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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설탕을 좋아하는 건, 엄마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 강병진
  • 입력 2016.01.20 11:17
  • 수정 2016.01.27 20:10

“대한민국이 설탕의 늪에 빠져있다”, 고 ‘한국일보’가 지난 1월 18일 보도했다. “‘설탕수저’ 물고 나온 20-30대는 “태생적인 단맛 중독자”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설탕 열풍’은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불을 지폈으며, 특히 2, 30대 젊은 층이 단맛에 빠져드는 것에는 아기 때 먹었던 ‘분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이 기사에서 “지금의 20~30대는 금수저가 아니라 ‘슈가(sugar)수저’를 물고 나온 셈”이라고 분석했다.

보도 후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는 ‘설탕 수저론’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분유’라는 단어의 함의에 때문에 논란이 된 것이다. 기사에서는 “1980년대 말 페미니스트 문화 확산, 경기 활성화 등에 따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났고 이 여파로 당시 출생한 아이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따라 날 때부터 단맛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식품의약품 안전처의 자료를 인용해 “2010년 한국인의 하루 평균 당 섭취량은 61.4g으로 2008년 49.9g에 비해 23% 늘었는데, 이중 대학생 및 청년(만 19~29세)의 당 섭취량은 65.7g, 중ㆍ고교생(만 12~18세)은 66.2g으로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며 이러한 맥락을 강조하고 있다.

1. 그렇다면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인 엄마가 잘못이라는 건가?’

블로거 ‘바이커 sovidence’는 기사에서 인용한 통계에 대한 설명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통계에는 나와있지만, 기사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2012년 5월 24일, 식품의약품 안전처가 발표한 ‘우리 국민 당류 얼마나 먹고 있나?’란 보도자료에 따르면, 기사에 인용된 대로 “만 12세~18세(중·고등학생)는 66.2g, 만 19세~29세(대학생 및 청년)는 65.7g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의 실제 설명은 아래와 같다.

“모든 연령대에서 당 섭취량이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당 섭취량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만 30세~49세(중․장년층, 66.7g)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만 12세~18세(중·고등학생, 66.2g) ▲만 19세~29세(대학생 및 청년, 65.7g) 순으로 나타났다.”

기사에 인용된 통계자료를 볼 때는 모유를 먹고 자란 계층이 분유 세대보다 단맛에 더 중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그리고 정말 우리는 '백종원' 때문에 단맛을 더 즐기고 있는 걸까?

기사에서 인용된 통계자료는 2010년도의 분석이다. 식품의약품 안전청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의 당류 섭취량 분석결과를 2014년 9월에도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서는 "우리 국민의 총당류 섭취량이 1일 총열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모든 연령대에서 섭취권고기준 이내이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은 유아·청소년의 경우 권고 기준을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가공식품은 "음료류, 설탕 및 기타당류, 빵·과자·떡류, 가공우유 및 발효유, 아이스크림 및 빙과류, 장류, 드레싱 및 조미식품, 김치류 및 절임식품, 캔디·초콜릿·껌·잼류"등을 뜻한다.

하지만 백종원이 TV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건, 주로 '집에서 하는 요리'였다. 한국인들이 과거보다 단맛을 더 즐길 수는 있으나, 실제 통계를 볼 때 집에서 하는 요리에 설탕을 더 많이 넣어 먹는 것만으로 단맛 중독의 현상을 파악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단맛을 즐기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백종원의 인기를 요인으로 분석하기에도 무리가 있어보인다. '젊은 세대'가 단맛을 좋아한다는 내용의 보도는 이미 2013년에도 나온 바 있다. (SBS 뉴스 - '단맛에 취한 젊은 세대…뇌 건강까지 위협' 2013년 9월 5일 보도) 백종원이 요리에 '설탕'을 애용한다는 사실을 한국인이 알게 된 건, 2015년 2월 파일럿으로 시작한 '마이 리틀 텔레비젼' 부터였다. 즉, 한국인은 원래 단맛을 좋아했고, 이건 원래부터 문제로 지적되던 부분이었다.

참고로 음식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셰프는 지난 2015년 8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설탕은 매우 높은 농도의 당으로 즉각적으로 우리 몸에서 흡수된다. 쾌감을 극대화시킨다"며 한국 사람들이 설탕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규율과 명령은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단것으로 그것을 일부 풀어낸다는 것이다.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를 몰래 먹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설탕 강요하는 사회, 설탕 과식하는 사회는 이 피곤한 일상을 강요하는 세상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설탕을 무서워하기보다 설탕 권하는 사회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 그런데 우리는 정말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는 건가?

앞서 인용한 2014년 자료에서 식약처는 "우리 국민의 1일 평균 당류 총섭취량은 외국에 비해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나, 어린이와 청소년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이 증가하고 있어 체계적인 당류 저감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한국일보'의 기사에서 "단맛에 길들여지면 신맛, 쓴맛 등 다른 맛에 집중할 수 없게 획일화 돼 결국 감각을 잃는 것은 물론 다양한 문화를 만들 수 없는 미개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의 자료에 따르면, 다행히 아직 한국인은 '외국에 비해' 덜 '미개인'인 것이다. 물론 사안의 진위는 2014년과 2015년 통계가 나올 때,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디저트를 주식으로 삼지는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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