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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레스터시티 우승에 돈을 걸었던 남자, 640배 현금지급 제안을 거절하다

  • 허완
  • 입력 2016.02.09 12:52
  • 수정 2016.02.09 18:31
ⓒGettyimageskorea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를 지켜 본 팬이라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레스터 시티 우승에 돈을 건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이다. 게다가 그 중 한 명은 최근 베팅금액의 640배에 달하는 '현금지급(cash-out)' 제안을 거부했다는 소식이다.

BBC스포츠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목수로 일하는 38세 남성 리 허버트(Leigh Herbert)는 2015/16 시즌 개막 이전,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베팅했다. 당시 배당률은 무려 5000-1이었다. 그만큼 레스터시티의 우승 가능성이 낮게 평가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즌의 3분의2 가량이 지난 현재, 레스터시티는 2위와의 승점을 5점차로 벌리며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허버트는 시즌 시작 전 캠핑을 하던 중 레스터시티 우승에 5파운드(약 8600원)를 베팅했다. 영국 도박업체 윌리엄 힐(William Hill)은 최근 그에게 현재 시점에서 배당금 3200파운드(약 556만원)을 받을 수 있는 현금지급 제안을 건넸고, 허버트는 이를 거절했다.

10살 때 삼촌을 따라 경기장에 간 이후부터 레스터시티를 응원해왔다는 그는 "지난 시즌 라니에리 감독이 맡았던 그리스 국가대표팀을 지켜봤는데 썩 나빠보이지 않았다"며 "그가 우리 팀 감독에 선임됐을 때, 뭔가를 가져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만약 레스터시티가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는 베팅금액의 5000배인 2만5000파운드(약 4300만원)을 거머쥐게 된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Gettyimageskorea

이번 시즌 레스터시티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적 같은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로맨틱 성공 스토리'로 꼽는 이들도 있다.

꼭 1년 전 이맘 때쯤 리그 최하위인 20위를 기록하며 강등권 탈출에 매달리던 이 팀은 이번 시즌 폭발적인 공격력과 안정적인 조직력을 바탕으로 리그 강팀들을 차례차례 완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매 시즌 선수 이적료로 수백억원 씩을 지출하는 '부자 구단'들이 즐비한 프리미어리그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레스터시티는 약체 중에서도 약체로 분류됐다.

스카이스포츠는 시즌 프리뷰에서 레스터시티가 14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가디언의 쟁쟁한 축구 평론가들은 그들을 '강등권'으로 분류했다. BBC 역시 강등권인 '19위'를 예상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영국 축구 평론가들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전 그리스 국가대표팀 감독이 새롭게 레스터시티 감독으로 부임하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언제쯤 그가 경질될까?'를 놓고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BBC '매치 오브 더 데이(MOTD)' 진행자이자 과거 잉글랜드 국가대표(1984-1992), 레스터시티 유스(1976-1978)&선수(1978-1985) 출신인 레스터시티 레전드 게리 리네커의 라니에리 감독 선임에 대한 반응...

역사적으로도, 레스터시티는 강팀과는 거리가 멀다. 1부리그 우승 경험은 한 번도 없으며, 가장 최근의 FA컵 우승 기록도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다.

1884년 창단 이후 팀이 1부리그에 머물렀던 건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1994-95, 1996-2002, 2003-2004),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이 전부다. 나머지 시즌에는 2부리그와 3부리그를 들락날락 했다.

슈퍼스타급 선수나 '특급 유망주' 같은 눈에 띄는 선수도 없었다. 현재 팀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제이미 바디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부리그에서 '파트타임'으로 선수생활을 하던 무명 선수였다.

제이미 바디, 2015년 11월28일. ⓒGettyimageskorea

또다른 돌풍의 주인공인 리야드 마레즈는 프랑스 2부리그 팀에서 이적한,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전혀 눈에 띄지 않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선수였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문가들은 레스터시티의 돌풍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놀랍긴 하지만 후반기에 접어들면 자연스레 순위가 추락할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부진을 겪고 있는 다른 강팀들이 폼을 회복하고, 레스터시티의 주축 선수들이 피로와 부상에 시달리게 될 경우, 초반의 돌풍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레스터시티는 그런 야박한 평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기를 거듭할수록 우승후보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맨체스터 시티를 3대1로 완파하자 전문가들도 레스터시티의 우승 가능성을 진지하게 거론하기 시작했다.

BBC스포츠에 따르면, 심지어 다른 팀의 팬들도 레스터시티의 놀라운 질주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00년대 들어 '리그 순위가 너무 뻔해졌다'는 데 있다.

이런 현상은 중동과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부호들의 돈이 흘러들어오면서 특히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첼시나 UAE의 왕족 만수르가 인수한 맨체스터시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해 뛰어난 선수들을 '싹쓸이'로 영입했고,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단숨에 우승권으로 끌어올렸다.

나머지 팀들도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쏟아 부어가며 선수 영입에 매달렸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같은 잉글랜드 축구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팀들에도 외국 자본이 몰려든 건 물론이다.

반면 자금력에서 밀리는 팀들은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기는 커녕, 애써 발굴하거나 육성한 선수들을 부자 구단들에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과적으로 팀 사이의 전력 격차가 심해지고, 돈이 팀 성적을 좌우하는 상황이 굳어지면서 상위권은 늘 (20개팀이 아니라) 4~5개 팀 사이의 경쟁으로 끝나는 추세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리그가 역동성을 잃고 너무 지루해지는 거 아니냐'는 식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지난 시즌 막판, 텔레그라프의 Jason Burt가 쓴 이런 칼럼처럼 말이다.

현재의 프리미어리그 체제가 도입(1992-93)되기 직전 3시즌 동안, 10개의 서로 다른 팀이 1위~5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세 번 모두 '탑 파이브'에 포함됐던 건 아스날 뿐이었다. (우승 1회 포함)

프리미어리그 체제 도입 직후 3시즌 동안 탑 파이브 역시 10개 팀이 나눠가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블랙번이 세 번 모두 5위권 내를 기록한 팀이었다.

반면 지난 3시즌 동안(2014-15 시즌을 포함하면 4시즌 동안), 5위권을 기록한 팀은 8개다. 이 정도면 '건강한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8개 팀 중 2개 팀(맨체스터 시티, 아스날)은 한 번도 빠짐 없이 5위권 내를 유지했(거나 유지할 것이)고, 2개 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은 세 번이나 5위권을 기록했다.

근본적인 내부 순위 변화는 없었다는 얘기다.

(중략)

엘리트 클럽들이 6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건, 2011-12 시즌의 첼시(리그 6위, 챔피언스리그 우승)나 지난 시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대재앙 수준의 실패가 나타날 때 뿐이다. 그것마저도 잠깐이다. 월등한 재정적 우월함 덕분에 그들이 밀려나는 건 잠깐에 불과하다.

탑 파이브는 탑 파이브다. (토트넘을 포함하면 탑 식스.) 그들은 엘리트 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텔레그라프, 2015년 4월30일)

레스터시티의 돌풍은 '축구에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뻔하지만 결코 증명하기 쉽지 않은 명제를 극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주요 선수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바디는 EPL 연속경기 골 최다기록을 갈아치우며 현재 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마레즈는? 세르히오 아게로 같은 월드 클래스급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재 득점 랭킹 공동 4위를 기록 중이다.

BBC스포츠에 따르면, 레스터시티 우승 배당률은 아래와 같이 변화해왔다.

  • 2015년 8월 : 5000-1
  • 2015년 9월 : 1500-1
  • 2015년 10월 : 500-1
  • 2015년 12월 : 66-1
  • 2016년 1월 : 16-1
  • 2016년 2월 : 7-1

* 매월 초 기준

한편 윌리엄 힐은 레스터시티 우승에 베팅한 사람이 모두 12명이라고 밝혔다.

윌리엄 힐의 대변인 루퍼트 아담스는 "상업적인 이유로, 우리는 레스터시티의 팬이 아니다. 그들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200만 파운드(약 34억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Leicester 'dreaming' of Champions League - Ranieri - Go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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