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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와 클린턴의 싸움은 순수함의 시험이 아니다. 젠더와 기업의 힘 사이의 분열이다

  • 김도훈
  • 입력 2016.02.05 13:08
  • 수정 2016.02.09 17:23

갈수록 논란이 되고 있는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 사이의 경선 전쟁은 트위터에서의 싸움이나 변화에 대한 서로 다른 이론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두 후보간의 골이 깊어지고 있고, 양측 지지자들 사이의 언쟁도 더욱 험악해졌다. 젠더, 기업의 힘, 공평한 사회의 모습에 대한 생각 자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큰 균열이 있음을 반영하는 상황이다.

월 스트리트에 대한 민주당의 지원에 맞서면서 민주당에서 두 번째로 인기있는 인물로 올라섰던 엘리자베스 워렌이 처음으로 이 균열을 만들었다. 남성 후보가 워렌의 반기업 메시지를 대선 경선에 들고 나와, 그녀의 이념은 민주당을 더욱 휘젓고 있다. 클린턴과 샌더스의 경선 대결은 이제 1970년대 말 이후 민주당이 추구했던 진보의 모델에 대한 투표가 되고 있다.

파지바에서 커트니 엔로우는 클린턴과 진보에 대한 클린턴의 비젼을 지지했다. 엔로우의 글의 힘은 상당 부분 그 형식에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로우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인식하는 클린턴의 단점의 상당 부분은 사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권력에 대한 젠더에 따른 이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 첫 여성 대통령을 뽑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또한 가장 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다.

3) 클린턴은 나쁜 정책들을 지지한 바 있지만, 지금은 좋은 정책들을 지지하니 괜찮다.

4) “클린턴이 게임을 하는 게 싫어? 기득권층에 끈이 있는 게 싫어? 그래야 실현을 시킬 수 있는 법이야.”

첫 두 가지 주장은 분명 참이다. 그 다음은 보다 흥미롭다.

클린턴은 1990년대에 비해 지금 확실히 결혼 평등과 퀴어 정의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에 비해 이민에 비해 더 진보적인 자세이다.

하지만 다른 정책들은 꾸준했다. 외교 정책에서는 지금도 매파이다. 언제나 낙태권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꾸준히 국내외 여성들을 위한 동등 임금과 직장에서의 평등을 지지했다.

경제적 정의에 대해서는 진보나 악화의 일직선을 따르지 않았다. 어린이 보호 기금에서 일했을 때는 아동 빈곤에 대해 좋은 일을 했다. 그 이후에는 복지 개혁을 공격적으로 지지해서, 어린이 보호 기금의 창립자 메리언 라이트 에덜먼을 분노케 했다. 보건 사회 복지부 차관이었던 그녀의 남편 피터 에델먼은 항의의 표시로 사임했다. 이건 ‘시대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아동 빈곤 퇴치를 위해 일했던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클린턴은 복지 개혁 때문에 빈곤에 빠질 어린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정도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복지 개혁을 지지했다.

워렌은 클린턴이 퍼스트 레이디였을 때 유해한 파산 법에 반대했다가, 2001년에 상원 의원이 되어서는 찬성표를 던지고, 실제로 제정된 2005년에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클린턴은 2001년 투표는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법안을 수정한다는 조건 하에 찬성했다고 변호했다.

파산 법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신용 카드 빚을 탕감 받는 것을 더 어렵게 한 법니다. 클린턴은 크게 손대지 않았지만, 이혼 수당과 자녀 양육비는 신용 카드사에서 손댈 수 없게 했다. 이 점에서 클린턴은 신용 카드사를 대변해 파산 법 전체를 밀어붙였던 조 바이든보다 이 이슈에 있어 더 진보적이다.

그렇지만 클린턴이 수정했어도, 이 법은 빈곤층과 중산층에게 재정적 타격을 주었다. 특히 싱글 맘과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고치기 전보다는 덜 나빠진 것뿐이었다. 클린턴은 통과될 수밖에 없는 법에 그나마 최선의 개선을 한 것도 아니었다. 2001년에는 통과되지 못한 법이었다.

클린턴의 경제 정책 역사를 관통하는 이러한 테마는 그녀가 월마트 이사진에 올랐던 것, 골드만 삭스에서 연설료로 수십만 달러를 받은 것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며, 엔로우도 부정하지 않는다. 클린턴은 늘 거부들과 가까웠고, 그게 클린턴의 이제까지의 행보에도 반영된다. 이건 ‘실현을 시킬 수 있는 법’의 일부다.

엔로우의 ‘기득권층’에 대한 시각은 인권 캠페인이나 가족 계획에 대한 멍청한 비난이 아니다. 기업의 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실현을 시킬 수 있는’ 것들은 기업의 힘이 적당한 상황에서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에 제한된다. 엔로우는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있는 셈이다. 젠더 평등과 게이 인권은 – 적어도 지금은 – 엔로우에게 미국 정치에 기업의 영향력을 제한하거나 미국이 상시 전쟁 상태인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슈다

이것은 선출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아니다. 엔로우의 글의 주된 테마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선거에서 이기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은 클린턴에게 기대를 걸 만한 때이다. 젠더 진보의 가능성이 예측 가능한 미래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여성이 정말로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칼리 피오리나에겐 미안하지만) 젠더 평등에 대한 강하고 점점 나아진 경력을 지닌 여성이 당선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여러 샌더스 지지자들이 믿는 것과는 다른 비젼의 진보다. 샌더스 지지자 일부는 기업의 힘을 고치면 젠더와 인종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는 직선적인 경제 결정론자이다. 샌더스 자신도 인종 정의의 진보가 느린 것이 ‘상당 부분’ 거액 정치 기부자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경제적 정의 없이는 진정한 젠더나 인종 정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좀 더 미묘한 시각이다. 계급은 젠더나 인종의 정치학을 결정하지 않지만, 각 개념은 자기 의미의 일부를 다른 개념에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클린턴의 파산 법 투표는 그저 계급만의 이슈는 아니었다. 그것은 젠더 평등 이슈이기도 했으며 아동기 개발 이슈이기도 했다.

계급, 인종, 젠더 등 하나를 떼어 내 완전히 독립된 문제로 다루려고 하면 다른 이슈들의 진보를 막게 될 뿐 아니라, 선택한 이슈에 대해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된다. 이런 시각으로 보았을 때, 기업의 힘을 바꿀 수 없는 요소,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적응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진보의 근본적 장벽이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기업의 힘과 제대로 맞붙기는 꽤 어려울 것이다. 동등 임금 법을 도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엔로우가 클린턴 당선을 희귀한 기회로 보듯이, 샌더스 지지자들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의 당선을 일생일대의 순간으로 본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적 지지는 생각이 없는 충동과 느낌들의 결과이고, 이번에는 노골적 성 차별과 빨갱이 편집증이 상당히 개입되어 있다. 하지만 에세이를 쓰는 계급 내의 분열을 기본적으로 의견이 같은 사람들 간의 작은 차이에 대한 나르시시즘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진정 다른 시각들이 작용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e Fight Between Sanders And Clinton Isn't A Purity Test. It's A Genuine Divide Over Gender And Corporate Powe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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