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고려대 성적장학금 폐지, 비판할 일이 아니다

미국 아이비리그나 최고공립대학들도 모두 성적장학금 폐지하고 거의 100% 저소득층 장학금이다. 덕분에 이런 곳 합격만 하면 저소득층인 사람도 등록금 생활비 걱정없이 학교를 마칠 수 있다. 나도 수혜자 중의 한 명이었다. 아니 그게 없었다면 학교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대 와서도 학부 가르칠 때는 생활비/등록금 알바 때문에 수업시간에 결석하거나 자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이 F를 줄 때 정말 가슴 찢어졌다.

  • 박경신
  • 입력 2016.02.21 08:42
  • 수정 2017.02.21 14:12
ⓒ한겨레

고려대 장학금 | 다수들 사이의 경쟁의 판돈으로 가난한 소수를 지원한다

나라가 진짜 걱정인건 고려대의 성적장학금 폐지 기사에 달린 악플들 때문이다(무려 DAUM기사에서). 미국 아이비리그나 최고공립대학들도 모두 성적장학금 폐지하고 거의 100% 저소득층 장학금이다. 덕분에 이런 곳 합격만 하면 저소득층인 사람도 등록금 생활비 걱정없이 학교를 마칠 수 있다. 나도 수혜자 중의 한 명이었다 -아니 그게 없었다면 학교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대 와서도 학부 가르칠 때는 생활비/등록금 알바 때문에 수업시간에 결석하거나 자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이 F를 줄 때 정말 가슴 찢어졌다.

참고로 고려대의 계획은 장학금총액은 늘이되 기초+차상위학생들에게 등록금까지만 보장되던 기존제도에 월30만원의 생활비 및 근로장학금 우선제공을 하겠다는 것이다.

고려대학교가 무한경쟁을 위해 우수한 학생을 유인하기 위한 성적장학금을 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좋은 입학생에 기대서 학교를 키우고 싶어하는 곳은 그렇게 해야 하고 그럴 필요도 있다. 중하위권 학교들이 성적장학금으로 좋은 학생을 유치하려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위 '명문대'들까지 그래왔던 것은 나라를 병들게 하는 일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라. 진짜 학교보다 성적 나쁜 학생 입학시켜서 더 좋게 만들어 졸업시키는 학교가 어디있나. 어떻게해서든 좋은 입학생 끌어다가 그 학생들 능력(특히 고시능력)에 기대서 학교수준 유지하기에 급급한 학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중등교육은 과도하게 학력 위주의 입시에 매달리며 학생들을 죽여왔다(대학입시 과열과는 또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고려대학교가 - 공립도 아니고 사립학교가 - 사회정의를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에 칭찬은 못해줄망정 욕을 하는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기사 댓글을 달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반값 등록금 지지했던 분들 계실텐데 제발 다시 한번 생각 좀 해보시길 바란다. 고려대까지 온 학생들까지도 서로 경쟁시켜서 이긴 사람들에게 몰아줘야만 속이 시원한가?

그렇다고 학생들이 '고려대까지 온 똑똑한' 애들이니 배려하자는 건 더욱더 아니다. 반값등록금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15%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복지가 아니라 담합일 뿐이다. 복지는 사회정의를 위한 것이며, 사회 전체의 정의를 목표로 해야지 쉽게 동의되는 다수들 사이의 균분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고대학생들의 대다수는 기초+차상위에 속하지 않으며 이들이 성적장학금에 의존하고 싶다는 점은 이해한다. 기초+차상위 vs. 중류층 구분하기도 어렵다는 점 이해한다. 하지만 그 우려에 대한 답은 등록금 자체를 낮추는 것이지 '우리 경쟁할테니 살아남으면 주세요'라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경쟁의 판돈으로 쓸 돈으로 가난한 소수를 지원하는건 등록금 낮추기 전에라도 목표로 삼을 만한 사회정의이다.

뛰어난 사람들 챙겨주는 건 시장이 알아서 한다. 물론 사립학교도 그럴 수는 있다. 단, 그럴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는게 공적책무라고 생각하는 학교를 비판하지는 말자.

염재호 총장의 건투를 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고려대 #장학금 #박경신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