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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야만사회에 살고 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부터 이 정신병원 저 정신병원을 전전하시던 할머니 환자를 만났고,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채 그 병원의 온갖 목수 일을 도맡아서 하던 아저씨 환자도 만났다. 그분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거부당하였을 뿐 아니라 동지라고 여겨온 장애계에서도 외면당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병을 고치라, 정상인이 되라,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금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든 없든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방식도 있지 않을까?"

사이토 미치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중

공감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참여하여 정신병원이란 곳에 들어가 처음으로 정신장애인을 만나게 되었다. 솔직히 난생처음으로 정신병원에 가기 전까지 정신병을 앓는 사람을 만나기가 몹시 두렵고 겁이 났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갇혀' 지낸 탓인지 '정신과 약'을 과다복용한 탓인지, '정신질환'의 원래 증상 탓인지 모르겠지만(아마도 그 3가지 모두가 그 이유일 듯하다), 겁이 많고 약해 보였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걸려있는 듯 보였다.

그곳에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부터 이 정신병원 저 정신병원을 전전하시던 할머니 환자를 만났고,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채 그 병원의 온갖 목수 일을 도맡아서 하던 아저씨 환자도 만났다. 그분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10년 전인 그때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장애인이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은 너무도 미미하고, 사회에서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더욱 강해지고 있으며, 보호의무자라고 칭해지는 가족들은 정신장애인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거부당하였을 뿐 아니라 동지라고 여겨온 장애계에서도 외면당해왔다.

이러한 정신장애인의 인권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준비한 '정신장애인 국가보고서' 작업에 참여하여 정신장애인의 인권실상을 고발하였다. 그 덕분에 정신보건기관 종사자에 대한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었다. 정신보건기관 종사자 인권교재 작업에 참여하였고, 인권 강사 양성과정에서 계속해서 강의를 해오고 있다.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각하시켰다. 다행히 법원에서 정신병원에 감금된 정신장애인이 제기한 인신구제청구절차를 진행하면서 강제입원의 근거가 된 정신보건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소지가 있다고 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여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조항은 헌법재판소에서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조항을 바꾸기 위해 인권위와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 등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바뀐 것은 강제입원에 동의하는 보호의무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린 것뿐이다. 강제입원 절차에 있어 법원과 같은 독립된 심사기관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이제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도 동의하고 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병원 격리·강박 실태조사 연구'에 참여하여 정신병원에서의 격리·강박 실태를 확인해보았다. 아직도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곳들이 적지 않았고, 격리실 바닥에 대소변을 보는 끔찍한 곳도 있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환자들은 눈에 초점이 없이 유령처럼 부유하였다. 병실은 침대도 없이, 심지어 방문도 없이 환자들이 누워있거나 멍하고 앉아있었다. 어느 병원 조사 때에 만났던 한 한 환자는 97년부터 입원하였다고 설문지에 쓰셨다. 조사를 나간 우리가 들으라고 간호사실 앞에서 "제발 약 좀 적게 주세요"를 외치는 환자분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여전히 야만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 2015년 초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 지원단체 등이 모여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을 결성하였다. 공동행동에 함께하면서 법안을 준비하여 국회 김춘진 의원실을 통해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하였다. 정신장애인 자조활동 지원과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설치, 주거·고용·평생교육·생활지원 등의 사회서비스와 전달체계 마련, 위기극복 및 휴식을 위한 쉼터 설치, 가족지원 서비스 지원 등을 법안에 담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국회 및 정부와 계속 협의 중이다.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현실 가능한 지역사회 모델을 계속 고민하였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 갈 곳이 없어서 퇴원을 시킬 수 없다는 슬픈 논리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정신장애인들도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잘 살 수 있다는 구호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구현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지난 1월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마을 우라카와에 있는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에 다녀왔다. '베델의 집'은 조현증(정신분열증), 우울증, 조울증 등의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1978년 정신장애 회복자 모임인 '도토리 모임'에서 시작한 베델의 집은 현재 작업장 2개소, 공동주거 12개소, 그룹홈 3개소, 유한회사 복지샵, 카페 등을 운영하는 큰 사회복지법인이다. 정신장애 당사자인 사사키 미노루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연수팀과 함께 1월 13일 아침 6시 반에 인천공항에 모여 한참을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베델의 집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 카페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넘었다. 베델의 집 가족들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분이 한글로 된 소개자료를 나눠주며 베델의 집을 멋지게 소개해주었다. 거기서 만난 베델의 집 가족들은 누구보다 밝고 명랑했으며 행복해 보였다. 그분들은 베델의 집에 방문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좋아해서 우리도 덩달아 밝고 명랑한 모드가 되어 연신 'V'를 해대며 사진을 같이 찍고, 손짓 발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영교류회를 마치고 나서 베델의 집 설립자이신 무카이아치 씨의 강연을 들었다. 일본의 정신장애인 관련 법제도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정신보건법만 존재하다가 이를 '정신보건 및 정신장애자복지법'으로 전면개정하여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 조항을 대폭 법에 반영하였고, 현재는 장애인종합지원법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통합하여 정신장애인복지도 규율하고 있다고 한다. 무카이야치 씨는 "사회에서는 정신장애인을 배제하지만, 베델에서는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고 베델의 집 설립취지를 이야기하였다.

이튿날 아침부터 뉴베델의 집 아침미팅에 참여하였다. 역시나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이 주도하여 미팅을 진행하였고, 일과를 소개하고 당사자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그 날 컨디션을 이야기하고 배당받은 일의 양과 시간을 조절하였다. 이처럼 베델의 집은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놓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 만들기', '손을 움직이기보다 입을 움직여라', '자신의 병 자랑하기', '약함을 연대로' 등의 철학으로 운영되고 움직인다. 그룹홈을 둘러보고 베델의 집 공동설립자인 정신과 의사 카와무라 씨가 운영하는 정신병원에도 들렀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받고 존중되었다. 카와무라 씨는 원래 우라카와 적십자병원에서 근무했었는데 본인의 철학이 정신장애인에게 최대한 약을 줄여주고, 병원 입원도 최소화시키는 것이어서 적십자병원의 정신과 병동을 이용하는 정신장애인들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적십자병원을 나오게 되었고, 그 근처에 정신장애인 이용시설을 겸한 아담한 정신병원을 개원하였다. 현재 우라카와에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가 1명도 없다고 한다. 정신병원 입구에 식당이 차려져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당사자들이 자유로이 연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병원 2층에 마련된 상담실과 휴식실은 너무도 안락하고 편해 보였고,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우라카와의 정신장애인들이 참 행복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후 시간에는 'SST(Social Skill Training)'라고 하는 사회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참관하였다. SST는 인지행동치료기법의 하나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가진 고충과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역할극 등을 통해 사회기술을 훈련하는 행동요법이라고 한다. 정신장애인 두 분이 차례로 나와 자신이 겪은 환청·망상을 소개하고, 그 환청·망상을 이겨낸 과정을 동료들과 함께 연출하였다. 동료들은 그에 관한 의문점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 과정에서 좋았던 점, 개선할 점을 논평하였다. 타카시 야마토씨는 UFO가 보이는 망상이 있고, 남의 돈을 훔치라고 지시하는 환청이 있다고 했다. 지인의 돈을 훔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경찰서에 가서 사형을 시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고, 피해자에게 찾아가 사죄하면서 "앞으로 도난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도 했다고 해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하였다. 베델의 집에선 매년 '환청·망상대회'와 '편견·차별환영대회'와 같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벌이고 있다.

뉴베델의 집 1층은 회의를 하고 프로그램 진행도 하지만, 다시마 포장과 베를 짜는 작업공간이기도 하였다. 사회적 숙련도 훈련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마 포장 작업을 참관하였다. 난 스티커 붙이고, 다시마 넣는 등의 단순작업을 너무 사랑하여 무례를 무릅쓰고 함께 포장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서 잠시나마 작업을 같이 하였다. 과도한 작업량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손을 바삐 움직이기보다는 입을 움직여 서로 대화하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튿날 다시 들른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 카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베델의 집에서 만든 포장된 다시마와 베델의 집 가족들이 베를 짜서 만든 목도리와 옷가지, 직접 만든 장신구, 당사자들이 그린 그림엽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지역주민들도 편하게 들러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물건도 구입하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져 교류하고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델의 집은 특히 정신장애인 당사자연구로 일본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당사자 연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본인들의 정신질환과 그로 인한 고통·문제를 드러내고 동료들과 함께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활동이다. 무카이아치 씨는 당사자연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괴로운 증상이나 곤란한 상황과 조우했을 때, 자신의 고생을 모두 떠맡기듯이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나 사회복지사에게 상담을 하던 날들과는 다른 풍경을 당사자연구에서는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라카와 식으로 말하면 '자기 고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체험이며, 환각이나 망상 등 여러 가지 불쾌한 증상에 예속되던 상황에 '나'라는 인간이 살아갈 발판을 구축하여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베델의 집에 가기 전까지 난 정신장애인의 문제를 법과 제도로 피상적으로 접근했었다. 그들을 위하여 강제입원 조항을 개정하고, 정신병원 환경을 바꿔나가며, 지역사회 기반을 마련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법제도를 바꾸고 환경을 개선해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떠한지 들여다보고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비를 같이 맞아가며 쌓아가는 한 사람 한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개개인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는 개개인들이 존중받는 것이 전제되어야 소중해지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문제의 시작을 정신병원에서 안타깝게 삶을 보내고 계신 할머니 환자, 아저씨 환자에서 했던 만큼, 올해는 정신장애인 한분 한분의 사정과 삶에 대해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자신의 '약함'을 들여다보면서, 약하기 때문에 서로 함께하고 응원하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글_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 게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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