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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완청, 패션의 완성은 '청춘'

당시의 위노나 라이더는 시대를 막론하고 각광받는 클래식 아이템을 갖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젊음 말이다. 영화 속 스타일을 완성한 건 인생에서 잠깐만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액세서리였다. 물론 나는 40대에 접어든 현재의 위노나 라이더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청춘'이 그에게 특별할 만큼 잘 어울렸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 정준화
  • 입력 2016.02.18 10:55
  • 수정 2017.02.18 14:12

'홍대병'이라는 신조어가 있는 모양이다. 인디 문화의 상징과 같은 지명을 빌려 와 '한국형 힙스터'를 비꼬는 말이다. 이른바 홍대병 환자들은 자신이 대다수와는 다른, 그래서 좀처럼 이해받기 힘든 좁고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티브이엔>(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콩트 앤 더 시티>는 홍대병을 소재로 한 농담을 선보인 적이 있다. '자신만 아는' 밴드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주인공은 우연히 티브이를 봤다가 충격에 빠진다. "아니, <무한도전>에 혁오가 왜 나오는 거지? 뭐야, 당신들 '위잉위잉' 알아요? 그거 나만 아는 노래인데!"

돌이켜 보면 내게도 홍대병을 깊게 앓았던 흑역사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벤 스틸러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리얼리티 바이츠>는 극장 개봉도 없이 곧장 비디오로 출시됐다. 번역된 제목은 <청춘 스케치>였다. 인생의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올해의 영화 정도는 되는 작품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밴드 '더 낵'의 '마이 샤로나'가 수록된 오에스티를 카세트테이프로 몰래 듣곤 했다. 하지만 취향을 나눌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았다. 키아누 리브스의 <스피드>에 열광하던 친구들은 만만치 않은 현실에 더듬더듬 적응해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청춘 스케치>를 '숨겨진' 수작 정도로 여겼던 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스피드>같은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엑스세대의 컬트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이 '마이 샤로나'를 흥얼거릴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뭐야, 당신들 <청춘 스케치>알아요? 그거 나만 아는 영화인데!'

'나만의 영화'라는 특별한 애착은 오래전에 깨졌지만 여전히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는데, 예민하게 흔들리는 청춘을 섬세하게 묘사해서...라기보다는 배우들이 엄청나게 예뻐서인 것 같다.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야.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5달러" 같은 (지금 내 나이에는 공감하기 힘든) 로맨틱한 대사를 읊던 젊은 시절의 이선 호크는 록스타 같았다. 하지만 역시 결정적인 이유는 미모의 정점을 찍던 무렵의 위노나 라이더다. 영화 내내 쉬지도 않고 계속 아름답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다.

어느 장면에서 그는 리바이스 청바지에 소매가 없는 버건디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복고풍의 선글라스가 보기 좋게 헝클어진 픽시커트(쇼트커트의 한 종류)와 잘 어울린다. 지금도 위노나 라이더의 이름을 들을 때면 이 영화의 이 장면부터 떠올린다. 나만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 1990년대를 되새기는 패션 기사에는 <청춘 스케치>의 의상들이 꽤 자주 언급된다. 지금 기준에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티셔츠와 청바지와 큼직한 선글라스는 유행에서 밀려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의 위노나 라이더는 시대를 막론하고 각광받는 클래식 아이템을 갖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젊음 말이다. 영화 속 스타일을 완성한 건 인생에서 잠깐만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액세서리였다. 물론 나는 40대에 접어든 현재의 위노나 라이더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청춘'이 그에게 특별할 만큼 잘 어울렸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고 싶지는 않다. 배우에게 큰 실례일 테니까. 그냥 오랜만에 <청춘 스케치>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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