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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탐정이 있기까지 | 배트맨의 뿌리를 찾아 2편

이야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트맨 시리즈에도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가 출몰하던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인 『배트맨: 가스등 아래의 고담』 등의 작품이 있고, 시대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코스튬도 인기가 있긴 하지만, 19세기 영국에는 정말로 배트맨과 비슷한 '공포의 존재'에 관한 도시 전설이 하나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세기 영국 엄마들이 아이가 울면 "그렇게 울면 밤에 스프링힐드 잭이 와서 잡아간다!"라면서 겁을 주었을 정도로 유명했던 '스프링힐드 잭'이었다.

  • 이규원
  • 입력 2016.01.25 11:29
  • 수정 2017.01.25 14:12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18] 세계 최고의 탐정이 있기까지

─ 배트맨의 뿌리를 찾아 (2/2)

이번 연재글에서는 지난 17회에 이어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준 페니 드레드풀과 스토리 페이퍼, 그리고 펄프 픽션의 주인공들을 알아보려 한다.

스프링힐드 잭, 밤의 공포

이야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트맨 시리즈에도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가 출몰하던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인 『배트맨: 가스등 아래의 고담』 등의 작품이 있고, 시대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코스튬도 인기가 있긴 하지만, 19세기 영국에는 정말로 배트맨과 비슷한 '공포의 존재'에 관한 도시 전설이 하나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세기 영국 엄마들이 아이가 울면 "그렇게 울면 밤에 스프링힐드 잭이 와서 잡아간다!"라면서 겁을 주었을 정도로 유명했던 '스프링힐드 잭'이었다. 큰 키, 붉은 눈에 입에서는 파란 불꽃을 뿜는다고 하는 이 괴인은 실제 목격담도 많았는데, 주로 몸에 딱 붙는 타이츠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마치 발뒤꿈치에 용수철을 단 듯 높이 뛰어오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름에도 용수철 뒤꿈치라는 뜻의 '스프링힐드'가 붙었다.

이야기꾼들은 이 재미있는 소재를 놓치지 않았고, 그래서 당시 '페니 드레드풀'이라고 불렸던 소설 잡지에는 스프링힐드 잭 이야기가 꾸준히 실렸다. 실제 목격담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겁주던 공포의 존재였던 잭은 소설에서는 기이한 복장으로 악인을 응징하고 서민들을 돕는 영웅으로 그려졌고, 트레이드 마크인 큰 망토 또한 공중을 활강할 수 있는 거대한 박쥐 날개 형태로 묘사되었다.

런던의 공포! 1886년 소설 잡지 '페니 드레드풀'에 실렸던 스프링힐드 잭의 광고지.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pring-heeled_Jack#/media/File:Jack4.jpg / Public Domain)

인간 박쥐, 하늘을 나는 박쥐 날개

1899년 《퍼니 원더》라는 스토리 페이퍼에서는 '인간 박쥐, 스프링힐드 잭 이야기'라는 제목의 소설이 실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존 홀로웨이라는 귀족 가문의 아들로, 부친인 남작은 정적의 음모에 빠져 작위와 재산을 다 잃고 만다. 홀로웨이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마스크로 정체를 가리고 싸움에 나섰으며, 집사에게서 받은 거대한 망토를 몸에 두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간 박쥐'가 되었다. 그는 인간 박쥐라는 캐릭터에 깊이 빠져들어서 심지어는 밤이 되면 근처 동굴의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서 박쥐처럼 잠을 자기도 했다. 이 캐릭터는 부잣집 도련님, 부모님의 원수, 그를 보필하는 집사, 마스크, 망토, 박쥐, 동굴, 공포의 존재 등 오늘날 배트맨의 핵심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닥 새비지, 과학자와 그 조수들

이제 시대는 20세기 초로 넘어간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펄프 픽션의 주인공인 펄프 히어로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가 '닥 새비지'다. 일명 '청동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닥 새비지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서 슈퍼맨의 원조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초능력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힘이 더 있었는데, 하나는 그가 뛰어난 과학자로서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닥 새비지는 허리에 배트맨처럼 유틸리티 벨트를 차고 각종 도구를 사용했다. 또 다른 하나는 곁에 그를 도와주는 뛰어난 조수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몽크', '햄', '레니', '롱 톰', '조니'라는 다섯 사이드킥은 각각 화학, 법률, 건축, 전자, 고고학의 전문가였다. 1930년대부터 시작해서 1949년까지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이 영웅은 1975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진 바도 있다.(또한 2009년에는 브라이언 아자렐로와 DC코믹스에서, 2013년에는 다이너마이트 엔터테인먼트에서 만화화되었다.)

슈퍼맨, 인디애나 존스, 악당 베인에게 영향을 준 미국의 문화 아이콘 닥 새비지.

2010년에 새로 영화화 계획이 발표되었으므로, 언젠가는 그를 스크린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http://houseofretro.com/wp-content/uploads/2013/03/docsavage1.jpg)

동양에서 수련을 쌓고 온 범죄 투사, 쉐도우

그 시기 이름 높았던 또 다른 펄프 히어로인 섀도우에 대해 알아보자. 본명은 켄트 알라드로 1차 세계 대전 당시 '검은 독수리'라는 이름의 에이스로 명성을 떨쳤고, 적진에 침투해 포로를 구출하고 적의 기밀을 빼내 오는 스파이로 영국과 프랑스 정보기관에서 활동했다. 그 역시 닥 새비지처럼 모험에 빠져들어 10년에 걸쳐 전 세계를 주유한다. 1922년 알라드는 중국 상하이에서 라몬트 크랜스턴이라는 이름의 마약상을 만나고, 같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다. 이때 신비의 도시 샴발라의 주민들이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지만, 라몬트는 되려 이 은인들을 살해하고 인질을 잡는 짓을 벌이다가 켄트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 기간에 그는 동양의 무술과 최면술 등을 깊이 수련하였고, 늙지 않는 비약도 마신다. 1970년대부터 동양의 악당 라스 알굴 등을 통해서 발전되어 온 배트맨 스토리를 아는 팬이라면 여기서 뭔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1929년 미국에 돌아온 켄트는 라몬트의 쌍둥이 형제인 또 다른 라몬트 크랜스턴을 만나 그와 신분을 교환한다. 진짜 라몬트는 켄트 알라드의 이름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대신 자신은 여행 중에 모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젊은 신사 행세를 하며 뉴욕에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라몬트 크랜스턴으로 위장한 알라드는 검은 모자와 검은 망토를 덮어쓰고, 쌍권총을 무기로 사용하며, 악인들을 응징하는 범죄 투사로 활약한다. 이런 섀도우의 이야기는 특히 라디오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귀로 듣는 미디어의 특성에 맞게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기괴한 음성이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1937~1938년 당시 섀도우의 목소리는 (3년 뒤 「시민 케인」의 감독, 제작, 각본, 주연을 맡아 영화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될) 약관 22살의 젊은 배우 오슨 웰스가 맡아 연기했다. 한편 1994년 개봉한 영화에서는 알렉 볼드윈이 쉐도우 역을 맡는다.

"누가 사람들 속의 사악함을 알고 있을까? 쉐도우가 알고 있다."

초능력 없이 사격술과 무술로 범죄와 싸우는 다크 히어로 쉐도우.

(이미지 출처: http://cdn.bleedingcool.net/wp-content/uploads/2014/09/Shadow2.jpg)

스파이더, 공포를 무기로

마블 코믹스 스파이더맨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 펄프 히어로 스파이더는 섀도우와 같은 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다. 스파이더의 특징은 범죄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줄 목적으로 코스튬에 공포물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섀도우가 신비로운 목소리와 분위기로 공포를 일으켰다면, 스파이더는 검은 마스크, 망토, 모자라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섀도우와 비슷하면서도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뾰족한 송곳니를 더해 겉모습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 주며 악당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시각적으로 안겨 주었다. 그리고 범죄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에는 그 자리에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거미 상징을 놓고 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2012년, 알렉스 로스와 다이너마이트 엔터테인먼트의 《마스크》에서 쉐도우, 그린 호넷과 함께 부활한 스파이더. 그는 사실 두 차례 영화화된 적이 있는 고참 히어로이다.

(이미지 출처: http://spiderreturns.com/pulps/covers/media/large/4001.jpg)

블랙 배트, 펄프 픽션계의 배트맨

배트맨이 등장한 1939년. 펄프 잡지 《블랙 북 디텍티브》에는 블랙 배트라는 히어로가 탄생했다. 주인공 앤서니 퀸의 직업은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투페이스와 같은 지방 검사이며, 어느 날 악당에게 염산 테러를 당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시력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범죄와의 싸움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오히려 훈련을 통해 신체의 다른 감각을 극도로 키워 나갔고, 나중에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안구 이식 수술을 통해서 시력을 되찾는데, 신기하게도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앤서니는 자신이 시력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력을 되찾으며 그는 범죄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낮에는 시력이 약하지만, 밤이 되면 자유로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박쥐를 상징으로 삼는다. 그 역시 다른 펄프 히어로처럼 범죄를 죽음으로 응징하였고, 그를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 역시 개의치 않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한 배트맨과 블랙 배트는 각각의 미디어인 만화책과 펄프 잡지에서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고, 그래서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유사점으로 인해 누가 원작인가를 가리는 소송에 들어갈 수도 있었으나, 블랙 배트는 펄프 잡지에서만 활동하며 만화책으로 출판하지 않고, 배트맨은 펄프 픽션화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블랙 배트는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배트맨만 살아남아 최고의 히어로로 성장하게 된다.

어딘가에는, 블랙 배트가 세계 최고의 탐정이 된 평행 우주가 있을지도 모른다.

배트맨 장갑에 달린 '지느러미'는 그의 삽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ocities.com/jessnevins/humanbat.jpg)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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