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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항암제 남은 주사액 기부 종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사제 하나에 5백만원이나 되는 엄청 비싼 약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쓰고 남은 게 있는데 병원에서 다른 환자에게 기부를 종용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싼 약인데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다른 환자에게 기부하는 것이 무엇이 나쁠까? 라는 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 비온뒤
  • 입력 2016.02.19 12:02
  • 수정 2017.02.19 14:12

주사제 하나에 5백만원이나 되는 엄청 비싼 약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쓰고 남은 게 있는데 병원에서 다른 환자에게 기부를 종용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마 전 비온뒤 게시판에 희귀암을 앓고 있는 환자의 제보가 올라왔습니다. 44세 여성인 박모씨로 대장과 난소, 자궁내막에 원발 부위를 알 수 없는 암이 동시에 생겨 2015년 2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 2015년 12월 경기도 군포의 A병원에서 3세대 면역 항암제로 각광받고 있는 키트루다(Keytruda)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키트루다는 얼마 전 악성 흑색종이 뇌로 전이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말끔히 치료해 화제가 된 첨단 항암제입니다.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찾아내 죽이도록 유도하는 항체입니다. 2세대 항생제인 표적 항암제보다 더욱 정교하게 타겟을 공격하고 화학 항암제가 아닌 생물학적 항체이므로 치료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합성되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백신처럼 배양하는 생물학적 제제이므로 대량생산이 쉽지 않아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 MSD에서 시판 중인데 100mg 주사제 한 병당 우리 돈으로 5백만원 정도 합니다.

대개 6차례 투여해야 하고 한번에 체중 1kg당 2mg이 필요하므로 체중에 따라 전체적으로 3천만원에서 6천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선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전액 환자가 본인 부담해야 합니다.

문제는 병원 측으로부터 체중이 적게 나가니 남은 주사액을 다른 암환자에게 기부하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체중이 40kg이었으므로 80mg만 투여하고 나머지 20mg을 같은 병원 다른 중학생 암환자에게 주자는 것이지요.

어차피 폐기 처분할 것이니 기부하자는 것인데 박 씨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체중이 수킬로그램 더 늘어난데다가 임상시험 관련 논문을 뒤져보고 전문가 자문을 구해보니 체중 1kg당 10mg까지 최대 5배까지 투여가 가능하며 이 경우 1년 생존률이 비록 통계적으로 유의하진 않았지만 5% 정도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병원 측의 거듭된 요청에도 두 차례에 걸쳐 거부하자 병원 간호사가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동 복도에서 박 씨를 향해 "당신 혼자 살려고 다 맞으려 하느냐"며 면박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박 씨가 알고 봤더니 이 병원에선 다른 암환자에게도 자비 부담으로 산 키트루다에 대해 남은 약을 기부토록 종용했다 하는군요.

비싼 약인데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다른 환자에게 기부하는 것이 무엇이 나쁠까? 라는 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첫째,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체중 1kg당 2mg 투여는 효과를 얻기 위한 최소량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부족해도 효과는 0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적정 용량의 50%를 먹게 되면 효과는 50%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예 0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약이 mg 단위의 소량으로 투여되므로 링거에 묻어 환자의 몸으로 들어가지 못한 양까지도 감안해야 합니다. 게다가 남은 용량을 주사기로 옮기는 과정이 간호사의 눈으로 측정하는 방식이므로 섬세하지 못해 오차가 생길 경우 20%를 초과해서 떼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자기 돈으로 약을 구입한 환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입니다. 기부란 이유로 20%를 싹둑 떼어갔는데 이것 때문에 원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남은 20%를 다른 환자에게 투여해도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수문제 풀듯이 20%를 투여하면 20%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부한 사람이나 기부받은 사람이나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게다가 비용 청구도 논란거리입니다. 만일 기부받은 환자에게 돈까지 따로 받았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며 법적 처벌도 가능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원칙에 위배됩니다.

모든 약은 투약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제조사인 MSD 정헌 학술이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은 약을 다른 환자에게 투여해선 안된다"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제재이므로 주사제 병의 뚜껑을 여는 순간 변질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남은 약은 모두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환자를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생명이 위태로운 암을 앓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수천 만 원에 달하는 값비싼 비용을 들여 신약을 투여하고 있는데 남은 약을 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 앞에서 면박을 주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키트루다를 비롯한 고가의 3세대 항암제들이 우리나라에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술이나 기존 항암제로 치료되지 않은 말기암 환자들에겐 마지막 희망입니다.

물론 이들 항암제가 마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 지금까지 백약이 무효였던 암 덩어리가 사라지는 작은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비싼 가격입니다. 제대로 치료하려면 수천 만 원의 비용이 듭니다. 현재까진 건강보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신약이라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100mg이면 10분의 1 그램입니다. 눈곱만큼 작은 양인데 500만원이나 합니다.

그러다보니 남은 약에 대해 미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다른 병원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입니다.

병원 관계자는 "같은 병원에 입원한 중학생 말기 암환자의 사정이 딱해 순수한 기부 차원에서 금전적 대가없이 박 씨에게 부탁한 것"이라며 "과정에서 박 씨 등 환자에게 부담을 준 사실이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얼마 전 주사기의 재사용 문제가 또 불거져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병원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처구니없게 남은 주사약 기부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가약이라도 남은 주사약은 폐기 처분해야하며 다른 사람에게 기부할 수 없습니다. 의학적 필요성도 없을 뿐더러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병원을 비롯한 의료계가 기본적 원칙을 제대로 지켜주길 바랍니다. 아울러 보건당국은 주사기 재사용은 물론 남은 주사약 기부 등 원칙을 훼손하는 사례가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겠습니다.

*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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