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란에서 게이로 살며 사랑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

베스트 셀러 그래픽 노블 ‘자라의 파라다이스’에서 아미르 솔타니와 칼릴 벤디브는 2009년에 이란 테헤란에서 있었던 시위를 다루었다. 이제 그들은 그래픽 노블을 통해 이란의 다른 문제를 세상에 보여준다. LGBT 커뮤니티를 받아들이는 문제다.

‘유세프와 파라드’는 주위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기 위해, 자신들의 사랑을 응원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두 젊은 남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LGBT 인권 단체인 아웃라이드 액션 인터내셔널과 손을 잡고 이번 달에 네 번에 걸쳐 ‘유세프와 파라드’를 싣기로 했다.

월드 포스트는 이번 달에 네 번에 걸쳐 ‘유세프와 파라드’를 싣는다.

솔타니와 벤디브에게 있어 ‘유세프와 파라드’는 그저 한 편의 그래픽 노블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라의 파라다이스’에서 배운 것을 이용해 전세계의 온라인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한 인간의 교류, 자유,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큰 논의에 참여하려 한다.

“언어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보고 관계를 맺는가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란은 종교의 정설의 이름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증오와 원한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곳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단자, 신앙심 없는 자, 첩자, 배교자, 신에 대항하는 적이다.” 솔타니가 월드포스트에 말했다.

솔타니는 여기에 맞서 싸울 때도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적 이란을 떠난 그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비인간화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가 글을 쓴다.

“키워드들이 있다. ‘테러리스트’, ‘게이’, ‘호모 faggot’, ‘짐승’, ‘배교자’, ‘이단자’ 같은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은 증오에 가득 찬 도구들이고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작가로서 나의 궁극적 목표는 이런 단어들에서 독과 힘과 권위를 뺏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게이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하이교, 세속적 이란인들, 성직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이건 권력의 문제다. 나는 우리가 예술가로서 이것을 가라앉힐 수 있다, 이것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벤디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그래픽 노블을 통해 이란 안의 논쟁을 보여줄 수 있고 이 논쟁이 드러내는 어려움을 포용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인, 노골적인 형태다.”

‘자라의 파라다이스’에 대한 긍정적 반응 때문에 벤디브는 복잡한 사회적 주제를 계속 그리기로 했다.

“우리가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 터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다가와 고맙다고 했다. ‘당신들 덕택에 이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주제에 대한 책을 읽지 않고, 신문 읽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TV에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들은 이 매체가 완벽하다고 느꼈다. 그건 아주 묵직하고 복잡한 주제였다. 하지만 이미지가 있으면 아주 달라지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유세프와 파라드’에서 작가들은 이란에서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탐구했다.

그래서 솔타니와 벤디브는 LGBT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감옥에 갈 수 있고, 동성애자라는 것이 ‘잘못된’ 몸에 ‘갇혀’ 있는 거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성전환 수술이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곳을 배경으로 한 게이 러브 스토리 작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그래픽 노블은 이란인들이 동성애를 다른 ‘범죄’ 행위와 비교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관찰한다.

예를 들어 ‘유세프와 파라드’ 시작 부분에서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게 왜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그 아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려 여러 질문을 던진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가? 절도? 남자는 그때마다 아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들이 그보다 더 나쁜 짓을 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할 권리, 우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능력에 제한을 둘 권리를 이란인들이 주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의 정체성, 섹슈얼리티, 도덕성을 공격할 때, 당신이 계속 방어 태세만 취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나는 이란인이 아닌 이란이 방어 태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타니의 말이다.

그는 벤디브와 자신의 작업이 이란 내의 더 큰 운동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게이들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이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공 및 개인 영역의 통제하는 국가의 능력을 제한하려고 애쓰고 있다.”

“문제는 이란인들이 아니라 이란 국가다. 사람들의 아이를 죽이고 묻은 다음,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를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슬람 종교적 믿음의 기초를 어기는 게 누군가.”

사랑은 늘 쉽지만은 않다. 금지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벤디브는 이 프로젝트가 갈등을 드러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요 동기 중 하나는 여러 선입견과 부정적인 인상으로 규정되곤 하는 문화 전체에 인간의 얼굴을 달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생생한 진짜 사람들을 그려내고, 그들도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흠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 했다. 그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당신이나 나보다 더 사악하거나 기만적인 것도 아니다.”

솔타니도 동의하며, ‘유세프와 파라드’ 같은 이야기가 그러한 서사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게이 자녀를 둔 부모들 상당수는 자신의 아이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 무척이나 동성애 혐오적이었다. 그러다 자신들이 배워왔던 것, 자신들의 믿음이 자신들의 사랑과 배치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사랑, 받아들임, 관용.”

알제리인인 벤디브는 이란 혁명은 이란에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한다. 솔타니 역시 이란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스토리텔링, 행동주의, 온라인 캠페인은 전부 하나, 즉 사랑으로 귀결된다.

“이란은 증오와 원한의 문화가 아니다. 사랑과 통합의 문화다. 이란은 동양도 서양도 아닌, 동양인 동시에 서양인 문화다. 이란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최고의 모습이다.”

유세프와 파라드는 그들의 가족과 나라가 자신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솔타니와 벤디브가 감옥에서 자행되는 잔혹 행위를 조명하든, 여성에 대한 구속이나 LGBT의 억압을 다루든, 이들은 인간들이 정체성과 사랑을 숨기도록 강요당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들은 세상이 꼭 이런 모습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글을 쓸 때면 상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이란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모든 시인들의 이란, 내 어린 시절의 이란. 나는 그걸 조금이나마 되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이란은 귀양살이 중이지만 아직 여기 있다. 귀양살이 중이지만 아직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유세프와 파라드'의 첫 챕터를 읽으실 분은 여기를 클릭!

허핑턴포스트US의 These Graphic Novel Authors Illustrate The Struggle Of Being Gay And In Love In Iran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트위터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허핑턴포스트에 문의하기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