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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을 만든(?) 사나이

정치가와 군인으로서 널리 이름을 떨치느라 무척 바빴을(덧붙여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및 심지어 자신을 암살한 브루투스의 엄마 세르빌리아까지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까지 뿌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정확한 역법을 만들어 작은 수정만 거쳐 후대에까지 널리 쓰이게 만들었을까? 마침 오늘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역법 개혁 덕에 생긴 날인 2월 29일이니, 이 유명한 고대 로마의 영웅이 문자 그대로 '시간을 달리는 카이사르'(웃음)가 되었던 경위를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 바베르크
  • 입력 2016.02.29 06:02
  • 수정 2017.03.01 14:12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는 양력을 기준으로 할 경우 4년마다 한번씩 돌아 오는 윤년이다. 그래서 오늘(2월 29일)과 같이 2월에 하루가 더 있게 된다. 양력에서 이런 윤년이 생겨나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 그 때까지의 역법(曆法)을 개혁하여 그의 이름을 딴 율리우스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4년마다 한번씩 2월 23일과 24일 사이에 하루를 더 넣어서 1년을 366일로 만드는 것을 주된 내용 중의 하나로 하는 역법 개정을 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스르가 만든 율리우스력은 별 불편 없이 1600년 넘게 널리 쓰이다가, 1582년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이를 약간 개정한 그레고리력으로 바꾸었다.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윤년 중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에서 제외하되, 그 중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그대로 윤년으로 두는 방식으로, 즉 예컨대, 2100년, 2200년은 윤년에 해당하지 않지만, 2000년과 2400년은 윤년이 되는 방식으로, 율리우스력이 1600여년 쓰이다가 생긴 오류를 바로잡았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을 아주 약간만 수정한 것으로, 율리우스력은 2000년도 훨씬 전에 만들었지만 상당히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치가와 군인으로서 널리 이름을 떨치느라 무척 바빴을(덧붙여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및 심지어 자신을 암살한 브루투스의 엄마 세르빌리아까지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까지 뿌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정확한 역법을 만들어 작은 수정만 거쳐 후대에까지 널리 쓰이게 만들었을까? 마침 오늘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역법 개혁 덕에 생긴 날인 2월 29일이니, 이 유명한 고대 로마의 영웅이 문자 그대로 '시간을 달리는 카이사르'(웃음)가 되었던 경위를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고대 로마의 불세출의 영웅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이지만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는 별다른 출세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카이사르의 희대의 라이벌이 되는 폼페이우스가 이미 20대에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하고 로마 시민들의 상찬을 받았으나 카이사르는 불혹의 나이 무렵에 로마의 이베리아 반도 속주의 총독으로 겨우 나갔을 뿐이었다. 그때 카이사르는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를 읽다가 대왕이 불과 30대 초반에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는 부분을 읽다가 그보다 약 10년 더 나이가 들었으나 아무런 성취도 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말까지 전한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정치적, 개인적 운세는 이베리아 반도 속주 총독직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부터 트이기 시작한다. 그는 무력을 갖춘 폼페이우스와 당시 로마 최대의 재력가인 크랏수스를 설득하여 원로원 체제에 대응하는 3두 정치 체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자신도 폼페이우스와 같은 군사적 업적을 쌓기 위해 갈리아 총독으로 자원하여 드디어 8년 간에 걸친 갈리아 원정에 나선다. 갈리아는 지금의 프랑스, 서부 독일, 스위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그때까지는 로마의 판도 안에 들어가지 않은 지역이었다.

바로 이 갈리아 원정 기간이 아마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당시까지 쓰이던 달력과 실제 시간의 흐름(!)이 잘 맞지 않게 된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 왜냐하면 카이사르는 로마의 군단을 거느리고 갈리아의 만족(蠻族)들을 정복해 나갔는데 그러다가 해마다 겨울이 되면 전쟁을 멈추고 군단병들을 숙영시키며 쉬게 하였다. 이렇게 8년 간 정복전을 계속하였으니 카이사르는 군단병들과 함께 객지에서 겨울을 날 때마다 뭔가 달력이 실제 계절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카이사르의 역법 개정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달력은 실제 계절보다 무려 2-3개월이나 빠른 상태였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현실적이며 합리적이고 영리한 정치인이자 탁월한 군인이었던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의 임기를 마치고, 자신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로마 원로원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 공화정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이태리로 진격하면서도 아마도 실제 계절에 맞추어 병력을 이동시켰던 것 같은 느낌적 느낌. 특히 이제 원로원파와 손을 잡고 그의 노골적인 적수가 된 폼페이우스가 본국 이태리를 탈출해 그리스로 달아났을 때, 당시의 달력으로는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가을이라 생각해서인지 폼페이우스를 쫓아 병력을 모아 이태리의 브룬디시움에서 그리스로 건너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렇게 시간을 달린^^ 덕분인지 카이사르는 그리스에서 압도적인 우세에 있던 폼페이우스에 대적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끝내 파르살루스 회전에서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원로원의 주력 군대를 궤멸(웃음)시킨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까지 달아났으나 그야말로 일패도지(一敗逃地)하여 카이사르를 무서워한 이집트 소년왕 프톨레마이오스와 그를 보좌하는 환관들에 의해 목이 잘려 불귀의 객이 된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오고 나서야 한때의 맹우이자 그의 딸 율리아의 남편이었던 폼페이우스의 목을 이집트인들로부터 건네받는다.

로마의 내전은 이로써 사실상 끝났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막간극으로 이집트 왕위계승전에 말려든다. 다들 아시다시피 여기서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처음 만나게 되고 애인 사이가 된 그녀를 지원하여 그녀의 남동생인 소년왕 프톨레마이오스를 몰아낸다. 그러고 나서 갈리아 정복전과 폼페이우스와의 내전 후에 거의 처음으로 카이사르는 새로 얻은 애인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모처럼만의 일종의 휴가를 만끽하게 된다. 사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후손인 그리스계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당대 최고의 교양을 갖추었기에 카이사르의 말동무가 되어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나일강을 유람하며 이 불세출의 영웅 카이사르의 말동무가 되었고, 심지어 카이사르의 일점 혈육인 카이사리온까지 낳게 된다.

그리고, 이 나일강변을 노니는 유람선상에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희롱하며(쿨럭;) 카이사르는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 수준을 자랑하던 이집트의 학자들과 당시까지의 달력을 개정하는 논의를 시작하였고, 그 과학자들은 전쟁터에서 풍찬노숙하며 실제 계절과 달력이 맞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꼈던 카이사르의 감이 맞았고 달력을 개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이집트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로마의 일인자로 이태리 본국에 복귀한 다음 드디어 역법 개정에 착수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나중에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리는 역법을 완성하는데 드디어 성공하고(기원전 46년), 이해에는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3개월 정도를 더 늘렸고, 앞에서 썼듯이, 앞으로는 2월 23일과 24일 사이에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방식의 윤년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도 있고, 예컨대 나폴레옹처럼 프랑스대혁명이 없었으면 나타날 수 없던 영웅도 있었고, 때를 잘못 만난 영웅이라는 말을 듣는 임진왜란 때의 호남 의병장 김덕령 장군 같은 분도 있지만, 동서고금의 영웅들 중에서 아예 자신이 시대 아니 계절, 달력 자체를 만들었던 영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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