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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계의 광대 왕자의 귀환, 알수록 재미있다! | 『가족의 죽음』이 재발견한 조커의 역사

배트맨의 가장 무서운 숙적으로 큰 인기를 끌던 조커는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친 살인귀가 아닌 까불이 악동으로 이미지 변신을 한다. 거기에 결정타를 박은 것이 1966년 아담 웨스트 주연의 TV 시리즈였다. 물론 이 시리즈가 TV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서 배트맨을 당대 가장 핫한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격상시키고 마니아층을 형성하게 한 공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캐릭터들이 거의 희화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화 작가 사이에서는 배트맨이 가진 진정한 '어둠의 기사'로서의 면모, 배트맨의 악당들이 갖고 있는 잔인한 악인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하나의 숙원과도 같았다.

  • 이규원
  • 입력 2016.02.22 12:16
  • 수정 2017.02.22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21] 범죄계의 광대 왕자의 귀환, 알수록 재미있다!

─ 『가족의 죽음』이 재발견한 조커의 역사

그동안 배트맨의 역사라든지, 배트맨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왔는데, 연재가 거의 마무리에 이른 이즈음에 기존에 출판된 뉴52 배트맨 만화책들의 일종의 주석 개념으로, 몇몇 장면을 정리해 보았다. 앞서는 『올빼미 법정』의 뒤집힌 페이지 이야기를 했고, 이번에는 『가족의 죽음』 이야기가 여러 편에 걸쳐 진행될 것 같다.

1940년 《배트맨》 1호의 재발견

스콧 스나이더의 『배트맨 3: 가족의 죽음』은 조커의 잔인한 범행 행각의 연대기를 처음부터 더듬어 간다. 그리고 1940년 밥 케인과 빌 핑거의 《배트맨》 1호의 이야기를 2013년 버전으로 새롭게 이야기한다. "오늘 자정에 하디 시장이 죽는다!" TV 화면을 통해서 살인을 예고하는 조커. 살인 예고의 도구로 사용된 존 클래리지는 1940년 조커의 첫 희생자였던 헨리 클래리지의 아들. 그때 당시와 똑같은 상황에서 펼쳐지는 살인 사건. 이 이야기의 근원은 1940년 조커가 처음 등장한 《배트맨》 1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트맨》 1호에서도 조커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살인을 예고한다. "오늘 자정에 헨리 클래리지가 내 손에 죽는다. 나는 클래리지의 다이아몬드를 훔칠 것이다. 누구도 날 막을 수 없다. 나는 조커다." 십여 명의 경찰이 현장에 몰려와서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지만, 클래리지는 12시가 되는 순간 공포스러운 웃는 얼굴의 시체로 변해 버린다. 다이아몬드 역시 어느새 가짜로 바꿔치기 당한 상태. 다이아몬드 케이스 아래에는 조커의 카드가 표식으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 예고. 다음번 희생자로 예고된 제이 와일드를 경찰이 둘러싸서 지키지만 역시나 속수무책. 조커는 70년 전 자신의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가족의 죽음』에서 멋지게 재현해 낸다.

2013년 재현된 조커의 데뷔 무대. 차이점은 1940년 타겟이었던 헨리 클래리지의 아들로 살인 예고를 하고, 타겟을 뺀 모두를 노렸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왼쪽: http://thegreatcomicbookheroes.blogspot.kr/2014/02/the-jokers-first-appearance-in-batman-1.html, 오른쪽: 세미콜론)

다시 탄생한 《배트맨》 2호의 마굿간 장면

1940년 《배트맨》 2호의 내용도 『가족의 죽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2호에서는 1호에서 죽은 줄 알았던 조커가 살아 돌아온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간 조커. 브루스 웨인은 조커에게 뇌수술을 시켜 착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데, 그와 반대로 한 범죄조직이 조커를 회복시킨 다음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갱단은 조커를 수술할 시간을 벌기 위해 수배자인 '서커스 찰리'를 가짜 배트맨으로 만들어 경찰을 유인한다. 이때 서커스 찰리는 가짜 배트카를 몰고 경찰을 유인해 한 마구간에 들어가서 전투를 벌인다. 마구간 안에서 경찰들과 전투를 벌인 끝에 말을 타고 탈출하는 가짜 배트맨의 모습은, 『가족의 죽음』에서 불타는 마구간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1대 다의 육탄전의 분위기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가족의 죽음』에서 벌어진 배트맨의 장절한 격투, 왜 갑자기 말이 등장하는지 궁금했던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 궁금증이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이미지 제공: 세미콜론)

조커의 왕실 태피스트리, 1940~1960년대 배트맨

이 마구간 장면 바로 뒤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조커의 왕실 태피스트리인데, 이 왕실 태피스트리에 그려진 그림은 각각 1978년 스티브 잉글하트 글, 마샬 로저스 그림의 《디텍티브 코믹스》 475호 '웃는 물고기'편, 1973년 데니스 오닐 글과 닐 애덤스 그림의 《배트맨》 251호 '조커의 다섯 복수'편, 1981년 짐 스탈린 글에 짐 아파로 그림의 《배트맨》 428호 '가족의 죽음'편, 2000년 그렉 루카와 데빈 그레이슨 글, 데이먼 스콧과 대일 이글샴 그림의 《디텍티브 코믹스》 741호 '엔드 게임 3장: ...아기 잘도 잔다'편, 이 네 개의 만화에서 명장면을 따온 것이다.

『가족의 죽음』에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겨 준 돌메이커에게 조커가 다시 의뢰한 인간 가죽 태피스트리. 두 사람의 추억(?)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미지 제공: 세미콜론)

앞서도 잠시 소개했지만, 조커는 초창기 배트맨 만화의 가장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악당으로서 고층 빌딩 공사 현장, 달리는 기차, 비바람 치는 날 등대 위, 절벽 위,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기구 위에서 배트맨, 로빈과 격투를 벌인 끝에 추락하고 살아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스콧 스나이더가 뉴52 배트맨 시리즈에서 보여 준 조커의 추락, 그리고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의 귀환은 1940년대 초 배트맨 초창기 시리즈에서 정형화된 이야기 공식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렇듯 배트맨의 가장 무서운 숙적으로 큰 인기를 끌던 조커는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친 살인귀가 아닌 까불이 악동으로 이미지 변신을 한다. 거기에 결정타를 박은 것이 1966년 아담 웨스트 주연의 TV 시리즈였다. 물론 이 시리즈가 TV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서 배트맨을 당대 가장 핫한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격상시키고 마니아층을 형성하게 한 공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캐릭터들이 거의 희화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화 작가 사이에서는 배트맨이 가진 진정한 '어둠의 기사'로서의 면모, 배트맨의 악당들이 갖고 있는 잔인한 악인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하나의 숙원과도 같았다.

조커의 다섯 복수

『배트맨 앤솔로지』 제3부 '밤의 피조물'에서는 1970년대에 변신한 배트맨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어쨌든 이 시기에 배트맨을 원래의 어둠의 기사로 되돌리는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이 데니스 오닐과 닐 애덤스 두 작가였다. 그와 대결할 존재인 악당 역시도 어둡고 무서워야만 했는데, 그래서 두 작가는 1973년 《배트맨》 251호에서 조커를 귀환시킨다.

이야기는 조커의 미친 웃음소리로 시작한다. 고든 국장과 배트맨은 웃는 얼굴로 죽은 시신을 발견하는데, 그 근처에는 조커의 카드가 떨어져 있다. 때는 아직 배트맨 월드에 '아캄 수용소'라는 정신병원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아캄 수용소는 1974년 《배트맨》 258호에서 처음 '아캄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배트맨 251호에서는 조커가 탈출한 병원이 정신병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병원이라고만 소개된다. 문제는 지금 조커가 이 병원에서 탈출한 상황이고, 자신을 병원에 집어넣는데 협력했던 자신의 부하 다섯에게 복수를 할 생각이라는 것. 조커는 그 다섯 명을 하나씩 추적해 그중 둘은 웃는 얼굴로 죽는 조커 독으로 살해하고, 또 하나는 니트로글리세린으로 가득 채운 담배를 물려 불을 붙인 후 폭발시켜 죽이고, 네 번째는 잔인하게 목매달아 죽인다. 네 번째 살인 현장에 뒤늦게 나타난 배트맨은 조커에게 뒤통수를 맞고 기절하는데, 조커는 쓰러진 배트맨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독백한다.

"이 자리에서 이놈의 숨통을 끊어도 좋겠지! 그러면 마침내 내가 승리하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이긴다면 너무 허무하잖아! 그저 운빨로 이긴 거라고, 내가 꿈꾸는 승리는 그게 아니야. 배트맨이 탐정의 기술로, 나는 내게 주어진 광기의 재능으로 치열하게 승부를 벌이고, 그 끝에 내 속임수가 마침내 이기는 것! 그런 승리여야 해! 아니! 그것도 아니야! 지난 세월 배트맨과 벌여 온 수많은 승부! 거기서 승리란 아무 의미도 없어!''

조커는 마지막 부하를 거대한 수족관 속 상어에게 먹이로 줘 죽이려고 하면서, 배트맨이 대신 수족관에 들어간다면 부하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배트맨은 그 약속에 따라 손을 뒤로 묶인 채 수족관으로 걷어차여 떨어지지만, 조커는 약속을 어긴다. 이 마지막에 조커는 배트맨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잘 봐! 우린 서로 닮았어!'

왕실 태피스트리 그림에서도 재현된 바 있는(왼쪽에서 두 번째)

'조커의 다섯 복수'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http://shankie.dreamwidth.org/93901.html?thread=916173)

오늘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나 1988년 앨런 무어와 브라이언 볼랜드의 작품인 『배트맨: 킬링 조크』, 그리고 스콧 스나이더의 뉴52 등에서 배트맨과 조커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많은 공통점을 가진 닮은꼴이면서도 다른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런 해석의 기원격인 작품이 바로 '조커의 다섯 복수'다.

TV시리즈의 이미지를 벗고 미친 살인마로 돌아온 조커.

'조커의 다섯 복수'가 수록된 《배트맨》 251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251?file=Batman_251.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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