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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인권보다 채권을 중시한다

혼자 중학생 딸을 키우는 한 부모 여성이 갚지 못한 애초의 60여만원, 그것도 그때그때 조금씩 갚아 원금의 상당 부분을 갚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 초라한 채권 때문에 일요일 밤 경찰이 강제 연행을 하기 위해 집에 들이닥쳤다. 일요일 밤 경찰은 중학생 딸이 보는 앞에서 이 여성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을 했다. 강도짓을 했거나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다. 60여만원의 빚을 한번에 변제하지 못한 가난한 한 부모일뿐이다. 채권은 이렇게 무서운 권리들을 내포하고 있다.

  • 제윤경
  • 입력 2016.01.25 13:09
  • 수정 2017.01.25 14:12
ⓒ주빌리은행

우리나라 사람들은 빚을 졌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뿌리 깊다. 어떻게든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빚을 갚지 못해 딱한 처지는 빚을 갚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란 의심을 한다. 따라서 오랜 기간 연체를 할 수밖에 없음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온갖 빚독촉의 가혹함도 일면 채무자가 수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가령 한 여성이 10여년 전 카드값 60만원을 갚지 못해 연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왜 겨우 60만원을 갚지 못했는가 그것은 의도적으로 안 갚은 것이 아닌가 여길 만하다. 그러나 그 여성은 60여만원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생활비조차 부족해 연체가 시작되었다. 일정 기간 연체를 하면서 수도 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도 당장 생활비가 부족한 터라 다 갚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이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 채권은 그렇게 연체가 길어지니 대부업체로 넘어갔다. 카드사에서 대부업체로 채권이 팔릴 때는 원래 채권 가격의 5% 전후의 가격으로 땡처리 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바이트로 겨우 40여만원을 벌었다. 그 돈이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고 대부업체는 그 통장을 압류했다.

당장 쌀을 살 돈도 없었지만 급한 대로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은 뒤 통장의 돈이 대부업체로 상환되는 것에 동의해주었다. 이제 빚은 20여만원이 남았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다시 걸려온 독촉전화에서 크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연체 기간동안 불어난 이자가 100여만원이 훌쩍 넘어선 것이다. 압류된 통장에서 빠져나간 40여만원은 보람도 없이 겨우 이자의 일부만을 변제한 셈이 되었다. 여전히 혼자 중학생 딸을 키우는 한 부모 여성으로 제대로된 일자리를 갖기가 쉽지 않아 생계난은 계속되었다.

통장 압류 사건 이후 다시 2년쯤 흐르고 여전히 우편함에는 대부업체와 법원에서 날아오는 우편물들이 쌓였다. 한두 번 열어보았지만 너무 무시무시한 말들만 가득했다. 맘 같아서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꽁꽁 숨고 싶었지만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절망과 두려움이 반복되던 어느 일요일 밤 경찰이 들이닥쳤다.

우편물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에 필요한 조치들을 해야만 했지만 전기요금 연체 고지서와 국민연금 연체 독촉장 등으로 가득한 우편함을 선뜻 열어볼 의지가 없었다. 들어오는 수입은 아르바이트로 그때 그때 당장 급한 생활비를 해결하는데도 턱없이 부족한데 쌓여가는 각종 연체고지서들을 열어봐야 절망감만 더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답도 없는 인생,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그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연체 고지서들 중 대부업체에서 법원에 신청한 재산 명시 명령서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법원이 정한 일정 기간 내에 법원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감치까지 명령할 수 있는 매우 무서운 제도이다.

법과 제도는 인권보다 채권을 더 중요시한다

재산 명시 신청은 원래 고액의 체납자들에게 법원에 출두해 재산이 없음을 증명해 보이게 하는 제도이다. 숨겨 놓은 재산이 없는지 조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법원에 출두하게 만드는 강제 행위로 심리적 압박을 가해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제도이다. 간혹 억울한 채권자도 있을 수 있다.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정작 자신의 돈을 빌려간 채무자가 멀쩡히 사는 모습을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렇게 사인간의 돈거래에서 법이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사인간의 분쟁에 법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크게 어긋나는 일은 아니다. 다만 대부업체와 금융회사같이 채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힘을 지닌 채권자들이 이러한 제도를 남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히 헐값에 땡처리된 채권, 즉 채권 원금의 5%라는 푼돈으로 채권을 매입한 대부업체가 이러한 제도를 남용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혼자 중학생 딸을 키우는 한 부모 여성이 갚지 못한 애초의 60여만원, 그것도 그때그때 조금씩 갚아 원금의 상당 부분을 갚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 초라한 채권 때문에 일요일 밤 경찰이 강제 연행을 하기 위해 집에 들이닥쳤다.

일요일 밤 경찰은 중학생 딸이 보는 앞에서 이 여성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을 했다. 강도짓을 했거나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다. 60여만원의 빚을 한번에 변제하지 못한 가난한 한 부모일뿐이다. 채권은 이렇게 무서운 권리들을 내포하고 있다. 채무자가 의도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다는 우려와 의심은 이제 아주 불필요하다. 이렇게까지 법과 제도가 채권을 보호하는데 왜 보통의 우리들이 도덕적 해이를 염려해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채권을 보호하고 재산권을 행사하도록 과도한 법집행이 이뤄져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이 글은 <가정과 건강>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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