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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힐러리를 지지하고 신뢰할 때다

ⓒASSOCIATED PRESS

*이 글은 전직 미대사인 조셉 C.윌슨이 허핑턴포스트에 쓴 블로그를 번역한 것입니다.

나는 1997년에 국가 안보 회의에서 아프리카 담당으로 있을 때 힐러리 클린턴을 처음 만났다.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클린턴은 당시 건강 보험 개혁을 위한 싸움을 이끄는 것과 소수, 어린이, 여성들을 위한 강력한 활동으로 가장 유명했다. 당시에는 외교 정책에 처음 발을 들였던 클린턴이었지만, 1995년에 베이징에서 열린 U.N. 회의에서 "여성의 권리가 인권이다."라고 선언에 전세계를 열광시켰다.

힐러리는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여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아프리카 방문 경험에 감동 받은 힐러리는 다음 해에 빌 클린턴에게 아프리카를 다녀오도록 만드는데 있어 소중하고 설득력 있는 파트너가 되었다. 그것은 역사적이고 실질적이며 전례를 만드는 방문이었다. 11일 동안 6개국을 방문했고, 빌 클린턴 재임 중 국외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남아공에서 빌과 힐러리의 영웅인 넬슨 만델라는 로벤 섬에서 자신이 갇혀 있던 감방을 보여주었다. 그가 테러리스트로 유죄 선고를 받고 27년 동안 바위를 깼던 곳이었다. 죄수였던 그가 사랑받는 해방자, 지도자,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의 상징은 누구나 이해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그를 두고 자신에게 가장 자극을 주는 국제 지도자라고 부른 것도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들른 세네갈의 다카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미국 사회, 문화, 경제적 성취에 대한 그들의 공헌에 헌납하는 방문이었다. 고리 섬의 노예의 집의 악명 높은 '돌아올 수 없는 문'에 선 우리는 모두 수 세기 전 아프리카인들을 쇠사슬에 묶어 미국으로 데려 온 끔찍한 환경을 보며 깊은 감화를 받았다.

뉴욕 상원의원으로서 힐러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의 정책에 대한 내 견해를 구했다. 나는 논쟁이 시작될 때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걸프 워 당시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이라크에서 대사 대행으로 지냈던 경험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었다. 나는 사담 후세인과 당시 이라크 행정부와 협상해 인질로 잡혀 있었던 미국인 150명 이상을 풀려나게 했고, 후세인과 만난 마지막 미국 외교관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정직하지 못했지만 효과적이었던 2002년의 이라크 침공을 위한 프로파간다 캠페인은 2001년 9월 11일의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용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 안보 보좌관은 사담이 공격적으로 핵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불길한 경고를 했다. "버섯 구름을 보고서야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담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U.N. 조사관을 다시 이라크로 보내도록 의회에서 결의해야 한다고 우겼다.

부시 행정부는 군사 행동을 취하기 전 U.N.의 명백한 동의부터 얻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콜린 파월 국무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은 전부 상원 의원들에게 사담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확언했다. 군사력 사용 허가를 위한 의회의 투표가 이루어진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힐러리는 돌이켜보면 찬성표를 던진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힐러리의 잘못은 의회, 미국인, U.N.에서 전세계에 연달아 거짓말을 한 것으로 후에 밝혀진 정권을 믿은 것이었다. 우리는 부시 행정부가 우리의 신뢰를 얼마나 심하게 배신했는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잊지 않았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기간 동안 힐러리는 부시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 하나로 부상했다. 힐러리는 직접 사실 확인을 하고 군 사령관 및 공무원들에게 직접 이야기하려고 이라크를 여러 번 방문했다. 그리고 상원 군사위원회 회원이라는 직위를 사용해 부시의 처참한 정책에 엄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비판을 하며 결코 움츠러들지 않았다. 힐러리의 과거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다.

발레리와 내가 힐러리를 지지하는 것은 이슈들 때문이기도 하고, 힐러리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2003년 뉴욕 타임스 논평을 통해 부시 정권이 댄 전쟁의 이유의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자, 그에 대한 부시 정권의 반응은 발레리가 비밀 CIA 요원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었다. 공화당 광신자들은 그들의 범죄로부터 초점을 돌리려고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어 우리를 위축시켰다. 힐러리는 상어가 들끓는 바다를 건너는 우리에게 여러 번 조언을 해주고 연민을 보였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며 아무리 힘들더라도 잘 싸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우리를 공격하던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힐러리를 공격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오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실 관계를 가지고 승리할 수 없을 때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공격하기 위한 험담을 지어낸다. 힐러리의 정신적인 지원 덕택에 우리는 그들과 맞섰다. 우리는 그들에게 승리를 줄 수는 없었다. 힐러리는 옳았고, 우리의 정당성은 입증되었다.

중요한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의미있는 변화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백악관에서의 경험으로 배웠다. 그러나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악의적 공격과 반대파의 사보타주에 맞서서 오바마는 진짜 진보를 실현해 냈다. '혁명'에 대한 주문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오바마의 재임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그것이다. 그 변화를 수호하고 더 넓히는 것은 그에 헌신하는 대통령을 뽑는 것에 달려있다. 힐러리도 진보를 어떻게 만드는지 이해한다. 힐러리는 여러 번 시험을 거쳤다. 개인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모든 도전에 맞섰다. 전쟁 중에 상원 군사위원회에 있었고, 전세계가 미국에 깊은 의심을 품었을 때 탁월한 내각을 이끌었다. 그리고 리더십 안에서 성장했다. 이제 힐러리는 가장 큰 도전, 즉 우리 나라를 이끄는 일을 맡으려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이슈들에 대한 힐러리의 자세, 힐러리의 성격, 칼 로브(그는 발레리가 '좋은 공격감'이라고 했다) 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짓말과 험담을 퍼부을 때 나와 발레리를 두둔했던 용기 때문에 우리는 힐러리를 지지한다. 힐러리는 우리를 돕고 공개적으로 우리와 연관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힐러리는 우리가 권력 남용, 중상 모략, 미국적 가치의 왜곡에 맞서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이해했다. 힐러리 본인이 살면서 꾸준히 맞서왔던 것처럼 말이다. 힐러리는 우리를 지지했고 신뢰했다. 이제 우리가 힐러리를 지지하고 신뢰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Hillary Had My Back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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