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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2일 10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3일 14시 12분 KST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1 | 기본 가정의 해체

아무리 뛰어난 능력(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노력을 통해 계발하지 않으면 실력으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동기)와 집중력 등도 유전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면 실력의 상당 부분은 결국 타고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최근 진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개인이 타고난 지적, 신체적 능력 등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영향을 미치는 집중력, 수면 시간 또한 차이를 보인다.

Shutterstock / Jirsak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1) : 실력주의 사회 기본 가정 해체

글 |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전총장)

1. 들어가며

'교육개혁을 위해 던져야 할 바른 질문'(박남기, 2015.07.21.)이라는 글(☞ 칼럼 101회 참조)에서 "실력주의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실력주의에 대한 착각을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주의 사회란 마이클 영이 말한 실력(타고난 능력+노력)에 의해 보상이 좌우되는 사회(meritocracy)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능력주의 사회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는 타고난 능력에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실력이 보상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타고난 능력이 보상을 좌우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마저 있다. 그 오해의 결과로 대입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쌓아온 실력이 아니라 '잠재능력'을 측정하겠다는 이상한 논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업적주의라는 용어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교수업적평가의 경우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실력을 가지고 산출한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이 또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능력주의나 업적주의라는 용어 대신 실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며, 나도 이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하겠다.

향후 몇 번의 글을 통해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착각을 상세히 분석하고, 실력주의 사회를 구현하겠다며 실제로는 '신세습주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밝히며, 나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신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내 생각을 하나하나 펼쳐가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실력을 재화 분배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가 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고, 그 이유의 타당성을 해체해보며, 나아가 실력의 근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실력주의 사회 성립의 기본 가정

사회적 재화 배분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꿈꾸는 사회,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실력이 개인의 부와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이다. 그럼 역으로 어떤 사회가 불공평한 사회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의 실력이 아니라 타고난 배경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좌우하는 사회, 즉 신분과(이나) 부가 세습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학벌타파를 통한 능력주의 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만일 어떤 개인이 태어나보니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집중 능력도 좋지 않아 높은 실력을 갖추기는 어려웠지만 다행히 부모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있어서 그러한 부를 물려받을 수는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능력 대신 재산만 타고난 사람이 그 재산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공평한 것일까? 능력과 재산 둘 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왜 타고난 것 중에서 능력에 의한 사회적 재화 분배는 공평한 것이고,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한 재화 대물림은 불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두 가지 가정이 깔려 있다. 하나는 능력의 경우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노력을 더하여 실력으로 만들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즉, 개인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노력의 정도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고자 하는 실력주의는 공평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타고난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고, 혹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을 통해 그 정도의 차이는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은 타당한 것인가?

3. '노력'과 실력과의 관계 해체

아무리 뛰어난 능력(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노력을 통해 계발하지 않으면 실력으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동기)와 집중력 등도 유전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면 실력의 상당 부분은 결국 타고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최근 진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개인이 타고난 지적, 신체적 능력 등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영향을 미치는 집중력, 수면 시간 또한 차이를 보인다. 비록 인구의 1-3%에서 나타나지만 하루 4시간 이하의 짧은 시간만 자도 하루 종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잠이 없는 사람(short sleeper)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인간유전학자 푸 잉 후이 박사는 2009년 연구를 통해 잠이 없는 사람들은 'hDEC2'라는 유전자변이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Beck, 2011). 변형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뇌는 깨어있는 시간 동안 만들어진 독성을 일반인들보다 훨씬 짧은 수면 시간 안에 해독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뇌과학자들은 심지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력마저도 일정 부분 타고난 것임을 밝혀내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좋은 성적을 받아 부모님과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집중하려고 하면 집중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반면에 별로 노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여 얻은 결실일 수도 있지만 타고난 집중력에도 유전적인 차이가 있다고 한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약물인 리탈린(Ritaline)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집중력이 단순한 개인의 자율 의지가 아니라 뇌와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개인 노력 정도를 전적으로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실력 중에서 타고난 능력과 노력 의지를 제외한 순수한 개인의 의지적 노력에 의한 부분은 생각보다 그 비율이 낮을 수도 있다.

4. 노력을 통한 능력차이 극복 신화 해체

타고난 능력에서 개인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력을 하면 그 차이의 극복은 정말 가능한 것일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전 미국 대통령), 톰 크루즈(영화배우), 존 체임버스(CSCO 회장) 등은 심지어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한다(이지훈, 2014).

뇌학자들의 설득력 있는 가설에 따르면 난독증은 좌뇌와 우뇌의 균형적인 발달이 실패한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우뇌가 창의적 사고를 하려고 할 때 좌뇌가 이를 제어하여 균형을 잡아주는데 난독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의 일부(10-20%)는 좌뇌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우뇌의 자유로운 사고를 제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창의성과 천재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즉, 난독증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고난을 이겨내고 노력한 결과로 일반인보다 뛰어난 창의적인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결함이 천재성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장비회사 시스코(CSCO) 회장 존 체임버스는 자기 회사가 주최한 '아이를 직장에 데려오기' 행사에서 한 소녀에게 질문을 했다가 학습장애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실은 자신도 난독증으로 인한 학습장애가 있다고 공식 석상에서 고백하였다(중앙일보, 2010.06.19). 그는 아직도 보고서를 비서가 읽어주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부족한 독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부단히 경청하였고, 그 결과 1년 전 사석에서 들은 통계 수치를 기억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노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의 뇌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뛰어난 기억력을 갖게 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글로 써서 찾아가도록 하면 찾아갈 수는 없지만 지도에 점을 찍어 위치를 표시해주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찾아갈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뇌는 문자를 해독하는 데 불리한 난독증이라는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히 큰 그림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특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5. 실력을 기준으로 한 재화 배분 시 유의할 점

난독증 환자의 예를 상세히 기술한 이유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도 있어야 어려움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난독증 환자의 80퍼센트 이상은 난독증만 두드러질 뿐 다른 능력은 나타나지 않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실력주의는 모든 것의 책임과 결실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할 경우 상대적으로 뒤처진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철저하게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아가 실력이 없는 것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도덕적으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반면에 실력을 갖추어 사회적 부와 명예, 그리고 지위를 획득한 사람은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하여 자기가 차지한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연예인이나 갑부들이 섬을 통째로 빌려 하룻밤에 수십억 원짜리 파티를 열면서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이 타고난 것이니 실력의 결과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또 하나의 극단적인 주장이다. 인간의 약 1%를 차지하고 있는 싸이코패스는 뇌의 전두엽 이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들이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놓고 자기 탓이 아니라 뇌가 그렇게 만들어진 탓이니 뇌를 벌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범죄학은 인간이 범죄의 순간 그 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를 결정할 자율권은 최소한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개인이 이룬 성취가 오롯이 개인의 노력 결과만이 아니라 상당부분 타고난 다양한 능력 및 노력 특성 탓임을 받아들일 때, 실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부를 거머쥔 개인은 그 부의 상당 부분이 신(혹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사회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도 갑부들의 선한 의지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어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와 공유하도록 하는 분배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주어진 재산에 대해서는 소득보다 더 높은 상속세를 물려야 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고소득에 대한 누진세제도 도입의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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