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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도전, 영화 '동주'

한 달 만에 해외 로케이션 없이 국내에서만 촬영된 이 영화 역시 인물에 주 포커스를 맞춰 배우의 연기력에 온전히 기댄다. 흑백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는 윤동주의 얼굴을 흑백필름으로 그대로 살려내며 실재감을 부여한다. 이준익의 말처럼 '꿩먹고 알먹고'다. 제작비를 대폭 절감한 것은 물론 우리 기억 속 순백의 시인을 자연스럽게 스크린 위로 데려올 수 있었다. '사도'와 '동주'가 같은 시기 시나리오가 작성돼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똑같은 구조를 가지게 됐다는데, 형식뿐만 아니라 기법 면에서도 두 영화는 상당히 닮아 있다.

  • 김에리
  • 입력 2016.02.17 06:10
  • 수정 2017.02.17 14:12

전 국민이 사랑하는 '서시'의 시인 윤동주를 영화화하다니, 엄숙주의를 집어던진 이준익 감독이 아니고서는 감히 하기 힘든 도전이다. '민족시인'으로 추앙받지만 살아서는 시인이 되지 못했고 삶의 궤적 또한 위인이라기엔 다소 밋밋하다.

전 세대 문학소녀들의 첫사랑이라할 만한 윤동주를 조명하며 그 잔영의 이점을 누릴 순 있겠지만 사실 왜곡이라는 위험부담이 훨씬 크다. 이러한 중압감에 대해 이준익은 "잘못 찍으면 죽을 때까지 비난을 짊어지고 가야하니 겁나고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의외로 철이 없어 깊이 생각 못하고 단세포적으로 산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자기 발목을 잡을 수 있어서 힘 빼고 만들었다"고 호기롭게 덧붙였다.

사후 70여년 간 한 번도 스크린으로 옮겨지지 못한 순정한 시인을 영상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웠던지 영화는 시작부터 '순수창작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부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경고문이 뜬다. 고민이 잔뜩 묻어나는 자막에도 불구하고 이준익은 "70%가 사실이고 30%가 픽션"이라며 "사실을 픽션화시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말은 호방하게 했어도 '러시안 소설' 등을 만든 신연식 감독의 섬세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윤동주 삶의 연표에 맞춰 그의 시가 쓰여 진 시기의 사건을 꼼꼼하게 형상화해낸다. 같은 해 북간도 같은 집에서 태어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나란히 죽음을 맞기까지 평생을 함께한 고종사촌 송몽규를 끌어들이면서, 이 관계성 안에서 영화는 완성된다. 송몽규의 조카인 작가 송우혜가 복원해낸 '윤동주 평전'에 많은 부분을 기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흐르는 연표처럼 두 사람의 생애는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제강점기 식민치하 지성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과 세상에 대처하는 '젊은 날의 초상'을 동전의 양면처럼 보여준다.

훗날 신문기자가 되는 동문 강처중(민진웅)과 시인 정지용(문성근)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나마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이들은 윤동주 사후 시집 발간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각각 월북하고 납북되면서 해금 전까지는 이름도 불려지지 못했다. 문성근은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북간도 명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민주투사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다. 영화 속에서 문익환은 학생잡지를 등사하는 친구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타이틀롤을 맡은 강하늘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준익이 은퇴선언을 했던 영화 '평양성'(2010)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준익에게는 잇따른 흥행참패가 큰 부담이었다. 다시 돌아온 그는 한결 신중해졌다. 전작 '사도'(2015)는 사극 치고는 적은 65억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돈을 아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드는 큰 그림을 요구하는 배경보다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극적 무대를 연출한다. 영조(송강호)와 사도세자(유아인)의 연기와 그들이 벌이는 드라마와 연기력에 초점을 맞춰 관객의 마음을 정통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 영조로 분한 송강호의 얼굴을 때때로 클로즈업하면서 조선시대 영조의 어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살린다. 현전하는 몇 안 되는 어진 중 하나의 세밀한 묘사를 연상시키는 거친 피부 표현과 수염 한 올 한 올이 살아있는 분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역사적 사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착시를 경험한다.

순제작비 5억 원으로 흑백영화 '동주'를 만들면서 이렇게 체득한 기법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한 달 만에 해외 로케이션 없이 국내에서만 촬영된 이 영화 역시 인물에 주 포커스를 맞춰 배우의 연기력에 온전히 기댄다. 흑백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는 윤동주의 얼굴을 흑백필름으로 그대로 살려내며 실재감을 부여한다. 이준익의 말처럼 '꿩먹고 알먹고'다. 제작비를 대폭 절감한 것은 물론 우리 기억 속 순백의 시인을 자연스럽게 스크린 위로 데려올 수 있었다.

'사도'와 '동주'가 같은 시기 시나리오가 작성돼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똑같은 구조를 가지게 됐다는데, 형식뿐만 아니라 기법 면에서도 두 영화는 상당히 닮아 있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흥행성공과 호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본 자신감을 은근히 드러낸다.

강하늘은 단정한 '하이칼라' 머리에 말간 얼굴과 힘을 뺀 눈동자를 하고는 윤동주를 뻔뻔스럽도록 순결하게 연기해낸다. 흑백영상은 속눈썹이 드리워지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잡아내며 시인의 고운 심성의 결까지 그려낸다.

생김새도 북방계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진 윤동주의 얼굴과 이래저래 닮은꼴이다. 유아인이 윤동주 역을 탐냈지만 이준익 감독은 영화화 시도 전부터 강하늘을 점찍었던 듯하다. 이준익은 "흑백사진 속에서 드러나는 외모의 유사성도 있지만 '평양성'에 출연할 때의 스무살 강하늘에게서 드러나는 본성에서 직감적으로 윤동주를 보았다"고 했다.

이젠 '윤동주'하면 자연스럽게 강하늘의 얼굴이 떠오를 테다. 윤동주는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고, 중국에서도 조선족 자국시인이라고 우기고 있는 마당이다. 동아시아권에서 이 영화가 가진 파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얼마나 이득이 될지를 점치기에는 이르지만 강하늘로서는 한류스타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강하늘이 중심을 제법 잘 잡은 것에 반해 여타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에 못 미쳤다. 죄다 무르익진 못했지만 엄연히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의 연기톤은 너무 들뜨고 가벼워 보인다. 총명함과 비장함이 곧 과격함은 아니었겠지만, '햄릿'형인 주인공 윤동주와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송몽규 역의 한계이기도 하다.

살아서 송몽규는 평생 윤동주를 앞섰다. 시인을 갈망하는 윤동주 대신 열여덟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열아홉에는 겁도 없이 남경의 독립운동단체를 찾아간다. 함께 진학한 연희전문학교도 우등상장을 받고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가서도 혼자만 교토제국대학에 합격한다. 윤동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림자'처럼 살았지만, 송몽규를 자극제로 내면의 삶을 더욱 키웠다. 결국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문인이 된 것은 윤동주였고, 영화 속에서는 송몽규가 조연이 된다.

윤동주와 대립하는 일본 고등형사 역의 김인우도 악역다운 강력한 인상을 심지 못해 아쉽다. 재일동포 3세인 김인우는 1000만 영화 '암살'에서 친한파 일본인 역을 맡으며 널리 얼굴을 알렸다. 비중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극중 윤동주의 가상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이화여전 문과생 이여진 역의 신윤주의 연기도 어설펐다. 신인이기도 하지만 반말투 대사가 리얼리티 저하를 거든다. 물론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1940년대 스물이 넘은 성인남녀가 요즘 대학생들처럼 반말 대화를 하는 것은 어색하다. 오히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88'에서 80년대 고등학생들끼리도 '내외'를 하며 목인사를 하는 것이 시대상에 더 어울린다.

'동주'는 윤동주의 71주기 기일인 2월16일 다음날, 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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