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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7년전 오늘, 용산참사가 있었다

  • 허완
  • 입력 2016.01.20 13:11
  • 수정 2016.01.27 20:05
ⓒ한겨레

2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용산참사 7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생존자 10명이 이날 처음으로 추모제에 참석했다. 그들은 "그날도 오늘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다"고 말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20일 일어났다. 서울 용산4구역 철거현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사망했다.

이 지역에는 4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이미 시공사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재개발조합(토지 및 건물주 측)이 제시한 보상안을 거부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조합 측은 휴업보상금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당시 재개발 조합원들은 1인당 수억원에 달하는 개발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세입자들에게는 1600~2500만원의 보상금이 전부였다. 권리금도, 인테리어 비용도 한 푼 받지 못하게 될 처지였다. 세입자들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 지역에 대한 철거는 2008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세입자 중 86% 가량은 보상금을 받고 그곳을 떠났지만, 나머지 상인과 세입자들은 사건 몇 년 전부터 시위를 벌였다.

철거가 속속 진행되던 1월19일,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명은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랐다. 경찰특공대와 용역업체 직원들은 그 다음날인 20일 새벽, 곧바로 강제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컨테이너에 경찰 특공대원을 태워 옥상에 올려보내는 '작전'으로 진압을 시작했고, 세입자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불길이 번졌다. 불이 모두 꺼진 뒤, 사망자들의 시신이 발견됐다.

진압에 나섰던 경찰은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검찰은 시위에 나섰던 세입자 20명을 기소했고, 이 중 5명이 구속됐다.

화재 원인, 참사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쟁터도 아닌 서울 도심에서 6명이 숨졌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농성자들이 인화성 물질(시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장에 화학소방차조차 대기시키지 않았다.

검찰은 농성자 20명(5명 구속)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했다. 경찰청은 참사 원인을 불법 과격시위로 돌리기 위해 조직적인 여론 조작을 시도했고, 청와대 행정관(이성호)은, “개인적 판단에 따라” 용산참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다른 사건으로 돌리라며 서울경찰청 공보담당관에게 이메일로 지시했다. 공권력이 진 법적 책임은 전무했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당시 서울경찰청장 김석기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지역구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일보 1월20일)

남일당 건물은 이듬해 12월 철거됐다. 그러나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사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참사가 발생했던 현장은 벌써 몇 년째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용산참사를 겪은 천주석(왼쪽부터), 김창수, 김진흥, 김주환, 이충연씨. 2016년 1월13일. ⓒ한겨레

그 사이 식당과 당구장, 중국집, 호프집 등을 운영하던 사장님들은 아파트 경비원이나 일용직 노동자, 식당 직원, 계약직 직원이 됐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유영숙씨는 용산참사 당시 연대투쟁을 하러 나갔던 남편을 잃었다. 유씨는 2007년 서울 중구 순화동 재개발로 10년 가까이 운영해오던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잠시 주춤하던 순화동 재개발은 2014년 말부터 다시 시작됐다. 유씨는 또 서울 한복판에서 노숙농성을 벌였다. 유씨는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그 때를 떠올린다.

순화동에서의 10년은 그의 삶에서 ‘행복’했던 때다. 그때를 떠올리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남편이 자상했다. 내가 장사를 하니까 주말에 가사일은 남편과 아이들이 도맡아서 하고, 겨울에는 빙어낚시를 하러 갔다. 평범하지만 다시 올 수 없는 행복이었다.

(중략)

“남편이 떠나고 집에 있어도 잠을 못 잤다. 잠 못 자고 밖을 쳐다보면서 불빛을 세고 있었다. 그냥 앉아서 창 밖을 보면서 밤새우고 불빛 하나씩 꺼지는 것 보고 그랬다. 퇴원하면 일단 쉬고 싶다. 너무 힘들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재개발로 우리같이 고통 받는 가정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간경향 제1161호 1월26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용산참사 7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참사 당시 함께 망루에 올랐다가 생존한 김창수씨 등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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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용산참사 #재개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