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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별' 받은 셰프의 한 마디(사진)

ⓒ이영훈 셰프

"미슐랭 가이드에서 올해 별 하나를 받았다는 통보 전화를 받고는 스팸 전화가 아닌가 생각해 고맙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올해 '프랑스 미슐랭 가이드'에서 재불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별 하나를 받은 이영훈(33) 셰프는 1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선정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피력했다.

"얼떨결에 전화를 끊고 직원들의 환호성을 듣고서야 미슐랭 별을 따냈다는 게 실감이 갔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안내서로 유명한 프랑스 미슐랭 가이드가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한 2016년판 미슐랭 가이드에서 이 셰프가 프랑스 리옹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르 파스 탕'(Le Passe Temps·기분전환이라는 뜻)이 별 하나를 받았다.

미슐랭 가이드는 수준 높은 식당에 별을 하나에서 세 개까지 붙여 등급을 분류하는데 올해 프랑스에서 별 한 개 레스토랑으로 새로 뽑힌 42곳에 포함됐다.

음식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국가로 꼽히는 프랑스에서 한국 요리사가 프랑스인의 입맛을 만족하게 했다고 공인받은 것이다.

한국관광대 호텔조리과를 졸업하고 2009년 프랑스에 건너와 폴 보퀴즈 요리학교에서 공부한 이 셰프는 지난 2014년 4월 프랑스에서도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리옹에서 식당을 개업했다.

르 파스 탕은 아내와 소믈리에(와인 전문가), 요리사 등 100% 한국 직원이 운영하는 프랑스 레스토랑이다.

90㎡ 크기에 좌석 수도 26개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지만 개업 준비와 운영 초기에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돈이 많은 것이 아니다 보니 실내장식부터 모든 공사를 제가 다 했습니다. 레스토랑에 와보시면 아시겠지만 허름합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또 "홀에서 음식 주문받는 아내가 처음에는 프랑스어를 잘 못하다 보니 손님들이 제 아내인지 모르고 '프랑스어를 제대로 못 한다. 직원을 바꾸라'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그는 진심으로 정성이 담긴 음식을 만들어 내면서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날그날 구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이용해 프랑스 요리를 창조적으로 변형해 냈다.

르 파스 탕의 대표 요리는 한국 요리 수제비에서 모티브를 따 온 푸아그라 요리다. 팬에 구운 오리 간 푸아그라에다가 계절 채소, 쪽파, 김 가루 등에 멸치 육수를 부은 것이다.

"현대적인 프랑스 음식을 추구하다 보니 한국 요리를 일부러 섞지는 않는다"면서 "그러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면 명이나물 등 한국 음식 한두 가지를 추가한다"고 설명했다.

30대 초반에 요리 명장으로 인정받았지만, 애초 그의 꿈은 요리사가 아니었다.

"광고, 디자인, 건축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입시에서 재수했는데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자 부모님의 권유로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머리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하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요리는 그의 적성에 맞았다.

대학 1학년 때 호텔 레스토랑에 인턴으로 일할 때는 그곳 직원과 함께 있는 게 좋아서 직장에 남들보다 먼저 가서 늦게까지 일하곤 했다.

본격적인 요리사의 길은 대학 때부터 밟게 됐지만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 것 같다고 그는 회상했다.

"부모님이 외출하시면서 라면을 끓여 먹으라고 하면 라면 하나를 만들 때도 조리 시간이나 물의 양 등을 조절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습니다."

리옹에서 레스토랑을 열 때 그는 미슐랭 가이드 별을 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셰프는 "프랑스에서 일본인 셰프는 20명이 넘게 미슐랭 별을 받았는데 한국 사람도 프랑스 요리를 잘하는 것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르 파스 탕의 메뉴로는 겨울 뿌리채소와 송로버섯을 곁들인 비둘기 요리, 프라이팬에 구운 자연산 생대구와 유자를 넣은 그르노블식 소스 돼지감자칩 요리 등이 있다.

식사비는 점심 메뉴가 24유로(약 3만3천원), 저녁 메뉴는 40유로(5만4천원), 55유로(7만5천원) 두 가지다.

주변이나 파리의 미슐랭 가이드 별 한 개 레스토랑보다 가격이 크게 낮다.

이 셰프는 "손님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당분간 가격을 올리지 않을 계획이다"면서 "쓰고 싶은 재료가 있으면 올리겠지만, 그것도 몇 유로로 최소화할 것이다"고 말했다.

미슐랭 가이드 발표 후 그는 하루 인터넷으로만 100∼200건 예약을 받으며 레스토랑 전화기도 온종일 예약 전화로 불이 난다.

선정 발표 후 3∼4일 만에 이달 예약은 모두 다 찼고 벌써 다음 달 예약을 받고 있다.

개점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이 셰프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이 셰프는 앞으로 리옹과 한국에 레스토랑을 하나씩 더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도 집안이 넉넉해서 유학을 온 경우가 아니라 힘들었다"면서 "돈이 많지 않은 한국 요리사를 교환학생처럼 제가 운영하는 프랑스 레스토랑에 불러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요리하는 섹시한 남성, 일명 '요섹남'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사가 연예인처럼 바뀐 상황에 대해서는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한국에서 셰프들의 대외 활동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미슐랭 가이드 별 2∼3개 셰프들도 다른 요리사와 똑같이 출근해 일한다"면서 셰프가 정작 가장 중요한 요리는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경계했다.

이 셰프는 매일 오전 7시 반에서 8시에 출근해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다음 날 새벽 1시에야 집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다.

프랑스에서도 인기가 높아진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묻자 이 셰프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굳이 김치와 비빔밥 등을 홍보하지 않더라도 한국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잘하면 손님은 찾아올 것이다. 파리 한식당에 프랑스인이 많은 것은 그 이유가 아닌가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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