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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기자들 앞에서 삼성이 뱉은 말들

일말의 반성 혹은 자책, 아니면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내비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워낙 잘나가는 기업이라는 "독특한 지위"로 인하여,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 그러한 탓에, 억울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투다. 토론회 내내 삼성의 입장이 그러했다. 회사가 안전관리에 있어 어떤 잘못을 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병들고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삼성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 임자운
  • 입력 2016.02.19 06:38
  • 수정 2017.02.19 14:12
ⓒGettyimageskorea

17일 오전, 반올림과 삼성전자, 가대위(직업병 피해가족 대책위원회)가 한 자리에 모였다. 어느 외신 기자 모임(AAJA. 아시아어메리칸 언론인 협회 서울지부)이 주최한 「백혈병 피해자와 삼성 관계자들의 작업장 안전에 대한 토론회」 때문이었다.

이 토론회는 본래 한 달 전에 열리기로 했었다. 그러나 삼성 측이 참여를 주저하고 가대위 도 '삼성이 불참하면 우리도 가지 않겠다'고 하며 연기됐다. AAJA 측은 삼성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대화 방식, 참여자, 대화 주제 등을 삼성의 요구에 최대한 맞추어야 했다. 이날 반올림 활동가들은 토론자로 나설 수 없었는데, 그 또한 삼성과 가대위가 강력히 요구했던 사항이다. 결국 반올림 측에서는 황상기 님(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과 김시녀 님(삼성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이 토론자로 나섰고, 반올림 활동가들은 참관만 할 수 있었다. 삼성과 가대위는 반올림 활동가가 방청석에서 발언하는 것조차 막았다.

아무튼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토론회에서 매우 인상적인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다섯 가지만 꼽는다. 모두 삼성전자 측 토론자의 발언이었다.

1. "왜 삼성에서만 문제냐고?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은 580개가 넘는다. 국내에서도 6개 회사가 30여개 라인을 운영한다. 그 중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23년째 1위다.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최첨단,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안전설비 또한 다른 어떤 기업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런데도 왜 삼성전자에서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느냐? 그것은 삼성이 대한민국에서 갖는 독특한 지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지난 해 삼성전자 앞에서 신고된 집회가 500여건이나 된다. 예를 들면 도로공사를 하는데 발주처가 누구이건 시공 업체가 '삼성물산'이라는 이유로 삼성 앞에서 시위를 한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국내 외에서 동일한 안전기준으로 생산라인을 관리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삼성전자에서만 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그런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도 반도체 업체가 여럿 있는데 왜 삼성에서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삼성 은 이렇게 답했다.

정말 놀라웠다. 삼성의 주장대로 피해자와 반올림의 주장은 모두 근거 없는 얘기들이라 치자. 하지만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공식 인정한 직업병 피해자만 열 명이다. 그 공장의 안전보건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 전문 연구기관의 보고서들도 여럿 된다. 2013년에는 화성공장에서만 2,000여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되었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 되었던 9년 전과 달리, 지금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많은 '팩트'에 근거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문제와 관련된 일말의 반성 혹은 자책, 아니면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내비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워낙 잘나가는 기업이라는 "독특한 지위"로 인하여,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 그러한 탓에, 억울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투다.

토론회 내내 삼성의 입장이 그러했다. 회사가 안전관리에 있어 어떤 잘못을 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병들고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삼성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2. 고인의 아버지 앞에 고인의 유품을 들이밀며 엉뚱한 소리를 하다

"이 메모를 꺼내는 것이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만, 황유미 씨의 메모다. 설비 흐름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업무와 거기서 사용되는 물질들이 적혀 있다. 회사가 황유미 씨에게 교육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상기 씨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이 문제에 관한 인식을 호도하는 일은 자제해 달라"

삼성 측 토론자가 먼저 "회사는 근로자가 입사할 때나 새로운 물질을 도입했을 때, 그것과 별도로 주기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황상기 님은 "우리 유미는 그런 교육 받은 적 없다고 했다"며 반박했다.

그러자 삼성 측이 갑자기 어떤 종이를 꺼내 보이며 위와 같이 말했다. 그 종이에는 유미 씨의 유품인 일기장의 일부가 인쇄되어 있었다. 삼성 측 토론자는 그 내용을 직접 읽어 보이기까지 했다.

토론회에서 삼성 측이 제시한 고 황유미 씨의 일기장

삼성이. 직업병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품을. 고인의 아버지 앞에 들이밀었다. 그 아버지의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이것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수다.

주장의 내용도 틀렸다.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것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생산 기술에 대한 교육은 숱하게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안전 교육 시간에 업무 교육을 받았다는 진술도 있었다. 반도체 칩을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해 작업자들이 꼭 알아야 했던 내용들 말이다.

삼성반도체 갑상선암 및 2세의 선천적 질환 피해자 K의 진술서

삼성 측 토론자가 대단한 증거라도 찾은 냥 제시했던 유미 씨의 일기장 내용도 그런 것이었다. 유미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공장에 들어갔다. 당연히 반도체 공정에 관한 교육을 많이 받아야 했다. 따로 시험도 봤다고 한다. 그래서 유미 씨는 꼭 암기해야 했던 내용 중 일부를 일기장에 까지 적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일을 하며 직접 만져야 하는 화학물질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을 뿐, 그 물질의 유해성이나 안전사고 시의 대처방법 같은 내용은 전혀 없었다.

잘 알려져 있다 시피, 고 황유미 씨는 직업병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법원의 확정 판결에 의해 인정된 피해자다. 삼성 측 토론자가 들어 보인 그 일기장도 산재인정 판단의 증거로 쓰였던 것이다. 법원은 그 일기장에 근거하여 유미 씨의 업무내용과 유미 씨가 업무 중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삼성은 그 일기장을 삼성이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는 증거로 사용한 것이다. 완전히 잘못 짚었다. 그리고 고인의 아버지 앞에서 고인의 유품을 들고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는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다.

3. "산재 소송에서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산재 소송 중인 법원에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업비밀이라고 하여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병 판정 과정에서의 자료 은폐가 논점이 되자, 삼성 측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명백한 거짓이다. 산재 소송 중에 법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제출하기를 거부했던 자료들은 매우 많다. 사유는 주로 "영업비밀". 그 중 일부를 나열해 본다.

-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 의견서>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작성)

- 삼성반도체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2013년. 안전보건공단 작성)

- 삼성LCD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중 '보호구 지급 현황', '중대재해 발생현황' 등 안전관리 상황에 관한 여러 내용들. (2013년. 대한산업안전협회 작성)

- 자체적으로 측정한 <공장 내 가스 및 유기화합물 누출 기록>

- 엔지니어들에게 배포한 <환경수첩>

- 반도체 공정에서 취급한 화학물질의 성분

4. "합의서를 왜 피해자들에게 안주냐고? 그건 영수증일 뿐이다"

"보상에 합의하고 그 보상금을 지급받는 분에게 확인서를 받는 것이다. 보상금 얼마를 수령했다는 일종의 영수증과 같은 의미에서 받는 문서다. 양측의 합의를 증명하여 서로가 보관해야 하는 계약서나 합의서가 아니다."

삼성은 작년 9월부터 자체적인 보상절차를 시행하며 보상금을 지급받는 피해자들에게 어떤 문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서명한 그 문서를 정작 피해자에게는 제공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문서의 사본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피해자가 그 문서의 내용을 촬영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어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삼성 측은 위와 같이 답했다. 기자가 그 문서를 "합의서"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삼성 측 토론자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수령확인증이다. 영수증을 복사해서 상대방한테 주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

영수증? 그 문서에는 "본인은 삼성전자로부터 ____원을 지급받고, 본인의 질병과 관련하여 회사에 대하여 민ㆍ형사상 소송 및 기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있다. 피해당사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종의 권리 포기 사항이 적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제공할 필요가 없는 영수증이라고?

토론회장에서 우연히 필자 옆에 앉게된 어느 외신 기자는 이 사실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Ridiculous!"

삼성이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들은 예전부터 그랬다. 직업병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돈으로 회유할 때에도, 결국 돈을 받게된 피해자들에게 어떤 문서에 서명하도록 한 후 그 문서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피해자가 자신이 서명한 문서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도록,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면 피해자로서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돈을 받은 댓가로 정확하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몰라,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아마도 삼성이 노리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삼성은 지금 스스로 "공식적인 보상창구"라고 내세우는 절차 안에서 조차 그런 짓을 하고 있다. 문제가 제기되자 '합의서'가 아니라 '영수증'이란다. 정말 가관이다.

5. "직업병 피해자 200명? 못 믿겠다"

"회사에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한다면, 그 명단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삼성은 언제부턴가 이 문제를 '직업병 피해 규모'에 대한 진실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삼성은 그것을 첫 번째 토론 주제로 요구하였고, 주최 측은 이를 받아야 들여야 했다.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ㆍLCD 직업병 피해자의 수는 총 223명이다. 반올림은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릴 때 피해자들 중 상당수의 이름을 "김OO", "박O은"과 같이 표시하고 있다. 아예 가명을 쓰기도 한다. 피해당사자가 명시적으로 본인의 이름을 공개해도 좋다고 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공개가 원칙이다. 삼성은 이 점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반올림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피해당사자들 스스로 본인의 이름이 회사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본인 혹은 가족의 질병과 관련된 정보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첫 번째 이유와 관련하여, 삼성전자는 직업병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다. 피해가족을 찾아가 외부와 접촉하지 말 것, 산재소송을 포기할 것 등을 조건으로 돈을 주겠다고 했고, 피해자가 입원한 병실에 직원들을 보내 감시하는 일도 있었다. 일부 피해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언론이나 법정에서 폭로했다(2010. 7. 12. 한겨레21 <"유골 뿌리기 직전 돈이 입금됐다">).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 돈으로 회유하는 삼성 직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촬영된 적도 있다(2011. 1. 26. 방송된 KBS 추적 60분 <삼성 직업성 암 논란 다시 불 붙는다>).

"산재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제시해왔다. 병원비를 대느라 경제적으로 힘든 때였는데 산재 보상금 보다 더 많이 준다고 약속했다. ... (결국) 4억 여원의 합의금을 받고 산재 소송을 포기했다. 삼성이 민주노총 등과 접촉하지 말고 시민단체 관계자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이사를 하라고 했다"

-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故박지연 님 어머니의 인터뷰(한겨레21 보도)

"병실에 입원을 하자마자 (사원들 관리하는 회사 사람이) '입원비를 대줄테니 소문을 내지 마라'고 했어요. 병원에서는 감염이 되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꼭 한 명씩은 병실에 회사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요."

- 영화 <탐욕의 제국>에 나오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A의 인터뷰

"(몸이 아프고 나서) 친한 사람을 통해 퇴사를 종용하여 충격을 받았습니다. 퇴사시 조건을 달아 위로금 6천 만원을 제안했는데, 조건이 '삼성을 비방하지 말 것, 민ㆍ형사ㆍ행정상 소송을 하지 말 것, 재판에서 승소해도 추가로 돈을 요구하지 말 것'이었습니다. 조건을 다는 것이 정당하지 못한 것 같아 거절했습니다. ... 퇴사를 했는데도 이종란 노무사를 만나면 어떻게 아는지 인사과 소속 직원이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신경이 많이 쓰이고 힘이 듭니다."

- 삼성반도체 베게너육아종 피해자 K의 진술서. 백혈병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들은 그러한 회유와 협박, 그리고 거대 기업 삼성에 맞선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이겨낸 이들이다. 그런데 삼성은 지금 그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삼성 측은 "이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계 없다. 일반에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상 주체인 회사에게 명단을 제시하여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라 했다. 가대위도 "삼성에게 명단을 주기 어려우면 우리에게라도 달라. 우리가 비밀보장하고 보상 신청을 돕겠다"고 거들었다.

생각해 보라. 삼성이 열심히 언론에 홍보한 덕에 반올림과 소통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삼성의 보상절차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상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삼성이 멋대로 정한 그 보상기준에서 배제되었거나, 삼성이 직접 보상대상을 심사하고 보상액까지 정하는 그 절차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올림이 그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옳은가.

삼성은 지금 반올림을 못 믿겠다고 할 때가 아니라, 당신들이 멋대로 정한 그 보상 기준과 절차를 재고해야 할 때다. 그 회사 때문에 건강을 잃거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다시 그 회사로 부터 심사를 받고 그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보상액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을, 정말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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