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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여, 당신은 무엇을 위해 출사를 결심하는가

역대 정부에서 수많은 교수들이 정치의 계절에 국회로, 정부로 몸을 옮겼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은 이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자리를 탐해 냉큼 자리를 옮기면 필시 자질논쟁에 휩싸이는 법이다. 학자는 자존심으로 사는 것인데 그런 논쟁대상이 된 사람들은 사실 그것마저 없는 이들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염치없는 사람들이 공직에 가서 권력의 맛을 본 다음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또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 박찬운
  • 입력 2016.02.03 11:24
  • 수정 2017.02.03 14:12
ⓒgettyimagesbank

동양 고전 중에 <주역>의 핵심사상은 관계론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지혜를 가르친다. 관계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리에 관한 것인데, 길흉화복의 근원이 잘못된 자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제 자리를 찾는 것을 득위(得位)라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실위(失位)라 한다. 득위는 만사형통의 길이지만 실위는 만사불행의 원인이다.

한 개인의 자리가 잘못될 때 그 한 몸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불행해진다. 인간 욕망 중 명예욕은 물욕과 함께 떨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자리와 관련될 때,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주역>의 이 가르침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이 되었다. 금배지를 달아보겠다고 각 정당의 공천심사에 사활을 거는 이들이 많아졌다. 정치인이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것을 힐난할 필요는 없다. 인재를 공천하여 이 나라의 선량을 만드는 것은 국민된 입장에서도 크나 큰 관심사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오로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만 탐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가 아님에도 그것을 모르고 권력욕과 명예욕에 불타 그저 되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 이름하여, 폴리페서에 대하여 한 마디 해야겠다. 나 자신이 그런 교수가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교수들 중에는 교수라는 직업을 마치 공직진출의 예비군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사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불러만 주면 국회의원이든, 장차관이든, 청와대 비서관이든,공기업 사장이든 무엇이든지 한 번 해보겠다고 하는 자세는 만용 중의 만용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대학교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성인을 대표한다는 이들에게서 이런 일이 흔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제갈량이 출사를 함에 있어 유비가 초막을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지존한 자가 세상의 일을 함께 도모하자고 청을 해도 자신이 과연 세상에 나가도 될 지를 자문하는 제갈량의 숙고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는 교수가 국회의원, 장차관, 공기업의 사장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할 수 있다. 퇴계도, 율곡도 학문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과거를 보았고 관리가 되었지 않았는가. 하지만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 없이 그저 자리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정치에, 공직에 뜻을 둔 교수들이라면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라. 무엇을 위해 상아탑을 나서 정치의 문, 공직의 문을 두드리는지, 내가 나가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그동안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 왔는지.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자리만 찾아간 교수들의 말로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역대 정부에서 수많은 교수들이 정치의 계절에 국회로, 정부로 몸을 옮겼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은 이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자리를 탐해 냉큼 자리를 옮기면 필시 자질논쟁에 휩싸이는 법이다. 학자는 자존심으로 사는 것인데 그런 논쟁대상이 된 사람들은 사실 그것마저 없는 이들이다.

특별히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능력은 고사하고 학자적 양심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교수들이 유별나게 많다. 달콤한 권력의 향수에 도취되어 가서는 안 될 곳에 가서 '무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그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원성을 듣고 있는 예가 얼마나 많은가. 어떤 이는 공금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알고 가족과 해외여행을 했다니 생각 같아서는 저자거리에서 주리를 틀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더 큰 문제는 이 염치없는 사람들이 공직에 가서 권력의 맛을 본 다음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또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국민의 공복으로서 봉사한 다음 학교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학문이나 교육에 뜻이 있어 대학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고 또 다른 출세를 위해 잠시 교수라는 직함이 필요할 뿐이다.

보도를 보니 최근 어느 전직 장관은 다가오는 총선에 나가기 위해 장관직을 내놓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음에도, 또 한편으론, 대학에 복직신청을 했다고 한다. 총선에서 떨어지면 다시 교수로 복귀할 수 있도록 안전판을 만든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폴리페서 중에서도 역대급 인사다.

정치의 계절, 시인 신동엽은 이렇게 외치지 않았는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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