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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가문의 가업이 (지금으로서는) 끝나다

ⓒgettyimage/이매진스

두 부시 대통령 부자가 내 친구 존 미첨이 아버지 부시의 긴 커리어에 대해 쓴 책 '운명과 권력'에서 말한 것은 믿으면 안 된다.

조지 H.W. 부시와 조지 W. 부시는 미첨에게 초기에 네 아들 중 젭이 가장 사랑을 받았으며, 가족 내에서 가장 재능이 있고 준비가 된, 부시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가장 잘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사실이란 걸 안다. 나는 그 초기 시절에 부시 가족의 옆에서 젭의 부모의 눈에 떠오른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 바버라가 그랬다.

반면 조지가 메인 주 케네벙크포트에서 가족들의 여름 별장에서 부모들과 있을 때 보면 부자간의 바디 랭귀지는 어색했다.

젭은 어느 모로 보나 이상적인 부시 가문의 아들이었다. 키 크고, 똑똑하고, 학구적이고, 용감하고, 교육을 잘 받았다. 조지는 장남이었지만 키가 작고 지적으로는 그저 그랬으며 말썽꾼이었다.

젭이 1994년에 처음으로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나는 그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에버글레이드 습지 위를 날아갔다. 그는 옛날 풍 귀족적 환경주의자였고, 내게 습지대의 물 흐름 패턴과 공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그와 함께 플로리다 중부 내륙지의 작은 스페인어 라디오 방송국에 갔고, 그는 놀랄 정도로 편안하게 음악적으로 스페인어를 했다.

젭은 정치적으로 자신이 없어 했는데, 그건 그것대로 매력이 있었다. 그는 정치가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에 정치를 한다는 느낌을 풍겼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부시 가문이 하는 일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부시 가족과 동의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진짜고 품위가 있다. 플로리다인들은 그에게 표를 던지며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해에 개성이 강하고 무식한 그의 형이 의외로 텍사스 주지사가 되고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닦기 시작한 반면, 그는 예상 밖으로 졌다.

젭은 기세가 꺾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를 누른 것은 가족이었다. 대선이 있던 날 조지 H. W.와 바버라는 장남의 승리에 기뻐했지만, 차남의 감정을 걱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똑똑한 아들, 세심한 아들, 재능있는 아들인 차남.

젭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정치에서는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간이 흐르고 그의 형의 말썽많은 임기 두 번이 지나고, 그래서 새로운 더 강경한 보수주의가 부상하자, 젭의 타이밍은 끝나 버렸다.

하지만 부시 가문은 포기하지 않고 지는 걸 싫어한다. 어떤 일에서든 말이다.

그래서 3년 전에 젭은 조용히 공화당 대선 후보 풀에 들어가, 조용히 활동하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은 자금 조성과 조직 행사를 가졌다.

2년 전 디트로이트에서 온건한 공화당 기부자들과 가졌던 비공개 만찬에서 그는 입후보할 것이라고 열심히 이야기해 동석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젭이 입후보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년 전 워싱턴의 명망 있는 알팔파 클럽의 비공개 만찬에서 젭은 잘 생긴, 정치적으로 잘 다듬어진 아들 조지 P. 부시를 데리고 나타났다. 지금 조지 P. 부시는 텍사스 주 토지 사용 위원회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젭은 당시 37세이던 아들을 가업에 소개하고 조금 물러설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기업의 거물들, 상원의원들, 장군들, 전직 국무장관들 앞에서 젭이 2016년에 직접 출마하겠다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언제나 그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게 부시들이 하는 일이고, 그의 차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차례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해도 말이다. 정치의 변화, 그가 마지막으로 출마한 게 2002년이라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나는 그가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팩이 준 1억 달러를 탕진시키는 컨설턴트들 중 예리한 사람들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현금을 원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았을 거라고 늘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젭에게 자신들의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최대한 힘을 짜내서 응원했다. 영향이 미미한 늙은 조지 H. W. 대통령도 전화를 돌렸다. 심지어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사 니키 헤일리에게 전화를 걸어 젭을 응원하기도 했다. 조지 W. 는 텍사스에서 날아와 성실하게 유세를 돌며 모두에게 왜 내가 조지 W. 를 개인적으로는 좋아했어도 대통령으로 여기지는 않았는가, 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바버라는 자신이 아끼는 아들 젭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은 이들을 놀리기가 쉽다. 요즘 옛 WASP는 거의 코믹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그들의 성취와 믿음을 너무 순진한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봉사'하기 위해 정치하지만, 그 봉사로 그들은 부와 권력을 유지하며, 기업-정치의 합의에 대한 봉사가 대부분이다.

조지 H. W. 가 조금 증세를 했다는 이유로 존경 받는다는 것은 우리 정치의 빈약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의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첨이 멋진 저서에서 지적했듯, 이런 가문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다. 그들은 미국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심지어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을 영원히 차지해 왔다. 어쨌거나 우리는 정부의 특권보다는 가족의 삶, 신앙, 자유 시장에 더 기반을 한 나라다. 우리는 국가라는 개념을 위 사람들에게서 가져오고, 그건 가족을 의미한다.

식민지 시대, 그리고 그 이후에 부시 가문은 성공회 목사들이었다. 그리고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의 새뮤얼 부시가 궤도차를 만들어 돈을 벌었고, 20세기 초반에 워싱턴에서 전국 생산자 협회를 만들며 정치에 발을 담근 첫 부시가 되었다.

그의 아들 프레스콧은 미국 상원 의원이 되었고 부통령감으로 거론되었다. 그의 아들이 조지 H. W. 부시이며, 그는 조지와 젭을 낳았다. 젭은 텍사스 토지 사용 위원회원을 낳았다.

토요일 밤에 젭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는 얼른 무대에서 내려가 그가 '개인적인 삶'이라고 부른 것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티가 역력했다.

나는 그가 은밀히 개인적 삶을 더 선호한 것을 높이 사지만, 그가 패배를 각오한 것을 후원한 그의 가족들도 높이 산다.

부시 가문에서 아마 말할 것과 같이, 축복을 빈다. 그리고 조지 P. 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를 기다리겠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e End Of The Bush Family Business, For Now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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