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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관성' 세대론

청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에는 감수해야 할 현실이 당장 내일의 불똥이다. 정말 다들 포기하면서도 행복할까? 아니 포기한 것은 맞나? 달관이라고? 사실 우리는 '달리던 관성'으로 가고 있는 세대다. 일단 대학까지는 달렸으니까, 일단 취업 준비는 달리고 있으니까. 옆에 애들 다 뛰고 있으니까. 그저 주어진 경쟁에서 아끼고 조르고 달려서 나부터 살고봐야지. 기성세대가 뭐라 말하든 말든, "어차피 헬조선" 자조나 한 번 날려주고 취업 스터디하러 가야지.

  • 이진호
  • 입력 2016.01.27 06:03
  • 수정 2017.01.27 14:12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 온도

현 청년세대가 '헬조선'이라며 열심히 '수저'를 나눠댔지만, 다들 숟가락이 녹아 없어질 것이라곤 생각치 않았다. 속에서 터지는 지옥불화통이 몇 기통인지는 각자 달랐겠지만, 진정한 불똥은 누구에게나 당장의 내일로 나아가야 할 발등에 떨어졌다. '헬조선'을 향한 기성세대의 관심은 발화자가 '청년세대'였기에 뜨거워졌지만, 그 '뜨거움'은 '몰이해'와 비례했다. '헬조선' 담론이 일단 '냉소'이고 '자조'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입에 흔히 오르내릴 만큼 단물이 다 빠져버린 '헬조선'은 처음부터 각자의 마음 속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마음 밖에 펼쳐져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노력인 현실인데, 기성세대가 "너네는 모른다"는 식으로 한숨까지 섞어 강요하는 '노오력'은 누구에게나 불편할 수밖에 없다. 불편한 현실이 도처에 널렸다는 것쯤은 모든 청년들이 알고 있다. 현 청년세대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편한 현실의 불똥을 가장 본능적으로 느끼는 세대일 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첫 경제교양서로 들쳐본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빠되기를 포기한다. IMF의 여파 속에서 자라며 장래희망이 부자였던 청년세대는 현재 대략 절반이 취준생이다.

한 동네에서 담벼락을 넘어선 가족애가 펼쳐지고, 반 지하에서 사법고시 합격생이 나오며, 외부모 가정에서 의사가 탄생하는 '1988년'이 연일 TV에서 '응답'하고 있다. 겪어보지 못한 80년대의 훈훈함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현 세대 청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의 TV가 꺼진 이후,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인식될 정보는 응팔에 나온 누군가가 현재 얼마나 잘나가며, 몇 개의 CF로 얼마를 벌었느냐일 것이다. 1988은 주말 저녁 TV에서만 아름답게 응답하지만, 2016의 비루한 현실은 드럽고 지겹게 매일같이 응답하니까.

모두가 중산층을 꿈꾸던 사회는 성장을 동력으로 씨앗을 뿌렸다. 계층이동의 씨앗, 부동산의 씨앗, 교육의 씨앗, 말 그대로 양육의 씨앗까지. 그리고 우리는 현재 저성장 사회를 살아간다. 성장을 불변의 전제로 하는 모든 계산값은 '오류'이자 '하류'를 자처할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나 기업, 재벌 대기업과 국가가 ATM이라 굳게 믿는 좌파 어르신들의 계산방식은 심시티에서도 치트키의 한 종류일 것이다. 노오력하면 불가능할 게 없다는 우파 어르신들의 치트키도 마찬가지다. "Show me the money", "Power overwhelming"같은 소리들이 반복되니 자꾸만 청년들이 씁쓸하게 웃는 것이다.

"대학 나오면 뭐하냐 '얼금수저'로 태어나 연예인하는 게 짱이지."

"무슨 소리냐 연습생 오디션에도 수만명이 몰린다더라."

"이런 X발 헬조선."

그래봤자 다음날 아침이면 다들 바쁘게 학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취업 스터디를 가거나 알바를 간다.

88만원짜리, 포기를 자처하는, 달관세대?

현 청년세대를 가르고 규정해 정의하려는 시도를 '88만원세대론'부터 접했다.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내집마련, 인간관계, 꿈과 희망까지 포기했다는 5포, 7포세대가 이어졌다. 주류 매체는 한발 더 나아가 현 청년세대를 '달관 세대'라 명했다. 저가 옷을 입고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행복을 느낀다는 세대분석이었다. 진짜 청년세대 중 누군가는 포기와 행복을 결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달관'이라는 분석이 창출해낸 행복은 기성 매체의 기자에게 돌아갈 월급봉투에서만 확실하다.

돌이켜보면 창업으로 세대의 '창조'를 몰아갔던 '실크세대론'도 기성세대의 망작이었다. 많은 청년들에게 '대졸'이라는 '한국사회 양반딱지'가 달렸다 한들, 스마트폰이 쥐어지고 영어점수가 추가되었다 한들,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이려나. 확실한 것은, 하나같이 대학 나와 고스펙이라지만, IMF에 종속된 세대인 현 청년세대는 '돈'과 '안정추구'를 갈망한다는 사실이다. 돈 안 되는 달관, 안정 없는 창조에 청년들이 조용히 인정하는듯 보이는 이유는 자칫하다 돈 못 벌까봐, 취직 못할까봐, 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입사지원서에 SNS 계정을 써내라는 기업들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청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에는 감수해야 할 현실이 당장 내일의 불똥이다. 정말 다들 포기하면서도 행복할까? 아니 포기한 것은 맞나? 달관이라고? 사실 우리는 '달리던 관성'으로 가고 있는 세대다. 일단 대학까지는 달렸으니까, 일단 취업 준비는 달리고 있으니까. 옆에 애들 다 뛰고 있으니까. 그저 주어진 경쟁에서 아끼고 조르고 달려서 나부터 살고봐야지. 기성세대가 뭐라 말하든 말든, "어차피 헬조선" 자조나 한 번 날려주고 취업 스터디하러 가야지.

정해진 트랙에서 돈 내며 달린 청년들.

청년들은 조용히 달리고, 기성세대에 의해 시끄럽게 딱지가 달리며, 세대를 막론하고 시끄러울 여유는 인터넷에 타자 치고 있을 환경이 갖춰진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헬조선이니 금수저니 흙수저니. 정작 하루 벌어 내일 먹고살기 바쁘거나, 노량진 구석에 처박힌 아이들은 뭔 소린지 알지도 못한다.

"결국 대기업만 가려고 안달이구만." "요즘 애들은 욕심들이 지나쳐." "어려운 줄 몰라서."

"눈을 낮춰라. 중소기업들은 취업난이 아니라 채용난이다." "노력을 해라."

"헬조선 못 살겠다." "너네만 못살겠냐, 우리도 다 못 살겠다." "뭔 소리냐 나는 잘만 산다."

"일부만 누리는 고용 환경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이 필요하다."

"아니다 노동개악 아웃. 재벌과 대기업을 깨부셔서 모두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얘기냐 성장이 있어야 분배도 가능하다."

이곳 저곳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이야기들. 하지만 누가 떠들건 말건, 이 순간에도 다수의 청년들은 달린다.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남아야 하니까 모두가 본능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능력중심'이 생략된 한국 사회, 대기업 정규직 - 대기업 비정규직 - 중소기업 정규직 -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일자리 계급사회에서 첫 직장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조금이라도 먼저 발을 얹어야 생존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창조'며 '창의', '혁신'과 '개혁'이 공허하게 외쳐지지만 어딜가도 군대식, 전근대적 전체주의 기업문화는 매 한가지다. 학벌, 학점, 외모, 스펙,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기업의 홍보용 광고문구일 뿐, '줄 세워져 앞에 선 사람', '먼저 들어간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모르는 청년들은 거의 없다. 만약에 있다면 참으로 시대를 초월한 청순함이라 하겠다. 결정적으로, 이제 와서 달리기를 멈추기에는 이미 들인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일본의 '사토리'세대에 견준 한국식 '달관'세대 분석이 흥했을 때, 나는 주변인들에게 자주 말했다. 한국 애들은 '달관'할 수가 없다. '달리던 관성' 때문에 계속 꼴아박았는데 투자한 비용은 건져야지. 그거 다 돈 내서 달린 거라서 포기도 힘들고, 본전치기 못하면 노답이라고. 한국 취업 시장은 사교육 블랙홀, 취준 기본메뉴 '등골 반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국 취업 준비생들의 사회 진출 과정은 전적으로 비용이자 부담이고, 그 구조 자체가 무한비용 스펙구매다. 취준생들은 1인당 평균 5.2개의 스펙을 준비하며 사교육에 사용하는 돈은 평균 130만원을 넘어섰다. 영어교육은 말할 필요도 없고, 중국어 교육시장도 6천억원 규모로 급성장했고, 최근에는 강남과 종로 일대에 '취업컨설팅'이라는 수백만원대 취업 전문 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이게 청년들이 바보라서, 대기업에 목 매기에 그런 것인가? 그 이외의 생존법이 계산이 안 되니까 그런 것이다. 경기장은 사교육시장과 함께 설계되어 깔려있었고, 경쟁과 매뉴얼은 트랙을 벗어날 수 없다.

'사토리'와 '달리던 관성'의 차이.

2016년 새해를 맞아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취업 레드오션에 빠진 동병상련의 한·일 청년"

기사는 말했다.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취업률은 상승했으나 고용환경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그러니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취업 문제에 대한 분석의 방점이 '취업률'보다는 '고용환경'에 찍힌다는 것이고, 한일 가를 것 없이 취준생들의 직장 선호 절대값인 '고용환경' 때문에 '일부 대기업'에 취준생이 쏠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

양질의 근로 환경이 희소하니, 우수 기업을 향한 경쟁은 한일 양국 비교할 것 없이 당연하다. 하지만 기사와 같이 판이 동등하게 깔리고 글자 수가 수북이 할애되어도, 정작 외면당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비용'이다. 해당 기사가 주는 가장 큰 불편함이자, 어차피 외면될 이야기. 한국의 '스펙 지옥'과 일본의 '매뉴얼 지옥'이 동급으로 퉁쳐질 수 없는 차이를 살펴보자.

일본은 '스펙지옥'이 아니라 '정해진 매뉴얼 지옥'이다. 일본 대학생의 조기 취업활동은 시작부터 금지된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는 대학생들이 취업활동을 공식적으로 개시할 수 있는 시기를 4학년 3월부터로 고정한다. 인턴십은 3학년 8월경부터 가능하고, 기본적으로 무보수이지만 1~2주일 정도의 단기간이다. 정확히 3학년 8월부터 약 8개월가량만 이뤄지고, 복수의 인턴십 체험이 가능하며, 인턴십이 끝나면 4학년 4월부터 8월 말까지 각종 회사설명회에 참가하여 단계별로 채용 프로세스가 이뤄진다. 기업들은 '대졸 예정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며, 다향한 경험을 통해 뽑은 선택지 안에서 일단은 다들 어디든 간다.

한국을 비교해보자. "기업이 보는 것은 지원자들의 스펙이 아닌 일하려는 의욕이다.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경험치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취업 전문가들이 수시로 하는 얘기지만 웃기는 소리다. 지원자들의 스펙을 안 보려고 해도, 일하려는 의욕은 다들 간절하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서 적잖은 경험치를 쌓은 애들도 수북하다. 결국 사교육이 동반된 과잉 경쟁에서 탈락자를 가려내기 위한 명분만으로도 '스펙'은 유용하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대졸 신입공채가 '대졸 예정자'에 한해서만 이뤄지지 않기에 이미 '경력직 채용 현장'이 된 지 오래다. '스펙'도 유효하고, '경력'도 필요하고, 희망만큼 돈을 지불하는 낙오자만 쌓이고 양산된다. 심지어 구글재팬에 '취업' '학원'을 일본어로 검색하면 결과가 없지만, 한국어로 검색하면 줄줄이 소세지다. "헬조선 탈출, 일본 취업 유학 OOO학원."

한일 양국의 대졸 취준생들이 동일한 수준의 고용환경 경쟁, 동일한 유형의 전근대적 전체주의 획일화 경쟁에 놓여있다고 해도 너무나 크게 다른 점이 바로, 비용. 비용. 비용이다. 굳이 일본까지 끌여들여서 비교할 거였으면, 유의미한 결론은 이렇게 도출됐어야 한다. "대졸자 8할의 대한민국 청년세대, 일본과 같은 '규제기반 대졸채용 프로세스'로, 일단은 취준생들의 평균비용부터 줄이는 것은 어떨까?"

아무도 우리의 비용을 따져주지 않는다.

나는 '고용 환경'과 '취업률'보다도 현 청년세대의 '비용 부담'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불가능을 전제로 솔직히 말해보자면, 기업에 3회 이상 입사지원 불가능 정책이 의무화되고, 일본처럼 취업 준비 기간이 고정되고, 대졸 예정자를 빼고는 모두 이직시장에서 별도의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공무원 시험 2년 이상 실패자들은 지원자격이 정지되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며 부채를 동반해 취업 사교육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불어났을까?

더 나아가 언론권력과 기업 수익이 찰싹 결합해버린 취업 사교육 카르텔을 해체시켜버리고, (ETS 모의 테스트 판권은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고, 주류 매체에서 ETS를 비판하는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국가에서 587억 들인 NEAT 공인 영어시험이 실패한 이유는 기업들 다수가 해당 시험점수를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큰 매몰비용을 쏟아부은 장기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구제정책을 옵션으로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채용도 결국 취업 '시장'이기 때문이다. 규제와 개입은 필연적으로 효율성 저하를 가져온다. 또한 중산층의 삶을 위해 대학이며 스펙이며 크나큰 비용을 지출한 청년들에게 '자기객관화'와 '현실 순응'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달관'이나 '노력'이라는 개인 책임과, '노동권 개선'과 '반 기업정서'에 기반한 '구조적 개혁'이 휘몰아치는 담론 소용돌이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온전히 '청년'만을 계산해내기는 힘들다. 청년세대는 은퇴시기에 놓인 베이비 부머들의 자식이자 한 가족, 한 지갑, 하나의 생존그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 가지를 먼저 주장하라면 '비용'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벗어날 수 없는 불행의 트랙을 설계하고 열심히 키워나간 취업 사교육시장과, 드높았던 대학진학률, 천편일률적이었던 고교 교육과정, 아직도 넘쳐나는 희망 멘토들을 1순위로 적대시해야 한다. 청년들 다수는 '자기 객관화'를 외면한 상태로 시장에 뒤쳐진 현실을 '어긋난 자존감' 하나로 버티며, '힐링'과 '희망', '송곳'과 '미생'에 동화될 뿐이다. 아직까지 본인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관성에 기대어 놓쳐왔던 것.

현 청년세대가 달려온 '관성의 법칙'에 청년들 스스로의 힘과 방향설정만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책임과 비용은 온전히 청년세대가 감수해내고 있다. 달리던 관성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비용을 소모해가며 무작정 나아가는 청년세대가 계산기를 두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계산 공식을 바꿔야 한다. 노동개혁과 임금피크제, 일자리 창출과 고용 환경 개선 사이에서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이에서 모두가 놓쳐왔던, 모두가 뭉쳐야 할 요구사항은 바로 "그래서 우리의 비용을 줄여줄 것이냐"일 것이다. 헬조선의 실제 온도는 현실의 차가움이고, 성장이 다 끝나버린 회색시대의 그림자에서 조용히 불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비용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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