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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과 분노, 그리고 위기

기존 남북군사회담을 통해 맺었던 합의사항과 남북한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들도 이미 모두 백지화되었다. 미약하나마 가늘게 흐르던 실핏줄인 마지막 통신선마저 끊어졌다. 상호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던 안전핀마저 뽑혀버린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은 우발행동과 오인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 NLL에서 남북 함정 간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국제상선 공통망을 이용하여 상호 '백두산' '한라산'이라 호출할 수 있었던 지난 2004년 6·4합의도 쓸모없어져버렸다.

  • 김동엽
  • 입력 2016.02.18 05:32
  • 수정 2017.02.18 14:12
ⓒ연합뉴스

분노 조절 장애와 의도적 오인

설 연휴 마지막날 홍용표 장관의 개성공단 폐쇄 발표를 들으니 이맘때면 늘어나는 이혼 기사가 생각난다. 명절 뒤끝의 이혼은 꼭 명절 중 일어난 일 때문이라기보다 그동안 쌓인 갈등의 귀결일지 모른다. 그 끝에 거친 행동과 말이 터져나오면, 왜 그런 언사가 나오게 됐는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과거의 일들까지 들추어내게 되면 신뢰는 무너져버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남남이 된다.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로켓까지 발사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비난받아 마땅하고 응당 책임을 지게끔 해야 한다. 그 때문인지 우린 한 치의 기다림도 없이 반응을 보였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전략 따위는 불필요하다. 가장 먼저 사드(THAAD)라는 서슬 시퍼런 칼부터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시작한다. 그러고는 바로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하고, 장관이 나서서 개성공단을 통해 들어간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었다며 그간 꼬박꼬박 생활비로 지급하던 월급통장과 도장을 압수했다. 북한도 질세라 모든 통신망을 끊어버렸다. 집에 전화해도 받지 않겠단다. 양측 모두 이성을 넘어 분노가 극에 달해 보인다. 이제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확성기와 형형색색의 전단뿐이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 대통령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체제붕괴까지 언급하며 더욱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중국 및 러시아의 연대까지 강조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안중에도 없다.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때 침묵과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 판단인지 오인인지 분노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다. 차라리 오인이고 분노라면 좋겠다. 몰인식이고 의도적 오인일까 더 무섭다. 이제는 긴장을 넘어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감마저 몰려온다.

이미 뽑힌 군사적 충돌 방지의 안전핀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되고 있는 남북한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은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남북한 모두에게 안전판이자 완충제 역할을 했던 개성공단도 사라졌다. 개성공단을 폐쇄하자 미국이 더 바빠진 듯하다. 미국은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전략자산을 연달아 한반도에 전개하고 있다. 이미 북한의 핵실험 직후 미군의 전략폭격기 'B-52'가 한반도 상공을 돌아 나갔다. 북한 고위급 인사를 암살할 수 있는 미 특수부대를 한국에 파견했다는 소식을 언론이 전했다. 또 미군의 핵시설 타격훈련 동영상을 공개했다. 김정은의 사무실 창문을 맞힌다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핵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함'(7800톤)은 지금 동해 바닷속에 있으며, 북한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고 북한의 군사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전투기 F-22 4대가 한반도에 전개한다. 다음달 진행되는 KR(키리졸브) 및 FE(독수리연습) 훈련에는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CVN-74) 전단이 참가하고, 병력은 5750명, 전투기는 45대를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이제 개성공단 인질은 걱정할 필요 없으니 언제라도 침투나 공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하게 압박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개성공단은 폐쇄라기보다 오히려 철수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북한 역시 공습을 대비하기 위한 반항공 전력 개발에 매진하고 있고, 개성공단도 군사통제구역으로 지정한 이상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듯하다.

기존 남북군사회담을 통해 맺었던 합의사항과 남북한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들도 이미 모두 백지화되었다. 미약하나마 가늘게 흐르던 실핏줄인 마지막 통신선마저 끊어졌다. 상호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던 안전핀마저 뽑혀버린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은 우발행동과 오인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 NLL에서 남북 함정 간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국제상선 공통망을 이용하여 상호 '백두산' '한라산'이라 호출할 수 있었던 지난 2004년 6·4합의도 쓸모없어져버렸다. 북한 함정이 어선통제 등 어떠한 이유에서건 NLL을 넘어오면 우리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도발로 단정하고 대응했다. 지금 만약 우리 어선이 기관 고장으로 NLL 북쪽으로 흘러가 우리 해군함정이 구조하기 위해 NLL을 넘어갔는데 북한이 해안포를 쏜다면 그럼 이것 역시 북한의 도발이라고 할지 묻고 싶다.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는 『국제정치에서 인식과 오인』(Perception and Misperception in International Politics)이라는 저서를 통해 상대국의 의도와 자국의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misperception)이 전쟁 발발과 패전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상대를 과소평가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과대평가함으로써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국가는 상대방의 적의를 과소평가하기보다 자국 입장의 정당함과 상대방의 적대감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위정자들로 인해 젊은이들만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남북, 정말 이혼도장을 찍으려는 것인가?

지금의 위기상황이 실제 군사충돌로 인한 파국으로 비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군사적인 위기관리가 절실하다. 위기관리란 발생한 위기에 대한 대응과 위기종결만이 아니라 선제적 예방과 재발방지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과정이다. 군사적 강압은 대응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잘못된 인식과 의도된 오인에서 비롯된 군사적 강압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단 최소한의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고 군사적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기존의 합의사항을 복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북은 스스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의 손에 의해 갈라져 피터지게 부부싸움도 했다. 어렵사리 이어온 70년 넘은 별거 상태를 과연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우리를 별거시킨 장본인들에게 "우리 이제 같이 살게 해주세요" 한들 그들이 쉬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남북의 문제이고 당사자 간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이혼도장 찍을 게 아니라면 주변인들의 간섭을 차치하고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 정작 다가오는 KR 및 FE 훈련 이후가 더 걱정이다. 더 늦기 전에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안전핀을 다시 찾아 넣어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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