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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돈을 남기는 호랑이 | 중국 호랑이 공원의 진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사실 호랑이가 남기는 것은 가죽만이 아니다. 중국 암시장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쏠쏠한 돈벌이가 된다. 중국에서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호랑이 가죽은 한 마리 당 2천만 원, 발톱은 하나에 백만 원에 거래된다. 뼈뿐 아니라, 눈, 수염, 발톱, 꼬리, 신장, 심줄, 생식기까지, 혈액을 맑게 해주고 몸의 수분을 보충하며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아주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 이형주
  • 입력 2016.02.05 05:11
  • 수정 2017.02.05 14:12

며칠 전, 중국 동북지방에서 야생 백두산호랑이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화제가 되었다. 하얀 설원에서 멸종위기동물 모니터링 카메라에 다가와 냄새를 맡고 유심히 살펴보는 호랑이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호랑이가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올해 초에는 일제 강점기 때의 조선호랑이 사냥을 주제로 한 영화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10만 마리에 이르던 호랑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무려 95퍼센트 이상이 감소해, 이제는 야생개체수가 3천 2백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환경파괴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무분별한 밀렵 때문이다.

그러나 멸종을 막는다는 핑계로, 농장 같은 시설에서 대량으로 번식되어 비좁은 콘크리트 우리에서 길러지는 '사육 호랑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눈썹부터 발톱까지, 약재로 쓰이는 호랑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사실 호랑이가 남기는 것은 가죽만이 아니다. 중국 암시장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쏠쏠한 돈벌이가 된다. 중국에서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호랑이 가죽은 한 마리 당 2천만 원, 발톱은 하나에 백만 원에 거래된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랑이 뼈가 관절염, 류머티즘과 발기부전에 특효라고 여겨져 왔다(우리나라에서 고양이를 달여 먹는 것이 관절염에 좋다는 설도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뼈뿐 아니라, 눈, 수염, 발톱, 꼬리, 신장, 심줄, 생식기까지, 혈액을 맑게 해주고 몸의 수분을 보충하며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아주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물론 의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호랑이 뼈로 담근 술은 성기능 강화에 좋다는 이유로 특히 인기가 높다. 와인처럼 오래 숙성된 술일수록 가격이 비싼데, 한 병에 10만 원대부터 비싼 제품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호랑이뼈로 만든 술 (c)Ryan Moehring / USFWS

호랑이가죽과 가죽으로 만든 인형 (c)Ryan Moehring / USFWS

1993년 중국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호랑이 뼈와 코뿔소 뿔의 거래를 법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야생호랑이의 멸종을 보호한다면서 호랑이를 사육하며 번식시키는 '호랑이 공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번식시켜서 개체 수를 늘리겠다는 의도였다. 이 시설들은 동물원처럼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지만 오히려 '호랑이 농장'에 가깝다. 현재 중국에서 운영되는 호랑이 사육시설은 2백 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곳도 많다. 사육되는 호랑이의 숫자는 그 동안 자그마치 5천여 마리로 늘어났다. 전세계의 야생호랑이 개체수보다도 많은 숫자다. 그러나 30년이 가깝도록 야생으로 돌아간 호랑이는 단 한 마리도 없다.

'종보전' 한다던 호랑이, 쓰이는 곳은 따로 있어

1993년 중국 산림청의 지원으로 계림에 문을 연 '웅호산장(Xiongshen Tiger and Bear Mountain Village)'은 중국 최대 규모의 호랑이 공원이다. 계림을 여행하는 우리나라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농장에는 호랑이 1천 5백 마리와 곰 5백 마리, 원숭이 수백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야생에 돌려보내겠다던 호랑이들은 갈비뼈가 다 드러난 채로 곰과 뒤섞여, 조련사의 채찍에 맞춰 활활 타는 링을 통과하고 공 위에서 네 발로 서는 묘기를 부린다. 관람객이 많을 경우 살아있는 소를 호랑이 우리에 넣어 호랑이가 잡아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태어나 한 번도 야생에서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는 호랑이들은 먹이 동물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죽이는 방법을 알 리가 없다. 결국에는 피가 낭자한 장면만 연출하다가 조련사가 소를 죽이게 된다.

입장료는 한 사람 당 40위안, 우리 돈으로 7천 원 정도다. 하루에 백 명도 안 되는 관람객에게 7천 원짜리 표를 팔기 위해 이 많은 맹수들을 사육하는 것은 누가 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다. 이런 공원에서는 물어보는 사람만 있으면 곧장 사무실로 안내한다.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병에 담긴 술은 살아있는 호랑이를 도살해 그 뼈로 만든 술이다. 표면적으로는 물론 자연사한 호랑이의 뼈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만 한 해에 20만 병이 넘는 술을 생산한다.

계림 웅호산장에서 발견된 호랑이 사체 (c)Belinda Wright/Wildlife Protection Society of India

중국 지하철역에 설치된 웅호산장의 광고. 호랑이뼈 술도 함께 광고하고 있다. (c)Save The Tiger Fund

중국 정부 '합법적으로 호랑이뼈 유통시키겠다'

최근에는 중국에 부자가 많아지면서, 그야말로 '호랑이 값이 금값'이다. 자신의 성공과 재력을 과시하려는 문화가 퍼지면서, 호랑이 술과 고기, 가죽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도 야생호랑이 밀렵이 기승을 부린다. 모든 호랑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 1에 속하는 동물로 국제 거래가 금지되어 있지만, 인도 호랑이는 중국 암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미얀마처럼 중국 국경과 인접한 국가에서 밀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귀한 물건이니만큼 뇌물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정부의 단속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2014년 중국 남부 뇌주(雷州)지방에서는 호랑이를 도살하는 장면을 관람한 후 고기를 먹는 '디너쇼'를 즐긴 사람들이 사진을 사회관계연락망(SNS)에 올리면서 경찰에 발각되기도 했다. 이 중에는 지자체 공무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보호하겠던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호랑이를 앞장서서 잡고 있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중국은 국제사회가 중국 전통의학에서 호랑이를 약재로 쓰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슬그머니 주장하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번식된 호랑이는 엄연히 중국의 '축산자원'이며, 야생이 아닌 사육된 호랑이 뼈의 거래를 합법화하면 야생호랑이의 밀렵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호랑이의 뼈 유통을 허가하면 오히려 불법밀렵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 뼈가 약효가 있다고 믿게 되어 호랑이로 만든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밀렵된 호랑이를 사는 것이 호랑이 한 마리를 사육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히는데다, 중국인들은 야생호랑이의 약효가 더 좋다고 믿는다. 환경보호단체들은 중국이 호랑이 농장을 전부 폐쇄하고 호랑이 뼈 뿐 아니라 모든 신체 부위의 중국 내 거래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심코 연 지갑이 호랑이의 멸종을 부른다.

중국사람들만 비판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여행사에서도 계림의 웅호산장, 하얼빈의 호랑이 공원 등 호랑이 공원을 방문하는 단체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꼭 호랑이 공원에 가지 않더라도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상품에 쇼핑지로 자주 등장하는 일명 '약방'에서는 각종 야생동물을 재료로 한 약이나 건강보조제를 판매한다.

'뭐 평생 한 번인데'라는 생각으로 주머니를 여는 행동이 야생호랑이의 씨를 말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호랑이술, 곰쓸개즙, 코끼리 상아처럼 국제거래가 금지된 동물의 신체 일부로 만든 제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은 관세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사라져가는 호랑이를 지키는 일은 일부 야생동물보호단체나 몇몇 국가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호랑이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나 존재하던 동물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전세계인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비록 남한에서는 사라졌지만, 아직 북한과 중국 접경에는 조선호랑이가 숨 쉬고 있다. 이들을 지키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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