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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식용유 디젤 트럭' 타고 자연과 평화를 노래하는 재일교포 피카레씨 이야기

"먹을 것은 직접 농사짓고 난방도 로켓스토브 같은 적정기술을 활용해 해결해요. 통신비나 차량 유지비도 최소한으로만 써요. 생활하기 위해 많이 일하지 않아도 되니 스스로 돌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요." 지금처럼 풍요롭게 살게 된 것이 스스로 놀라워 그는 청년들에게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가라고 말해 주곤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식용유 디젤 트럭 타고 자연과 평화를 노래하는 재일교포 피카레 씨

노래를 부르던 피카레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닿았다가 퍼지는 곳,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 나도 눈을 옮겼다. 회색 천장이 있을 뿐인 그곳을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나 목소리는 지하 공연장을 뚫고 나가 그 너머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지구의 노래'라는 제목 따라 그의 목소리는 지금 서울 홍대 앞 카페에서 시작돼 중국과 인도를 건너 아프리카를 지나 대서양 어딘가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일교포라는 국가의 틀을 넘어 스스로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는 피카레는 지난 1월 한국에서 유기농 투어를 했다.

글\사진 김세진(살림이야기 편집부)

한때 도시에서 시들어가던 청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때문에 변하다

앞자리 관객에게 "목소리가 크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라고 말한 이답게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집 근처 계곡에서 크게 노래를 부르곤 한다더니 과연 음량이 풍성했다. 자연에게 사사해서일까. 키 큰 그가 바나나잎으로 만든 밀짚모자를 쓰고 허리를 뒤로 꺾어 하늘을 보며 노래하는 모습도 왠지 자기 숨결을 힘차게 내뿜는 나무와 닮았다.

그는 한때 도시에서 시들어가던 나무였다. 피카레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전까지는 도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고 도쿄 근처 가마쿠라에서 의류 관련 일을 하며 주말에는 춤을 추러 다니는 도시 청년이었다.

"문득 사방이 콘크리트로 덮인 곳에 갇혀 사는 게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니 미래가 안 보이고 절망스럽더라고요. 일본 정부에 대항해 집회도 나갔지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자괴감이 들었어요. 언젠가부터 현실보다 꿈속이 더 좋아서 계속 잠만 잤어요. 자다가 밥 먹고 다시 자고 밥이 떨어지면 수돗물을 마시고 또 자고. 그러던 어느 날 심장 박동이 빨라지더라고요. 덜컹,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책가방에 옷가지 몇 개를 구겨 넣고 나와 여행을 시작했어요."

유랑을 하며 자연 속에서 걷고 또 걸으면서 피카레는 몸과 마음이 단단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골인 아소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는 점차 자연 속에서 사는 법과 돈을 쓰지 않고 풍성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먹을 것은 직접 농사짓고 난방도 로켓스토브 같은 적정기술을 활용해 해결해요. 통신비나 차량 유지비도 최소한으로만 써요. 생활하기 위해 많이 일하지 않아도 되니 스스로 돌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요."

지금처럼 풍요롭게 살게 된 것이 스스로 놀라워 그는 청년들에게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가라고 말해 주곤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귀촌에 실패하는데 아마 살아남는 기술을 몰라서인 것 같아요. 사람끼리 관계를 맺는 법, 예를 들어 비폭력대화 등을 배우면 좋겠어요. 또 태양열을 이용하는 방법 등 적정기술을 미리 배워 두면 상당히 도움이 되어요."

피카레는 블로그를 통해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이시오카 케이조, 와타나베 야키히고 선생 등을 만났다. 그들에게 환경을 덜 파괴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도움을 받아 차를 개조해 지난해 4월부터 폐식용유로 굴러가는 트럭을 타고 있다. 피카레는 트럭 뒤꽁무니에 앉아 밥을 먹어도 괜찮을 만큼 배기가스가 깨끗하다며 가는 곳마다 자랑한다.

"시골생활에서 차가 꼭 필요한데 저는 지출을 줄여야 하잖아요. 폐식용유 디젤 트럭은 연비가 경유와 같고 배기가스를 적게 내요. 폐식용유를 넣으면 차가 더 부드럽게 움직이고 우선 냄새가 좋아요. 그런데 워낙 오래된 차를 고쳐서인지 종종 고장이 나요. 직접 고치면서 자동차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죠. 아직 실험 단계라 우선, 환경을 생각하는 이에게 추천해요."

연료는 주로 식당에서 구한다. 우동을 맛있게 먹고 식당 주인에게 "맛있다"고 칭찬하며 말을 건 다음,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기름을 줄 수 있는지 묻는데 보통 흔쾌히 준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깨끗하고 좋은 기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고기 튀긴 기름은 색도 시꺼멓고 질이 안 좋아 노즐에 문제를 일으킬까 봐 쓰지 않는다. 그렇게 몇 군데 단골 주유 식당이 생겼다. 피카레를 아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오면서 기름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숲에서 마음껏 노래 부르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유기농 투어를 하며 서울에 머물 때 마침 수요일을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협상을 위한 한일 외교장단 회담에 반대하며 일본대사관 앞을 찾은 많은 사람들 틈새에 서서 피카레도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동아시아가 함께 회복할 평화

피카레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려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또 도시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소개하는 일도 즐긴다. 일본에서 사람들을 찾아가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가 한국에도 왔다. 지난 1월 6일부터 열흘 동안 한국의 순천, 목포, 장흥, 장수, 서울, 부산 등을 다니며 공연했다.

"전남 장흥 어느 폐석산에서 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이 돌을 캐고 자연을 파괴한 곳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심었어요. 내 노래가 깎인 바위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데 자연과 함께 노래하는 것만 같았어요. 눈물이 났어요."

서울에서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협상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할머니들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계속 아파하며 싸울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속상해 했지만 그 역시 역사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할머니가 일본에 건너간 뒤 가족들은 귀화하지 않고 살고 있다.

"제가 재일교포로 사는 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에요. 국적이나 정체성도 목소리처럼 주어진 거죠. 나는 다만 지금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에요. 바로 평화를 기원하는 일이죠. 특히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요. 현 아베정권은 '전쟁을 일으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무가내이고, 일본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지난해 가을 피카레는 '동아시아지구시민촌회의' 사람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난징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 군인들이 걸었던 길이다. 중국에서 중일전쟁은 한국 '위안부' 문제처럼 예민한 문제이다. 그는 걸으면서 역사를 몸에 새겼고,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을 만났다. 유기농부 라오쟈 씨는 집을 개방해 순례단을 맞이했고, 다른 지역으로 걷는 순례단들이 힘들까 봐 그들의 짐을 자기 차에 싣고 다음 숙소에 옮겨 주고, 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순례단들이 있는 곳까지 와서 그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같이 걷다가 순례단이 숙소에 도착하면 차로 자전거를 가지러 가는 정성을 보였다. 평화를 함께 만드는 데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피카레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함께하는 생태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각 나라의 예민한 사안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섬에서 각 나라의 전통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 함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문화를 몸에 익혀 각 나라에서 그것을 퍼뜨리고 미래를 만들면 좋겠다. 일본에서는 자연분만센터를 만들고 싶다.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태어나 따스한 분위기에서 세상과 만나게 하고 싶다. 또 의료 권력에서 독립해 스스로 몸을 돌보는 법을 함께 익히고 싶다.

"미래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할 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안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래에 희망을 보았어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미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나는 이제 적어도 아이 다섯 명은 낳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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