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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악취미 | 일라이 로스의 영화들

세상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고 좋은 사람이야, 라는 믿음도 허망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 같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일라이 로스의 영화가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의 악취미는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들의 눈에 좋은 것, 절대 욕먹거나 비난 받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재면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심심하고 잠시만 좋을 뿐이다. 의도적인 악취미도 나름 좋지 않은가. 직접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피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피하고 외면하고픈 것들을 일일이 끌어내서 전시하는 위악은, 불편하지만 인상적이다. 가끔, 아주 가끔 위악이 필요한 것은 그런 이유다.

  • 김봉석
  • 입력 2016.02.02 06:37
  • 수정 2017.02.02 14:12

지난 10월 말에 개봉한 <노크 노크>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 일라이 로스 감독이라서 나름 기대했다. 키아누 리브스는 제작도 참여했다. 행복한 가장이며 건축가인 에반이, 길을 잃고 비를 흠뻑 맞은 두 여성에게 호의를 베푼다. 아내와 아이들이 주말여행을 떠난 집에 잠시 들여놓고 옷을 말리게 한 후 택시도 불러준다. 그런데 유혹한다. 몇 번이나 피해도, 끈질기게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그녀들에게 넘어간다. 대가는 악몽이다. 에반의 일상, 소중한 모든 것이 파괴된다. <노크 노크>는 다소 불쾌하다. 에반은 정말,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을 넘었다. 누가 보기에도 에반은 착한 남자이고, 성실한 가장이다. 그런데도 너무 가혹하게 응징을 당한다. 미이케 다카시가 <오디션>에 대해 이야기하듯,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벽돌에 머리를 맞는 격이다.

<노크 노크>에 대한 관객의 평은 거의 최악이었다. 일단 동의한다. <노크 노크>는 개연성이 거의 없고, 키아누의 연기도 붕 떠 있다. 정형화된 연기는 잘 하지만, 미묘한 감정과 분노를 보여줘야 하는 연기는 늘 그저 그랬다. 하지만 나는 <노크 노크>를 보며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점점 흥미로워졌다. 무고한 인물을 괴롭히는 여성들. 약자인 여성이 중산층 남성을 공격하는 것은 좋지만 그녀들은 너무나 집요하고 괴이했다. 사이코패스나 정신병자라고 여겨지면 이해도 가능하겠지만 애매했다. 그래서 <노크 노크>의 누군가에게 몰입하거나 공감하려는 시도를 멈췄다. 그 순간 흥미로웠다. 왜 저렇게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일까. 악착같이 현존하는 질서 혹은 행복에 딴지를 거는 것일까.

<노크 노크>를 본 후에, 일라이 로스가 2013년에 연출한 <그린 인페르노>를 토렌트로 구해 봤다. 한때 수입을 했다는 말이 있었지만 결국은 개봉을 하지 못했다. <그린 인페르노>의 원작인 <카니발 홀로코스트>(1980)는 아마존 정글의 원주민을 연구하기 위해 들어간 인류학 탐험대가 그들에게 학살당하고, 먹힌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다정하게 받아주던 원주민이 그들을 잔인하게 사냥하고 인육을 먹는 장면을 다큐처럼 보여주는 <카니발 홀로코스트>는 컬트영화가 되었다. <그린 인페르노>는 인류학자를 환경운동가로 바꾼다.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는 기업에 반대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나선다. 밀림을 파괴하는 현장에 카메라를 가져가서 유튜브로 공개한다.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가 추락을 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원주민에게 끌려간다. 그리고 먹힌다.

식인종에게 백인들이 먹히는 내용이니 잔인하고 징그러운 장면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라이 로스는 대놓고 전시를 한다. 일행 중 한 명을 죽이고 먹는 과정을 아주 자세하고 길게 보여준다. 눈알을 파내고, 팔 다리를 자르고, 잘린 몸통에 뭔가를 바르고 굽는 장면 등등 너무나 세세하다. 관객에게 과시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장면을 태연하게 볼 수 있어? 이런 장면이 역겹거나 짜증나? 그러니까, 악취미다.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너희들은 세련되고 우아하고 정의로운 것을 좋아하지. 나는 이런 게 좋아, 라며 조잡하고 천박하고 편향적인 것들을 일부러 늘어놓는 것.

미국 대학생이 동구 여행을 갔다가, 부자들이 고문과 살인을 은밀하게 행하는 비밀 클럽에 붙잡히는 영화 <호스텔>도 그런 혐의가 있었다. 고어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쏘우> 이후 상업영화에서도 흔한 전략이지만, 일라이 로스는 무척이나 위악적이었다. <호스텔>에서 고문 받은 일본 여대생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튀어나온 눈알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뭐랄까, 기이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그라인드 하우스>에 삽입된 가짜 영화 예고편에서, 치어리더 복장을 입은 여성이 트램폴린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앉은 자세로 그녀가 내려올 때, 아래에는 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일라이 로스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처럼 B급 영화를 종횡무진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린 인페르노>의 악인은, 식인종이 아니라 환경운동가다.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정교한 이론과 준수한 용모를 가진 정의로운 인물. 하지만 그는 기업만이 아니라 범죄조직의 돈을 받고, 작전이 성공해봐야 경쟁 기업이 가로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명망과 돈이 제일 중요하다. 일라이 로스는 세상의 모든 질서를 혐오한다. 사람들이 신뢰하는 모든 가치를 찢어발긴다. <그린 인페르노>는 그래서 위악적이고, 그의 위악이 누구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노크 노크>가 졸작일지라도 일라이 로스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키아누 리브스가 <노크 노크>를 제작한 것도 한편 이해가 간다. 키아누 리브스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에 출연한 경우가 많지 않고, 액션영화일 때도 독특한 작품들이 많았다. 가끔은 정말 이상한 영화들도 있다. 최근작으로는 <47 로닌>과 연출까지 맡은 <맨 오브 타이치> 같은 영화들. 동양사상에 심취해 있고, 개인적인 불행을 많이 겪으면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하지 않을 때 거처하는 집도 따로 없다. 그의 생각은 세상의 통념과 조금 어긋나 있다. <노크 노크>를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세상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고 좋은 사람이야, 라는 믿음도 허망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 같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일라이 로스의 영화가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의 악취미는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들의 눈에 좋은 것, 절대 욕먹거나 비난 받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재면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심심하고 잠시만 좋을 뿐이다. 의도적인 악취미도 나름 좋지 않은가. 직접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피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피하고 외면하고픈 것들을 일일이 끌어내서 전시하는 위악은, 불편하지만 인상적이다. 가끔, 아주 가끔 위악이 필요한 것은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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