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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승희 자매 인터뷰, '진보 마초는 사랑을 얘기하면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 같아요'

  • 박세회
  • 입력 2016.02.12 08:45
  • 수정 2016.02.12 12:55

'대한민국효녀연합'을 주도한 홍승희 씨는 지난 소녀상 시위 퍼포먼스 이후 '얼굴도 예쁜 개념녀'로 대중에게 노출됐다. '효녀연합'을 지켜주겠다는 한 남성은 '오빠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결국, 지켜보던 언니가 나섰다. 지난 1월 8일 강원 춘천에서 '인문학카페 36.5도'의 운영진으로 있는 언니 홍승은 씨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인 여성의 대상화를 동생에게도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진 몇몇 남성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돌아왔다. '사회운동을 잘 하는 동생을 언니가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며 비하적인 발언을 퍼부었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자매를 만났다.

최근 몇몇 사람들이 '언니가 대승적으로 잘 하는 동생에게 찬물을 끼얹었다'고 했다고요.

승은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는 여성이 남성을 '위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적 대상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동생을 두고 또다시 대상화하고 있으니 이건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어요. 그걸 두고 그 사람들이 '동생이 어버이 연합이랑 싸워서 대승적으로 이겼는데 웬 찬물'이라고 말한 거죠.

승희 '대승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그 사람들이 언니보고 '꼴페미'라고 욕을 할 땐 예전처럼 '종북'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려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요.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더라고요.

페미니즘은 대승적이지 못한가요?

승은 자라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느꼈던 불편함이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제 인생에 끼치는 영향보다 더 컸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걸 '대승적'이란 개념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다는 게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목소리를 내자마자 주변에서 '대승적인 걸 망쳐버린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이게 제 자유의 임계 선이었던 것 같아요.

승희 그 '대승적'이라는 거에 사로잡히게 되면 폭력과 타협하게 되고 나를 내가 주장하는 사회 운동에서 소외시키는 격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해요.

진보 마초는 일부 기독교도들이 사랑을 얘기하면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언니가 동생을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요?

승희 페미니스트로 만든 게 욕은 아니지만, 그 맥락이 너무 기분 나빴어요. 그 사람들이 '동생이 얼굴도 예쁜 개념녀라며 주목을 받으니까 언니가 질투해서 페미니즘의 잣대를 들이댄 거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언니가 오빠였다고 생각해보세요. 오빠가 나서서 '내 동생 사회 운동하는데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마라'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오빠가 동생을 질투해서 그런다. 어렸을 때 성장 과정에서 동생이 오빠보다 예쁨을 많이 받아서 질투가 많아진 걸 거다'라고 했을까요? 거기에다가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고까지 하니까 언니도 저도 너무 속상해했어요. 아, 정말 열 받아요.

승은 이게 그냥 쓴 게 아니라 저를 두고 '정신분열', '소아병 장애'라고 표현했어요. 큰 상처가 됐죠. 게다가 그분들이 소위 말하는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더 크게 실망하기도 했고요. 본인들은 '진보 마초'라고 말하던데, 진보와 마초가 동시에 성립될 수 있나요? 진보 마초는 일부 기독교도들이 사랑을 얘기하면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승은 전부 페미니즘 공부하면 편협해지니 하지 말라는 반응이었어요. '그게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상하게도 전부 남자분들이었어요. 왜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에 '꼴페미'라는 단어를 쓰고 외국에서는 '페미나치'라고 말하죠.

승희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연락이 와요. '승희야 너 큰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 이런 길로 빠지면 안 된다'고 말이죠. 이미 제가 편협해졌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가장 속상해요.

승희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게 된 건가요?

승희 언니랑 이번 일을 계기로 일상뿐 아니라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불편했던 점들이 있었는데 그걸 그냥 넘기고 나서 하루가 왜 공허하게 느껴졌는지를 깨달았어요. 그런 불편함의 이유가 제가 가진 젠더 감수성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이 '아 나는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한 거죠.

오늘 얼굴이 다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승은 다른 때였다면 편하게 사진을 찍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동생이 언론에서 회자하는 방식을 보면서 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읽어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새누리당의 어떤 여성 후보는 '얼짱'으로 노출되고 있고 진보진영의 몇몇 사람들은 이걸 두고 '인조인간'이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들 한단 말이죠. 이런 메커니즘을 알게 되니 조심스러워졌어요. 이제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노출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의 외모를 중요시 하는 게 여성 혐오인가요?

승희 저도 어디서부터가 여성 혐오의 범주에 들어가는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다만 가장 큰 문제는 특히 여성의 경우 미디어나 광고에서 지나치게 획일화된 하나의 모델로만 몰아간다는 점이에요. 일례로 압구정에 있는 성형외과 광고들을 보면 굉장히 불편해요.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광고 문구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부정하겠어요?

그런 문구들이 매우 폭력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걸 올바르지 못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죠.

승은 규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에요. 하지만 여성이 어려서부터 외모로 평가 받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고 이게 일종의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에도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제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당사자인 여성 스스로가 자신에게 '코르셋'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그것이 내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였다는 걸 아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에요. '코르셋 깨기'가 있어야 그 이후 (여성) 운동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대응을 준비 중인가요?

승은 사실은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준비 중이에요. 이번에 페이스북 상에서 있었던 논란 때문에 조사를 해보니 저와 제 동생뿐 아니라 여성 활동가들 전반에 대한 혐오성 발언 및 개인 신상정보 유출이 심각했어요. 페이스북 코리아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는데, 저도 동참하기로 했어요. 페이스북이 포스팅을 차단하는 기준이 편파적이라는 것도 소송의 쟁점이에요. 예를 들면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김치녀'라는 사이트는 수많은 사람이 구독하고 있고 그렇게나 많은 혐오성 글이 올라와서 몇 번이나 페이스북에 신고했는데도 없어지지 않고 있어요. 반대로 메갈리아 페이지는 신고로 세 번이나 폐쇄되었죠. 메갈리아에서 활동한 한 여성은 신상정보가 다 털려서 조리돌림을 당했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신고를 하고 해당 게시글을 내릴 수 있는 정책 정도는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페이스북에선 본사가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방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변호사를 만나고 오셨다는 게 그 건인가요?

승은 (페이스북 소송과는) 별건으로 저와 제 동생에 대해 지나친 혐오발언을 했던 남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변호사와 교류하며 진행하고 있어요.

승은 씨가 최근에 월간 '진지'라는 독립 잡지를 내셨는데 요새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는 그 '진지'인가요?

승은 그런 의미도 있어요. 함께하는 친구들이 다들 진지한 편인데, '진지충'이라고 비하하는 게 일상적인 문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니 '진지'라는 단어가 여러 개 더라고요. 적군에 대비한 '진지'도 있고 밥을 높여 부르는 '진지'도 있고요. 무례한 농담을 웃어넘기지 않으면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며 '진지하네'라고 비꼬는 문화도 짚어주고 싶었어요.

1호의 주제가 '꼰대'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꼰대를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승희 꼰대는 상처가 많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최근 읽은 얘기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학대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불편하다고 얘기를 하면 '나도 참고 있는데 너는 뭔데 그러느냐'며 문제의 원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약자에게 분노를 분출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약자 혐오의 논리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만나본 꼰대 또는 여성으로 느껴야 했던 불편함에는 어떤 게 있나요?

승희 '네가 아직 현실을 몰라서 그래'라는 사람들. '너네는 너무 감상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아니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기도 해요. 심지어 연인관계에서도 제가 말하는 것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설득해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요. 온화한 말투로 칭찬해준다는 듯이 "승희 씨는 나중에 남편 만나서 결혼하면 되겠지. 그래서 여자들이 사회운동을 더 많이 하는 거야"라는 말도 들었어요.

"젠더 감수성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당해서 기분 나쁠 행동은 하지 않는 거예요. 일종의 공감 능력이죠.

승은 조금 다른 경우지만 예전에 농활에 갔을 때 노총각 이장님께서 둘만 있는 자리에서 딸 같다며 자꾸 스킨십을 하려고 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선배들에게 불편하다고 얘기를 했더니 한 남자 선배가 '딸 같아서 그런 건데 네가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며 화를 내더라고요. 그 공간에 있던 다른 선배들도 전부 침묵했어요.

실제로 남자들은 누군가가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승희 여성에게 들은 적도 있어요. 여성에게도 여성혐오의 정서가 있습니다. 제 안에도 제가 모르는 여성 혐오적 정서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 사회에서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젠더 감수성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당해서 기분 나쁠 행동은 하지 않는 거예요. 일종의 공감 능력이죠.

두 분의 삶의 궤적이 매우 비슷하더군요.

승희 제가 언니의 궤적을 따라다녔어요. 저흰 춘천에서 자랐는데, 언니가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18세에 대학에 들어가는 걸 보고 저도 '저런 방법이 있었군'이라고 생각해서 따라했어요. (웃음) 같은 대학에서 언니는 사회복지 대학원 저는 사회학 대학원을 졸업했어요. 같이 대자보도 붙이고 다니고 학생운동도 함께 했죠.

승은 어려서부터 동생은 작은 편이고 저는 큰 편이었고 마치 딸같이 챙긴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일반적인 자매들이랑 비슷해요. 친할 땐 너무 좋다가 크게 싸우기도 하고요. 독립해서는 둘이 같이 산 적도 있는데 생활방식의 차이로 윗집 아랫집으로 갈라서기도 했죠.

가정환경이 사회 활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나요?

승은 부모님께서 중학교 때 이혼하셨어요. 처음에는 그걸 '결핍'이라고 느꼈는데 나중에는 그 결핍이 오히려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준 면도 있고요. 다소 보수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 때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어요. 밖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다가도 집에 가면 무기력함을 느꼈어요. 독립하게 되고 나서야 우리 자신의 인격으로 활동하게 된 것 같아요.

승희 집을 나오면서 여성으로서, 딸로서, 모범생으로서 규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족쇄를 풀고 나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효녀연합'의 활동이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웃음)

승희 '어버이 연합'을 패러디 하기 위해서 '효녀연합'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거긴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부장적인 틀 안에서 마치 국가가 어버이고 여자들은 모두 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정말 끔찍하잖아요. 그리고 일단 제가 효녀가 아니에요. (웃음) 누구나 '효녀'가 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시위꾼이라는 비판도 많이 들었죠.

승은 저는 어렸을 때 꿈이 환경운동가였어요. 일기장에도 쓰여 있어요. (웃음) 사람들이 거대한 사회의 구조 담론과 자신의 삶이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승희 그 단어가 거북스러워요. '꾼'이라는 단어로 활동하는 의미를 격하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분리하려는 목적인 것 같아요. '저런 건 시위꾼, 활동가만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죠.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 '운동가'라는 단어도 불리는 것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영어권은 보통 '액티비스트'라는 단어를 많이 쓰죠. 본인을 표현하는데 어떤 단어를 선호하시나요?

승은 언어로 규정해서 표현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찍힌 시점에서 뭔가 하나의 단어로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말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저를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었잖아요. '모호하면 모호한 대로 놔둘 수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단지 그때그때 소요하듯이 정직한 마음으로 제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인데 말이죠.

승희 프랑스에서도 사회운동을 할 때 연설문을 보면 '지식인 예술가 여러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예술가와 사회활동의 에너지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둘 다 자신을 표현하고 실현하려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 '혁명가', '활동가', '운동가'라는 단어는 본질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시민활동을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병행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승희 그림이 팔릴 때도 있지만, 굉장히 드물고 교육이나 강의를 나가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녹취록을 푸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계속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있지만, 작년부터 조금씩 개인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승은 조합형태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처음에 창업할 때는 준비가 미비했고 서로의 역할 분담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1년이 지나고 나니 한 친구는 바리스타와 제과 자격증도 땄고 또 다른 친구는 인디자인(출판물을 디자인하는 프로그램) 교육을 받아서 작년에 나온 8권의 잡지를 책임졌죠.

승은 씨가 '인문학 카페 36.5도'를 조합의 형태로 운영하면서 각 지원 단체별로 지원 정책에 차이가 있다고 하셨는데 설명해 줄 수 있으신지요?

승은 정부에서 예비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을 받을 때는 정량적,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재단하더군요. 경영학과를 나온 청년 창업가들이 돈을 버는 데만 전력을 쏟아도 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적 기업에 지원금을 주고는 몇 년 안에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라고 말하는 건 조금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이번에 '진지'라는 잡지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아르떼')이라는 데서 지원을 받을 때는 공동체와 개인의 역량을 보고 우리가 서술한 글을 보고 정성적으로 평가하더라고요. 온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채널이 있다는 게 사실 좀 놀랍습니다.

승은 아까 말한 아르떼나 아름다운 재단, 동그라미 재단 등의 굵직한 재단도 있고 지역별로는 강원문화재단 춘천문화재단 등이 있고 지역 교육청에서도 공고를 자주 냅니다. 다만 이런 지원이 국가의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와 지자체가 하지 못하는 교육, 문화 사업을 개인이 대신해서 하는 거기에 '권리'로 여기고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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