이 대학교에서 가르친다는 편견은 전통적 교육을 피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학계가 좌파 편향적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지만, 내 신앙은 학문적 검토를 받고도 살아남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나는 신앙을 버리게 되지 않은 대신, 성서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나는 늘 성경을 읽었고 상당 부분을 외웠지만, 그 해석은 내 종교 멘토들의 전문 지식에 의존했다. 그 멘토들 중 일부는 주일 학교나 기독교 교육 수업을 맡은 비전문가들이었다.

여과없이 성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고 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그들의 견해는 점점 더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들의 옛 예수는 나의 새 예수와는 전혀 달랐다.

남을 재단하지 말고, 적들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주문과, 사회복지, 여성 인권, LGBT 커뮤니티에 대한 반대에 십자가를 들고 나오는 종교적 우파들을 더 이상 조화시킬 수가 없었다. 이런 신학적 변화를 겪은 사람이 나 하나뿐인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복음주의의 신도 유지율은 65%라고 한다. 신자가 전통을 버리기로 결정하는 데에 교육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종교를 믿는 내 또래들이 세속적 교육을 두려워하는 것은 근거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인 교육이 믿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베일러 대학교의 연구자 아론 프란젠은 성경을 많이 읽는 것과 사회 정의에 대한 더 강한 열정은 상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는 보통 진보주의와 연계되는 특성이다.

내 세계관이 카드로 지은 집처럼 무너져 내리자 불안했지만, 내 젊은 시절의 신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는 커져만 갔다. 나는 계속 종교를 공부했고, 2년 전에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제 나는 내가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걸 연구하는 게 내 직업이 되었다.

내 교리가 진화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한때 몸담기까지 했던 정치적 보수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 약하고 온순한 사람들, 탄압 받은 사람들의 편이었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가진 것을 팔고'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권했다. 예수는 창녀와 병자들과 어울렸다.

예수의 라이프스타일은 우파의 정치와는 전혀 달랐다.

좌파로의 전향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았고, 가끔은 탈영병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일해서 당선을 도운 사람은 더 이상 내 정치나 내 신앙을 대표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복음주의자들의 기이한 행보(특히 선거가 있는 해에)를 관찰하며, 나는 그들이 신학과 정치를 조화시키는 방식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복음주의자들이 거대한 하나의 조직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전통적으로 보수 정치와 의견을 같이 한다. 자신들이 옹호하는 '가족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개인적 삶을 사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복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크리스천들은 사람이 아닌 정책을 선택한 적이 많았다. 로널드 레이건의 이혼부터 미트 롬니의 모르몬교처럼,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가장 일치하는 수사를 쓰는 사람들,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면 개인적으로 자신들의 교리와 다르다 해도 표를 던졌다.

내가 젊은 공화당원에서 덜 젊은 민주당원으로 변한 것은 신아의 위기가 아니었다. 예수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내 성경 해석을 이끌었던 독단적인 렌즈를 제거하자, 나는 창녀를 옹호하고 가난한 사람과 식사를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수의 삶은 정치적 우파들의 생각을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나도 그런 생각을 버렸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I Left the Right: How Studying Religion Made Me a Liberal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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