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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블랙홀을 안 지 10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다

  • 남현지
  • 입력 2016.02.07 13:42
  • 수정 2016.02.07 13:43
ⓒNASA

▶ 인류가 ‘블랙홀’의 존재를 알게 된 지 100년이 지났다. 학자들조차 우주에서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천체. 무수한 블랙홀이 수시로 발견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블랙홀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로 베일에 싸여 있다. 은하 중심부마다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거대질량 블랙홀은 은하 속 ‘암흑의 핵심’이다. 태양계 수십개가 들어갈 정도다. 이곳엔 별과 각종 천체, 미지의 생명 같은 우주의 비밀이 감춰져 있다.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至高)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조지프 콘래드, ‘암흑의 핵심’)

한 길 사람 속은 모두 제각각 다르지만, 우주의 심연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다. 적어도 은하의 핵심은 그렇다. 대부분의 은하가 품고 있는 거대한 암흑의 핵심, ‘거대질량(supermassive) 블랙홀’ 이야기다.

은하계 중심부에 박혀 있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수십억 배에 이르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상상도. 블랙홀 주변에서 거대한 회전 원반을 이룬 폭발한 별들의 잔해와 먼지가 블랙홀 내부로 흘러들어가며 열과 빛을 방출하고 있다.

긴 여정의 문을 열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16년 2월, 인류는 처음으로 우주의 심오한 ‘암흑의 핵심’과 마주했다. 하늘에서는 아니었다. 몇 달 뒤 베를린에서 발표될, 11쪽짜리 논문 속에서였다. 저자는 카를 슈바르츠실트. 독일의 물리학자였고, 당시 한창이던 1차 세계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해 러시아와의 접경지대에서 싸우고 있었다. 마흔두 살의 나이로 무리해서 간 전장에서 그는 천포창이라는, 피부에 수포가 생기는 고통스러운 자가면역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도 그의 호기심은 말리지 못했다.

그는 불과 석 달 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놀라운 이론, 일반상대성이론에 매료돼 있었다. 유럽인들이 수백 년 동안 믿어오던 물리법칙을 하루아침에 다시 쓰게 한 괴물 같은 이론이었다. 방정식을 보니 과연 그랬다. 이 신비로운 방정식은 시공간과 물질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그 진짜 의미를 다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정식을 풀어서 그 안에 숨은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에는 수십 년이 더 걸릴 거라는 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상대성이론이 가야 할 그 긴 여정의 문을 처음 연 사람이 바로 슈바르츠실트였다. 그는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물리학자로서의 직관을 발휘해 방정식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슈바르츠실트가 떠올린 건 질량을 지닌 공 모양의 유체였다. 회전이 없는 단순하고 단정한 공. 이런 물체를 가정한 채 방정식을 풀었더니 의외로 쉽게 답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묘했다. 질량을 가진 물체의 지름이 어떤 반지름으로 축소되면(질량에 따라 그 반지름의 크기는 각기 달랐다), 값의 일부가 무한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물리학자들이 싫어하는 이른바 특이점이었다.

이 특이점 속에서, 슈바르츠실트는 인류 최초로 우주 속 암흑의 핵심을 봤다. 중력이 너무나 강해진 나머지,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벗어날 수 없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빛이 나오지 않으니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암흑이었다.

슈바르츠실트는 이런 일이 우주에서 정말로 일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70만㎞에 이르는 태양의 반지름이 3㎞로 압축되거나, 지구가 콩알만해질 경우에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었고, 당시 어떤 관측 천문학자도 우주에서 비슷한 천체를 발견한 적이 없었다. ‘무서워라! 무서워라!’ 그는 자신이 발견한 암흑의 핵심을 조용히 덮어 두었고, 풀어낸 수식만 논문으로 투고했다. 석 달 뒤, 그는 차가운 전장에서 오직 그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또 다른 암흑의 핵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때 이른 죽음이었다.

슈바르츠실트의 풀이가 나온 이후, 또 다른 풀이가 여럿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풀이는 모두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어느 크기 이하로 줄어들면 빛조차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 이제 물리학자들은 질량을 가진 가상의 구형 유체가 아니라, 우주의 별을 놓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별이 슈바르츠실트가 말한 크기로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덩치도 크고 질량도 큰 별이 있다면, 과연 이 별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30년대 말, 태양 질량의 세 배가 넘는 중성자별이라면 자체 중력으로 별이 점점 안으로 무너져 내려 결국 슈바르츠실트가 말한 현상이 나타날 거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에 대한 완전 풀이(value)인 ‘슈바르츠실트의 풀이’를 구한 카를 슈바르츠실트(1873~1916). 별이 중력 붕괴를 일으켜 블랙홀이 되는 임계반지름을 알아냈다.

영원히 엇갈릴 경계면

오펜하이머가 논문에서 밝힌 이 별의 모습은 기괴했다. 멀리서 보면, 슈바르츠실트가 예상한 크기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수축한다. 그리고 그 경계면을 지나는 순간, 별 안쪽 공간은 도려낸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표면에서 나온 빛이 탈출하지 못하는데다, 빛의 파장이 길어지다 못해 무한대가 되면서 눈으로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불교에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소를 찾는 목동에 비유한 그림인 ‘심우도’가 있다. 심우도의 여덟 번째 그림 ‘인우구망’을 보면 소도 나도 다 잊고 오직 공(空)을 깨닫는다는 뜻에서 텅 빈 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오펜하이머가 떠올린 이 천체의 모습이 딱 그런 느낌이다.

더 기묘한 것은 이 별 위에 서서 함께 추락하고 있는 가상의 사람이 보는 풍경이다. 자신이 중심점을 향해 계속 가라앉고 있다고 느낀다(살아 있다면). 오펜하이머의 계산에 따르면, 이들이 중심점에 다다르는 데에는 하루 정도가 걸린다. 반면 이 사람을 외부에서 보는 사람은 그가 슈바르츠실트가 말한 경계면을 통과하지 못하고 점점 느리게, 영원히 다가가고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점차 얼어붙는 것처럼 말이다. 이 별에서는 빛조차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안에서 밖으로 탈출할 수도 없다. 게다가 강한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효과로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을 것이다. 영원한 헤어짐, 완벽한 고립. ‘무서워라! 무서워라!’ 그들은 암흑의 핵심에 의해 영원히 엇갈릴 것이다.

이 기묘한 천체에는 나중에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에는 삼척동자도 이름을 아는 바로 그 블랙홀이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크고 작은 무수한 블랙홀을 수시로 발견하고 있으며 성질도 많이 밝혀냈다. 이에 따르면, 블랙홀은 태양의 30배 정도 무거운 별들이 폭발한 뒤에 만들어진다. 폭발한 뒤에 남은 부분(그중 하나가 중성자별이다)의 질량이 태양의 3~4배 수준이 되면 수축하고, 블랙홀이 된다. 별의 잔해와 먼지가 블랙홀 주변에 거대한 회전 원반을 이루며 블랙홀 내부로 흘러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물질들은 서로 부딪히며 마찰해 열이나 빛 또는 고에너지 입자를 방출한다. 특히 먼지 원반의 수직 방향으로 내뿜는 고에너지 입자들은 먼 거리에서도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지구에서는 이런 현상과 주변 별의 움직임을 관찰해 블랙홀의 특성을 연구한다. 그런데 이런 진전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면모로 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은하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질량 블랙홀은 그 수수께끼의 핵심이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말 그대로 질량이 엄청나게 큰 블랙홀을 말한다. 태양의 몇 배, 몇십 배 수준이 아니다. 최소 수십만 배이다. 예를 들어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질량 블랙홀인 궁수자리A별(Sgr A*)의 경우, 질량이 태양의 400만 배가 넘는다. 그나마 이 정도는 작은 축에 속해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큰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이보다 1만 배 더 크다(태양의 400억 배). 이 블랙홀은 ‘덩치’도 커서 그 안에 태양계를 수십 개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다. 작년 12월 영국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거대질량 블랙홀이 이론적으로 가질 수 있는 최대 질량 크기는 태양의 약 500억 배다. 우리 은하에 있는 별의 총 개수가 약 1천억 개니, 우리 은하의 절반 정도 질량을 지닌 괴물 블랙홀이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블랙홀 안 온전한 정보

거대질량 블랙홀은 크기가 작은 다른 블랙홀과 구분되는 기묘한 특성이 많다. 우선 은하의 중심부에 주로 존재한다. 과거에는 우리 은하처럼 가운데가 도톰한, 달걀 프라이 모양을 한 은하의 중심부에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른 모양의 은하 중심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런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은하마다 가운데에 똬리를 틀고 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질량이 커질수록 밀도가 낮아진다는 점도 신비롭다. 예를 들어 태양보다 1천만 배 이상 질량이 큰 거대질량 블랙홀의 경우 밀도가 물보다 작아진다. 우주에서 가장 큰 거대질량 블랙홀들의 밀도는 풍선 속 공기보다도 작아진다. 만약 거대질량 블랙홀을 담을 수 있는 수족관이 있어 안에 블랙홀을 던져 넣는다면, 분명 물 위에 둥둥 뜰 것이다(물론, 실제로는 물이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겠지만). 또 기묘하게도 클수록 블랙홀을 통과할 때 안전해진다. 블랙홀을 설명하는 과학책을 보면, 사람이 블랙홀에 접근할 경우 블랙홀에 가까운 곳은 세게 잡아당기고 먼 곳은 약하게 잡아당겨서 몸이 찢긴다고 흔히 묘사한다. 실제로 작은 블랙홀에서는 별이 이렇게 부서져 빨려 들어가는 사례가 관측으로 확인되기도 했다(이를 조석파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어마어마하게 큰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아, 사람이든 별이든 온전한 모습 그대로 암흑의 핵심 속으로 쏙 빠져 들어간다.

모든 거대질량 블랙홀은 자매처럼 닮았다. 블랙홀을 구분할 수 있는 지표는 오직 질량과 전하, 그리고 회전과 관련한 성질(각운동량) 셋뿐이다. 슈바르츠실트의 블랙홀은 회전하지 않고 전하도 없으므로 오직 질량만 차이가 난다. 회전하는 블랙홀은 여기서 회전 성질만 추가된다. 그러니까 모든 은하의 핵심에 위치한 블랙홀은 크기나 회전 성질만 다를 뿐 모두 엇비슷하다. 한 길 사람 속은 제각각 다르지만, 은하 속 암흑의 핵심이 비슷하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블랙홀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정보는 보존되므로, 각각의 블랙홀의 내부는 엄밀한 의미에서 다 다를 것이다. 빨려 들어간 별과 소천체, 먼지, 혹은 혹시 존재했을지 모를 미지의 생명에 대한 물리학적 정보는 각각의 암흑의 핵심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스티븐 호킹이 인정했던 것처럼, 일부 정보는 희미하게나마 새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블랙홀 바깥에 사는 우리가 그 속에 깃든 사연을 알 방법은 없다. 우리는 그저 매끈하고 검은, 우주의 비밀을 감춘 채 함구하고 있는 암흑의 핵심을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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