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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경제민주화 조항'은 김종인 작품이 맞다? 아니다?

  • 허완
  • 입력 2016.01.31 13:33
  • 수정 2016.01.31 13:44
ⓒ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해 마치 자신이 저작권자처럼 얘기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

"내가 야당 비대위원장으로 온 데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일요일인 31일, 국회 안팎에서는 '경제민주화 저작권'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대상이 된 건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알려진 헌법 제119조 2항이다. 당시 김종인 위원장은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번 논쟁의 발단은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의 주장이 담긴 연합뉴스의 이 기사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이날 연합뉴스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김 고문은 국보위 구성 당시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기조실장을 맡고 있었다.

김 고문은 김 위원장이 지난 19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를 헌법에 명시한 주역으로 알려진데 대해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해 마치 자신이 저작권자처럼 얘기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면서 "당시 민정당에서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남재희 정책위의장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고문은 "당시 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헌법 개정 논의 과정도 쭉 지켜봤다"면서 "당시 헌법을 고치면서 잘 하려고(고치려고) 하니까 남 정책위의장이 경제민주화라는 문구를 넣자고 했다. 야당도 환영했다"고 전했다.

김 고문은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경제민주화를 헌법에 명시하도록 주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본인이 혼자서 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혼자서 그런 것을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연합뉴스 1월31일)

김종인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연합뉴스는 김 고문이 언급한 남재희 전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증언'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그 부분은 남 전 의장에게 직접 얘기를 들어보면 알 것 아니냐"며 "남 전 의장은 경제민주화 조항이 '김종인 조항'이라고 여러 차례 기고문까지 쓴 적이 있다. 더이상 구구절절 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김성수 대변인이 전했다.

남재희 전 의장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고문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도 개헌특위에 있었지만 그런(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자는) 얘기를 전혀 한 적이 없다"며 "김 고문이 착각을 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민주화가 담긴) 헌법 119조 2항은 김 위원장이 마지막 손질까지 해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별도 보고해 '오케이'까지 받았다고 들었다"며 "20여년 전에 119조 2항이 '김종인 조항'이라고 맨 먼저 언론에 기고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에 심취했다"며 "'사회적'이라는 말은 국가의 조정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라는 발상을 한 것같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1월31일)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10일, 당시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정책공약집을 발표하는 모습. ⓒ한겨레

사실 '경제민주화 저작권' 논쟁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김종인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에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합류했을 때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이석현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주도했다는 건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야당에서 만든 내용을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것.

헌법 개정 당시 야당 간사였던 박찬종 전 의원도 비슷한 증언을 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언급한 것.

비슷한 시기,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김종인 위원장의 노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김종인 위원장의 노력은 다 차려진 밥상을 방안에 들고 온 정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신동아 2012년 9월호에 실린 이 기사에는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삽입된 전후 과정이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도 언급할 만큼 이미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회 본회의 회의록에는 채문식 개헌특위 위원장이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중략)

채 위원장은 또 “우리나라 경제질서에 관한 원칙 규정인 제 119조에서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토록 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정(2항)을 보완하였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우리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노력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복지의 최대과제라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의 실시를 신설 명문화했다”고도 덧붙였다. (신동아 2012년 9월호)

2013년 6월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공약 파기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읽고 있는 모습. ⓒ한겨레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어디까지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A가 B를 주도했다'는 건 해석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 특히 이번 논쟁처럼 비교적 오랜 시간이 지난 경우는 더 그렇다.

또 김 위원장이 어느 수준까지의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려는 것인지, 그 정도로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기본 철학은 비교적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3년 1월17일, 김 위원장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는 그런 그의 철학이 잘 나타난다.

그는 독일 유학 시절 자신이 배웠던 내용을 소개하며 "성장과 안정의 조화, 질서와 자유를 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시장경제이고 경제민주화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이 정리한 요약본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강자가 하고 싶은대로 두면 결국 소득재분배가 악화되고 경제력이 독점하면서 시장경제 자체도 깨져버려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흔히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자본주의가 야수 그 자체라면 시장경제는 룰을 만들어 야수적 속성을 지녔지만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개처럼 길들이는 것이죠. 성장과 안정의 조화, 질서와 자유를 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시장경제이고 경제민주화인 것입니다.

(중략)

한국경제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어 활력도 없다는데 우리도 점점 닮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미래가 안 보이니 애도 안 낳고, 출산율도 낮아졌습니다. 1.1의 출산율로는 인구구조가 급변해 역삼각형 구조가 된다면 지금까지의 제도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지금 증권사고, 해외 부동산 사 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미래세대 자체가 줄어들면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향신문 2013년 1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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