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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남포동에서 생각한 '시민정신의 한계'

여기가 어딜 것이라 생각하는가? 잘 보면 한국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외국인들만 그득하니 한국은 아닌 듯싶다. 그렇다. 이곳은 한국이 아닌 저 북구의 나라, 스웨덴이다. 나는 여기에서 시민정신의 한계를 보았다. 세계 최고의 시민정신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라도 흥겹게 노는 상황에서 마냥 쓰레기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자 그들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무 곳이나 버렸고 공원 전체는 쓰레기장이 된 것이다.

  • 박찬운
  • 입력 2016.02.23 10:51
  • 수정 2017.02.23 14:12

2013년 스웨덴 룬드 시내의 한 공원에 열린 발보리 축제 현장이다.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주변을 잘 보면 쓰레기 천국이다.

발보리 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공원, 온갖 쓰레기가 춤을 춘다. 질서의식이 그렇게도 좋다던 스웨덴인들도 저런 날이 있다.

스웨덴과 남포동에서 본 시민정신

게시한 사진 두 장을 보길 바란다. 여기가 어딜 것이라 생각하는가? 잘 보면 한국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외국인들만 그득하니 한국은 아닌 듯싶다. 그렇다. 이곳은 한국이 아닌 저 북구의 나라, 스웨덴이다.

아름답지 않은 사진 두 장이다. 한 장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운집했는데, 주변을 자세히 보니 온갖 쓰레기가 난무한다. 또 한 장을 보면 이제 군중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 갔다. 그런데 공원 전체가 온통 쓰레기장이다. 저게 스웨덴이다.

저 사진은 3년 전 내가 1년간 머물었던 스웨덴 룬드의 한 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4월 말에 발보리(Valborg)라 불리는 큰 축제가 열렸다. 10만 인구의 룬드의 한 공원에 3만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봄을 여는 흥겨운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 축제가 진행되는 시간 나는 그 현장을 거닐면서 저 사진을 찍었다.

1년간 스웨덴에 있으면서 그쪽 사회를 관찰하건대, 저런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곳은 어딜 가도 청결하다. 사람들은 질서를 잘 지킨다. 공원에 가면 학생들이 모여 놀이도 하고 술도 마시지만 끝나고 나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런 나라에서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호기심 많은 나는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스웨덴 사람들의 시민정신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 하지만 그날 상황에선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공원 관리는 불가능했다. 그날의 축제를 위해 시 당국은 곳곳에 임시 화장실과 쓰레기처리장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시민정신의 한계를 보았다. 세계 최고의 시민정신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라도 흥겹게 노는 상황에서 마냥 쓰레기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자 그들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무 곳이나 버렸고 공원 전체는 쓰레기장이 된 것이다.

며칠 전이다. 오랜만에 부산에 갔다. 남포동을 돌아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거리 음식을 시식했다. 인산인해의 인파 속에서 30분이나 기다리며 호떡 한 개를 사먹으면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쓰레기장 한 가운데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거리 곳곳은 음식물, 플라스틱 용기 등이 마구 버려져 가히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것이 국제 관광도시, 부산의 민낯이었다.

부산 사람들의 시민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곰곰이 살펴보니 그곳에도, 예의 스웨덴과 같이, 거리에서 먹고 마신 다음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마땅한 시설이 없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내겐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게 여간해선 쉽지 않을 것이다. 슬그머니 길바닥에 놓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저 남포동의 현상을 시민정신의 부재라고 몰아 부칠 수 있을까. 적어도 정부나 공무원들이 그것을 따질 일은 아니다. 정부나 공무원들이 할 일은 쓰레기통을 만들고, 사람들이 손쉽게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런 연후에 시민들의 의식을 탓해도 늦지 않는다.

모든 상황에서 시민의 질서의식이 자동적으로 발동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이런 덕성을 키우는 데서도 정부는 우선적으로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시민들이 공공성의 덕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시민적 덕성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스웨덴과 남포동의 쓰레기를 염두에 부면서 이제 시민의식 혹은 시민정신이라 불리는 시민적 덕성이 어떻게 키워지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덕성은 라틴어론 virtus인데, 여기서 영어 virtue 가 나왔다. 이 개념은 공화주의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로마 공화정의 필수덕목이었다. 시민의 덕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공화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덕성, 곧 virtus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뛰어넘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세를 뜻했다. 이 자세는 구체적으론 용기, 정의, 배려 등 세부적 덕성으로 나타난다.

우린 현재 매우 파편화된 개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시민의 덕성으로 공공성을 더욱 강조한다.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경계하며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나는 공공성을 강조한다 하여 개인을 버리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을 추구하지고 하는 것은 하나의 허위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안중근 의사나 김구 선생이 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원칙이고 기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와 사회의 관계를 생각하고 나의 삶이 사회 전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공익추구는 이런 삶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혹자는 공화주의적 자유주의라고, 또는 자유주의적 공화주의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전자로 보는 경우는 나의 개인관을 크게 보는 경우이고, 후자로 보는 경우는 나의 사회관을 중시하는 것일 게다. 내게 직접 묻는다면 나는 후자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하튼 이게 내가 바라는 시민적 덕성의 골자다. 그럼 이런 덕성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그저 시민 각자의 정신수양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 성리학으로 말하면 퇴계 이황과 같은 사람이다. 주리론적 관점이다. 그에 반해 사회의 제도와 기반에서 그 덕성의 가능성을 찾는 사람도 있다. 주기론적 관점이다. 퇴계와 사단칠정론으로 쟁론했던 고봉 기대승의 입장이 그랬으리라. 나는 이들 입장 중 후자를 지지하는 편이다.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은 타고나는 면이 크지만 많은 부분 길러지는 것이기도 하다. 타고나는 것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수양하고 교육됨으로써 좀 더 나은 존재로 길러지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수양하여 한 인간이 바뀌는 것에 과도한 기대를 걸어선 곤란하다. 자기수양만으로 시민적 덕성을 갖춘 인간이 되긴 사실상 어렵다. 항산에 항심이라 하지 않았는가. 물적기초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자기수양 혹은 정신수양을 강조하는 것은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복지와 시민적 덕성의 관계

공공성의 덕성은 사회적으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가 넘칠 때 쉽게 형성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연대가 가능할 때 시민적 덕성은 쉽게 싹트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선 사람들은 오로지 생존하는 데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런 사회에선 공공의 이익이란 그저 사치스런 구호가 될 뿐이다.

시민적 덕성을 키우기 위해 사회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제도와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복지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며, 교육제도는 그것의 중심이다.

그런 연후 우리는 개인의 수양을 강조해야 한다. 덕성을 키우는 사회적 기반이 없음에도 개인수양, 정신수양을 말하고, 더욱 우리 사회는 복지과잉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선, 시민적 덕성을 기대할 순 없다.

정치인들이 시민적 덕성을 이야기할 땐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시민적 덕성을 키우기 위해 정치는 무엇을 했는지...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넘어 공공에 관심을 둘 수 있도록 어떤 사회적 기반을 만들었는지(만들고 있는지)...

정치인(지도자)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겐 공공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 숭고한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가소로운 일은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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