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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5년, 이집트는 낙원 이후의 지옥이다

  • Walid Akef
  • 입력 2016.01.31 06:19
  • 수정 2017.01.31 14:12
ⓒASSOCIATED PRESS

카이로 - 내가 무관심해졌다거나 흥미를 잃었다, 실망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른바 '아랍의 봄'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자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침묵을 지켜야만,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며 내가 참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야만 편안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마음 속으로 회상해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5년 전, 정확히 말해 2011년 1월 28일,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바뀌었다. 마치 전구가 켜진 것 같았다. 나는 어떤 현실을 목격했고, 그 뒤로 내 삶 전체가 변했다. 당시 나는 23세였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뭔가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노숙자와 슬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모든 게 다 하락하고 후퇴하는 것 같았다. 끔찍하게 올라가던 물가만 제외하고 말이다. 이집트인들은 속상해 하며 어떤 불꽃, 혹은 움직이기 적당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1년 1월 25일 밤, 나는 침실에서 갑자기 가족들이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내 가족은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자들을 마구 때린 것에 반응하고 있었다. 가족들을 구금시키고 아주 형편없이 처우하고 있었다. 나는 꼼짝않고 서서 분노에 가득차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오직 자유뿐이다. 그들은 법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나는 그 날 밤 내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둠 밖의 삶을 생각했다. 당시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겁주려는 루머가 정말 많이 퍼져 있었다. 나는 전국 방송에서 나오는 세심하게 가다듬은 말들을 들으며 욕지기를 느꼈다. 그들은 정권과 정권을 이끄는 파라오 앞에 납작 엎드려 시위자들을 모욕하고 있었다.

25일에서 불과 사흘 뒤의 '주맛 알-가답', 즉 '분노의 금요일'에 젊은이들이 참가하게 된 동기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진 정보였다. 하나는 아직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시위자들에게 물을 뿌리는 장갑차 앞에 용감하게 선 멋진 대머리 남성의 영상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시겠어요?! 이 사람은 공포의 벽을 무너뜨렸어요." 나는 그 사람처럼 용감해지는 것을 꿈꾸었다.

그 희망찼던 금요일, 나는 진보적인 이맘이 있는 좀 먼 모스크에 가서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기도를 드렸다. 진보적이라는 말은 그가 정권과 손을 잡은 예속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나는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주위에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제 때가 됐어요, 엄마." 기도를 마치고 보니 내가 기도했던 알-하람 거리가 시작되는 곳에 시위대가 엄청나게 모여 있었다. 수천 명이 함께 빵, 자유, 인간의 존엄을 외쳤다. 정말 놀라운,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평생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시위대에 합류했다.

수가 점점 늘어 지평선까지 닿는 것 같았다. 정부가 인터넷과 소통 수단을 끊었기 때문에 그 날 매체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들과 완전히 격리되었다. 우리는 계속 걸어서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했다. 경찰의 급습을 세 번 받았다. 처음 공격은 굉장히 영리했다. 경찰의 대장이 싸우지 않고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는 이렇게 분노한,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자기와 자기 부하들의 머리라도 떼어 낼 준비가 된 사람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에선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은 우리에게 최루 가스 수류탄을 계속 던졌고, 우리는 돌을 던졌다. 팔레스타인의 우리 형제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싸우는 옛 영상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며 기자 지사의 아름다운 집까지 갔다. 거기서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큰 파란 트럭 안에 군인 20명 정도가 갇혀, 울면서 우리의 용서를 빌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 위에 뛰어 올라 군인들을 엄청나게 겁주고 있었다. 나는 군인들에게 가서 부드럽게 "나오지 말아요, 나오면 사람들이 죽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군인 하나는 헐떡이며 "우린 나가서 당신들과 합류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제발 그러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시위대에는 글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겪은 부당함과 압제에 복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혁명적인 동시에 이성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바꾸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가족들과 떨어진 채 몇 시간 동안 돈 한 푼 없이 걸었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정말 힘들었다. 끔찍한 최루 가스를 계속 들이 마신 뒤의 그 느낌이 기억난다. 나는 카이로 동부에서 온 다른 시위자들과 오페라 하우스 쪽에서 합류해, 가장 폭력적이었던 충돌 중 하나를 목격했다. 우리 목적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우리는 무수한 최루 가스 수류탄, 산탄총 세례를 받았다. 나는 맨 앞 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머리에 총을 맞는 시위자를 직접 목격했다. 그는 "난 죽을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 넌 안 죽어, 두려워하지 마!"라고 계속 말했다. 내 오른쪽에는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여자가 있었다. 내 다리 밑에서 수류탄이 터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토할 것 같았고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응급 조치를 해준 여자들 덕택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속으로 이집트에는 정말 똑똑하고 도움을 주는 훌륭한 여자들이 있구나,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과는 반대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내게 진정하고 좀 쉬라고 했다. 나는 거부하고 우리가 승리해 미단 알-타흐리르에 들어갈 때까지 싸웠다.

타흐리르 광장의 왈리드

동지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밤이었다. 그때까지는 정말 조용했다. 나는 태풍 전에는 정말 이렇게 조용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경찰 트럭 몇 대가 멀리서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트럭은 내 바로 옆에 있던 시위자를 치었다. 시위자들이 이집트에서 가장 부패한 집권 세력 중 하나인 무바라크의 당 알-히즈브 알-와타니 본부를 약탈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신의 도움으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나, 그가 준 잔돈으로 비스킷을 하나 샀다. 나는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려면 한참이나 걸어가야 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트럭들이 불타고, 경찰들이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우습게도 집에 가는 버스에서 나는 총과 수류탄을 든 남자들을 보았다. 그들에겐 트로피 같은 것이었다.

그 뒤 한 동안 나는 타흐리르 광장에 자주 갔다. 나는 매일 내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건 괜찮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다. 나는 원칙을 위해 싸우고, 내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죽어서 '이집트의 정원을 빛낸 장미'라는 호칭을 얻은 젊은 남녀들의 사진을 침실 벽에 붙여 두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사임 소식에 환호하는 이집트인들.

나는 다른 모든 이집트인들과 같은 꿈을 가졌다. 무바라크가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새로운 이집트, 다른 미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꿈이 살해 당하던 2013년 7월 3일도 직접 목격했다. 나는 쿠데타가 부패한 자들에게 다시 권력을 돌려주는 걸 보았다.

지금 상황은 상당히 복잡하다. 우리는 이집트 사상 최악의 순간을 살고 있다. 낙원 이후의 지옥이다. 현실은 이토록 복잡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5 Years After the Revolution, Egypt's a Hell After a Paradis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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