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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에서 우주먼지로, 당신은 별의 아이들

생명체를 이루는 6개의 주요 원소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인데 이것들도 모두 별이 죽으며 흩뿌린 우주의 먼지에서 왔다. 이렇게 과학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이 모든 물질의 기원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주의 시작이라는 거대한 이벤트, 그리고 별의 탄생과 죽음의 드라마 속에서 만들어져 지금 여기 우리 몸속에까지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말 그대로 '별의 아이들'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부른 노래 제목이기도 한 '스타맨'은 바로 우리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 원종우
  • 입력 2016.01.24 09:24
  • 수정 2017.01.24 14:12

미국 항공우주국 소속 우주비행사인 스콧 켈리와 유럽우주국의 팀 피크가 지난 20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찍어 공개한 북서태평양 지역에 발생한 오로라의 모습. 오로라는 주로 태양에서 방출된 전자나 양성자가 지구 대기를 만나 마찰해 빛을 내는 현상이다. 우주에선 보이지 않는 입자 단위의 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보위가 얼마 전 69살로 세상을 떠났다. 다른 팝 스타들에 비해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창조성과 대중성의 양면에서 세계 대중음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천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오랜 활동기간 동안 여러 개성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많은 앨범과 명곡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1972년에 들고나온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대안적 인격일 것이다.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성쇠>라는 길고 엉뚱한 제목의 앨범을 통해 그는 사회와 인간, 성정체성 등 여러 이슈를 음악과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 이름, 스타더스트는 직역하면 '별먼지'가 된다. 천문학에서는 성간먼지라고 하는 0.1㎛이하 크기의 구체적인 물질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아마 보위는 우주공간에 흩어져 있는 작은 물질들을 통틀어 표현한 것이지 싶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우주 속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멋지고 거대한 은하나 별 대신 이렇게 보잘것없는 티끌에 자신을 빗대었을까?

데이비드 보위가 선보인 자신의 첫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Davidbowie.com 제공

수소 원자핵이 만들어지는 시간

진의야 알 길이 없지만 예술가로서의 직관적 통찰이 담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실은 이런 우주 속의 먼지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은 수소다. 이 많은 수소는 전부 빅뱅 직후 생겨났는데, 원자핵이 양성자 하나인 가장 단순한 원소이기 때문에 그렇다. 빅뱅이 일어나고 10-34초께에 가장 작은 물질인 쿼크와 전자가 생겨났고 이어 우주의 온도가 10조℃정도까지 식은(!) 10-6초가 되자 쿼크들이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빅뱅 후 1초까지의 시간 동안 우주의 모든 수소 원자핵이 만들어졌으니, 독자들이 지금 이 문장을 읽은 동안보다도 훨씬 짧은 시간에 수천억의 수천억배에 이르는 우주 속 모든 별들의 재료가 다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분 동안 이렇게 만들어진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서로 붙어 합성이 이뤄지며 원자번호가 2, 3인 헬륨과 리튬 계통의 원자핵이 만들어졌다. (달과 행성들을 제외하고) 태양을 위시해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것들의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의 덩어리들인데, 이 두 원소가 암흑물질을 제외한 우주 전체 물질 질량의 98%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주변에는 이들과는 다른 나머지 2% 속의 원소들이 득실대니 이상한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물론 수소는 H2O, 즉 산소와 화합한 물의 형태로 흔하게 굴러다닌다. 하지만 우리가 들이마셔야만 살 수 있는 그 산소, 지구 대기와 과자 봉지 속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물질인 질소, 온갖 다른 것들과 화합해 유기체를 구성하는 탄소, 그리고 모래를 만들어내는 규소와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여러 기계에 잔뜩 들어 있는 철 같은 건 어디에서 온 걸까?

그 물질들은 바로 저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 만들어준 것이다. 별이 연료인 수소의 핵융합 결과 헬륨 덩어리로 바뀌면, 초고온의 중심부에서 다시 헬륨의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수소가 헬륨으로 변했듯이 이제 헬륨보다 더 무겁고 복잡한 원소들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중심 온도가 수억℃정도가 되면 헬륨이 탄소를 낳고 탄소가 네온을 낳으며, 10억℃가 넘어가면서 네온에서 산소, 산소에서 규소가 생겨난다. 마지막 단계인 원자번호 26번인 철에 이르기 위해서는 물경 30억℃의 열이 필요하다. 수소가 양성자 하나를 가진 데 비해 철은 26개를 갖고 있으니 별 속에서 얼마나 강력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났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별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온도와 압력에는 한계가 있고 철은 무척 안정된 물질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별의 일생 속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은 여기까지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중금속이라고 부르는 철보다 원자핵이 더 많은 원소들, 즉 구리와 납, 니켈, 금이나 은, 우라늄 등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이런 물질들은 별의 죽음을 통해 생겨난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별도 영원하지 않고 때가 되면 죽게 된다. 죽음이 임박하면 아주 크고 밝은 별들은 초신성으로 폭발하는데, 이 순간 별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열과 압력 아래 놓인다. 철을 넘어서는 물질들이 생겨나는 건 바로 이 특별한 순간이다. 이어 그 엄청난 폭발로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들이 주변의 우주공간으로 산산이 뿌려져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삼라만상이라고 부르는 세상 모든 것들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갔다. 지구의 지각을 이루고 있는 주요 원소인 산소, 규소, 알루미늄, 철, 칼슘,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산과 들 같은 자연, 그리고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도 물론이다.

지구는 엄청난 열로 녹아내리고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을 위시한 생명도 물론 포함된다. 생명체를 이루는 6개의 주요 원소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인데 이것들도 모두 별이 죽으며 흩뿌린 우주의 먼지에서 왔다. 그중 인은 동물의 뼈와 디엔에이(DNA)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소인데 2013년 말 서울대의 구본철 교수와 윤성철 교수, 이용현 연구원 그리고 토론토대학의 문대식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이 초신성 잔해의 관측을 통해 그 기원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과학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이 모든 물질의 기원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주의 시작이라는 거대한 이벤트, 그리고 별의 탄생과 죽음의 드라마 속에서 만들어져 지금 여기 우리 몸속에까지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말 그대로 '별의 아이들'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부른 노래 제목이기도 한 '스타맨'은 바로 우리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먼지에서 먼지로'라는 말처럼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흙과 섞인 우리 몸속 모든 물질들은 사라지지 않고 미생물이나 동식물의 양분이 되어 생태계 속을 계속 순환한다. 그런 나날들이 마치 무한처럼 반복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드디어 변화가 일어난다. 수십억년 뒤 태양이 수소 연료를 다 써가면서 뜨겁고 거대한 적색거성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태양이 팽창해 지구 궤도에 점점 가까워지면 지구는 엄청난 열로 모든 것이 녹아, 생물은 물론 산도 바다도 들판도 없는 밋밋한 구체로 변한다. 우리의 고향 지구가 마침내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결국 태양에 흡수되어 지구 안에서 순환하던 우리 몸속의 물질도 원자 상태로 그 속에 녹아든다.

이렇게 우리 모두를 흡수한 태양은 이제 탄소로 된 핵을 제외한 모든 물질을 우주공간에 다시 방출하고, 그렇게 방출된 물질들은 허공을 떠도는 우주먼지, 즉 스타더스트가 된다. 이 미세한 먼지들은 기나긴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천천히 모이고, 중력 수축을 하며 가스 원반을 형성한다. 그렇게 수축하고 회전하면서 중심부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가게 되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이제 충분히 뜨거워져 수소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정도에 도달한다. 바로 새 별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주변의 물질들은 별의 주위를 돌며 돌과 가스 덩어리의 행성들을 만들고 땅과 하늘, 산과 바다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그중 일부에서는 지구에서 그랬듯이 생명이 생겨나 언젠가는 자신을 생각하고 우주를 바라보는 존재가 될 것이다.

너무나 거대하고 드라마틱한 시공간의 스케일 때문에 마치 신화나 상상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일은 우주에서 늘 일어나고 어렵지 않게 관측할 수 있는 객관적인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미 그런 과정을 거친 물질들을 물려받은 우리 자신의 존재가 바로 그 엄연한 증거다.

이렇게 우리는 별에서 온 물질들을 통해 생명을 얻어 살다가 언젠가 다른 별과 행성, 생명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이 대순환의 드라마는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에 두렵기조차 하지만, 그 의미를 들여다보면 건조하게만 여겨졌던 이 물질세계에 내재된 일종의 영성을 마주할 수 있다. 부나 권력 같은 세속적인 가치들이 숭상되는 세상이지만 이 광막한 시공간 속에 우리의 시간은 찰나요, 존재는 티끌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죽음과 소멸을 마주하기 위한 내면의 힘이 되지 못한다.

허무를 이겨내는 힘

하지만 우리가 별에서 와서 다시 별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순환의 일부라는 것, 한 인간의 짧디짧은 일생은 물론 별의 일생 같은 우주적 차원의 기나긴 시간마저 뛰어넘어 새로운 별과 생명과 희망을 잉태하는 주체라는 사실은, 자칫 허무로 귀결될지 모를 우리 자신의 존재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크고 작은 모든 것들, 비록 그들의 시간은 짧고 이야기는 잊힐망정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일생에 한번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고민한다. 그 고민이 깊어지면 어떤 이는 종교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철학이나 문학 같은 인문학에 다가가기도 하며, 가족이나 자식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구하기도 한다. 구원의 과정을 통해 영생과 지복을 갈망하는 삶을 살거나 반대로 담담하게 매일의 현실만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그것들 중 어느 것이 답인지 알지 못하고 어떤 것이 답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현대 과학이 우리가 과거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의 진실을 이렇듯 드러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속에서 역시 이전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새 의미들이 피어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구원은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바라보는 우리 내면을 통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보위의 부고를 접한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 크리스 해드필드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우주먼지로,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안녕히 스타맨."(Ashes to ashes, dust to stardust. Your brilliance inspired us all. Goodbye Starman)

정녕 그렇다. 우리 모두는 결국 먼지에서 와서 우주먼지로 돌아갈, 그사이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사랑과 영감을 나눠줄 별의 아이들이니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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