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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

셋째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지원해 준다는 값싼 구호 대신, 매 맞는 아이 하나의 목숨과 이들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정부 역할에 관한 근본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일면 저출산을 걱정하며 동시에 아이를 돌보지 않는 사회는 벼농사가 안된다고 걱정하면서 저장된 쌀을 썩혀버리는 우매한 짓과 똑같다 하겠다. 아동에 관한 정책은 가족정책과 깊은 연계 속에 사회전반이 책임을 져야 하며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스웨덴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슬로건이 오는 4월 총선에서 모든 정치 지망생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되었으면 한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2.22 12:56
  • 수정 2017.02.22 14:12
ⓒShutterstock / Kuttelvaserova Stuchelova

아동학대, 체벌금지법을 제안한다

글 |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아동들에 대한 학대, 폭력, 살해사건이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드러난 것만으로도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 10년 사이 2배가 넘는다. 부천 11세 막내딸 살해 사건과 이를 계기로 밝혀진 7세남아 시신훼손 사건, 또다시 딸을 암매장한 어머니 사건들이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부모에 의한 장기간의 폭행, 학대로 죽음을 가져왔다는 것이며 더욱 여러 해 동안 숨겨왔던 사실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방임 자체가 더욱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동폭력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나 이제라도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것이 늦었지만 다행으로 여겨진다. 저항능력이 없는 아이의 고통과 살해에 관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극히 후진적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어디에서도 이를 정치이슈로 들고 나오는 정당은 없다. 1975년 비슷한 사건이 스웨덴 사회에서 벌어졌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열띤 토론은 결국 정치인들로 하여금 79년 세계 최초로 체벌금지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아동권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범사회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었다. 장애아동성학대를 다룬 '도가니'가 잠시 떠들썩하였으나 이후 아동권에 대한 이해가 별로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은 없다. 아동학대 발굴율이 선진사회에 비해 대단히 미약하며 최근 이어지는 아동폭력 및 학대 사건은 가정에서에서 뿐 아니라 아이를 전문적으로 돌보는 어린이집, 심지어 교육현장에서 까지 터져 나오는 것은 심각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저출산 문제이며 이것이 국가적 의제로 제기 된 지가 10여년이 훨씬 지났다. 지속적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감소한다는 것은 인구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결국 성장잠재력의 저하는 물론 사회의 지속발전가능성과 개인의 삶의 질 또한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국가가 취해야 할 태도는 출산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회경제, 문화적 수단과 아울러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하나하나가 건강하게 자라 원만한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정책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올바른 성장을 돕는 육아정책은 현대 민주국가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의 하나이며, 저출산문제의 해결을 위하여서도 아동학대 방지책은 반드시 국가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육아정책에 대한 투자는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영미권이나 북유럽 등지에서 거의 비등하게 나타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범주에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과 보호자에 의한 유기, 방임이 포함된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아동학대 사건은 10만 건이나 되며 이들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발생하고 부모에 의한 학대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배후를 살펴보면 위기에 처한 가정환경이 대부분이다. 경제적 어려움, 질병, 가정불화, 약물이나 알코올 등에 의한 환경 하에서 방어력이 약한 아이들이 분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가해자의 상당수가 이미 스스로 아동학대 피해경험을 안고 사는 성인이거나 또는 최근 증가하는 미성년 부모들이다.

아동학대에 관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아동의 권리보호와 정상적인 성장을 보장하는 복지의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아동에 대한 성인의 폭력은 아동권을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로 어떠한 정당성도 있을 수 없으며 국제기준에 대한 위반이다. 훈육을 빌미로 한 아동학대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반복행위가 급기야 아동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게 된다. 학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예방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이것이 실현되도록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아동'에 관한 문구가 전무하다.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의 헌법에는 아동권보호에 대한 조항이 가장 먼저 눈에 띤다. 다행히 81년 아동복지법이 제정되었고 지난해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지 못하도록 신설조항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이 조항은 체벌 금지를 명하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민법 915조가 친권자의 훈육적 체벌을 허용하고 있어 거의 무늬만 맞춘 꼴이 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바 있어 세계 경제규모 12위권에 드는 한국정부로서는 이 협약의 내용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이 협약에 의하면 "당사국은" 아동복지에 필요한 보호와 배려를 아동에게 보장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3조). 또한 모든 아동이 고유의 생명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가능한 최대한도로 아동의 생존과 발달을 보장하여야 한다(6조)고 명하고 있다.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대나 방임에 노출된 가정을 사전에 발굴할 수 있어야 하고, 상담 및 치유교육과 위기에 처한 아동을 보호할 서비스 홈 등 다양한 그물망이 갖추어 져야한다. 복지부, 교육부 그리고 여성가족부가 함께 나서 국가적 행동계획을 구체적 목표와 함께 세워야 하며 이를 담당할 역할 분담 조직표도 명시하는 것이 효율성을 높인다. 가장 지역주민생활에 밀접하고 현장의 문제 파악이 쉬운 지방정부의 역할과 의무가 재조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시에 아동권 보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위기가정에 대한 부모상담 및 교육 아울러 이에 관한 사회문화 운동이 요구된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학대자 즉 피처벌자가 감소되는 것을 사회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선 체벌금지법 제정이 우선이다.

아동학대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다른 특징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불평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이러한 가정은 증가하며, 희망이 없는 삶에서는 사회규범이나 윤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에는 아동학대 항목이란 복지예산이 없고 사후관리 차원에서 범죄피해기금과 복권기금으로 이를 충당한다고 한다. 셋째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지원해 준다는 값싼 구호 대신, 매 맞는 아이 하나의 목숨과 이들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정부 역할에 관한 근본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일면 저출산을 걱정하며 동시에 아이를 돌보지 않는 사회는 벼농사가 안된다고 걱정하면서 저장된 쌀을 썩혀버리는 우매한 짓과 똑같다 하겠다.

아동에 관한 정책은 가족정책과 깊은 연계 속에 사회전반이 책임을 져야 하며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스웨덴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슬로건이 오는 4월 총선에서 모든 정치 지망생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되었으면 한다.

글 | 신필균

현재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스웨덴 사회보험청과 스톡홀름광역시 의회 등에서 복지관련 행정과 연구 활동을 하였고 대표적 저서로선 <복지국가 스웨덴-국민의 집으로가는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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