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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의 한국사, 北의 조선력사

남북한의 역사인식은 시대 구분, 특히 근현대 시대 구분론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단일한 혈연·언어·문화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담론 위에 서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학계 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역사교과서는 역사 서술의 주인공을 단일 혈통의 민족으로 두고 있다. 역사교과서 첫 장의 제목은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 국가의 발전'이며, 학습 목표 1번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북한 역사학계는 민족이 부르주아 사회 형성기에 만들어진다는 유물사관의 기본논리와 달리, 민족의 원초성을 강조하며, '자기 민족 제일주의'를 제창했다.

  • 최하영
  • 입력 2016.01.20 05:45
  • 수정 2017.01.20 14:12

지난 가을,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에서 '북한'은 함께 언급되는 키워드 중 하나였다.

전국 곳곳에 붙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플랜카드로 논쟁이 불붙었다. 여당 일각에서는 북한이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지령문을 보냈다는 주장이 나왔고, 야당의 문재인 대표는 북한에 대해 경고하며, "북한이야 말로 교과서 체제를 민주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로 역사학자인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북한을 따라 하는 종북 교과서"라는 일침을 날렸다.

북한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남북한 교과서를 나란히 두고 비교해보았다.

약 70년 동안 이질적인 체제를 강화해온 남북한의 역사 인식은 차이점이 컸지만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이 서술하고 있는 과거는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발행된 교과서는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2014년 본을 기준으로 하였다. 북한의 역사교과서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대출한 교육도서출판사의 『조선력사 고등중학교』 1-6학년 용, 2001년 본을 기준으로 하였다. 북한 역사교과서에 등장한 표현은 북한의 맞춤법을 따라 옮겼다.

출처 : 통일부

북한의 역사교과서, 조선력사

북한의 교육은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공산주의적 인간 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체제 순응적 인간을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역사 교육은 일반 역사과목에 해당하는 '력사'와 김일성의 '영도'가 시작된 이후의 시기를 다룬 '혁명력사'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력사』의 각 권 머리말에는 역사교육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학년: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세계에는 나라가 많지만 이렇게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많지 못합니다.

△2학년: 조선력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목적은 우리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앎으로써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깊이 간직하는데 있습니다.

△3학년: 조선력사를 깊이 학습하는 것은 높은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제일주의의 정신을 가지는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4학년: 우리가 력사를 학습하자는 것은 왕이나 봉건통치지배들의 력사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인민의 투쟁의 력사, 창조의 력사를 알자는 것이다. 우리가 력사를 배우는 것은 조선혁명을 잘하기 위해서이다.

△5학년: 조선력사 과목 학습을 잘하여 우리나라 력사에 체계적인 지식을 가짐으로써 강성대국 건설의 참다운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하여야 한다.

△6학년: 력사를 연구하고 학습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 립장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자면 모든 력사적 문제들을 조선혁명을 중심에 놓고 조선혁명의 리익에 맡게 연구하고 학습하여야 한다.

『조선력사』의 1권과 2권은 원시사회부터 고대사회, 중세사회, 근대사회까지의 역사를 이야기책, 인물전의 형식을 따라 주제별로 정리했다. 등장하는 인물은 단군, 동명왕, 바보온달, 광개토대왕, 혜초, 우륵, 계백장군, 솔거 등으로 남한 학생들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다.

이후 배우는 교과서는 통사로 서술되었다. 『조선력사』 3권에서는 '조선사람'이 조선반도, 특히 평양지역에서 발생해 나라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구려를 한반도에 등장한 첫 봉건국가로 간주하고,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했다.

4권은 고려시대를 다루며 거란과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고려사회의 역동성과 자주성을 강조했다. 또한 고려가 발해 유민들을 받아들여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킨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5권은 조선시대를 다루었다. '리조봉건통치기구'는 고려와 마찬가지로 인민을 억압착취하며 량반지주놈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반인민적인 통치기구라고 서술했다. 또한 조선 후기 농민전쟁을 중요하게 서술하면서 역사의 주역이 인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6권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해당한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으로 시작해 일제 하 광주학생항일운동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후의 역사는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의 삶을 다룬 『혁명력사』에서 배운다.

『조선력사』는 역사의 정통성을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파악하고 있다.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인데 반해,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인들이 세운 '후발국가' 혹은 '속국'일 뿐이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원대한 삼국통일 계획을 가로막은 장애물로 등장한다.

전반적인 관점은 민족주의와 계급의식이 혼재되어 있다. '조선인민은 예로부터 싸우다가 죽을지언정 원쑤앞에 굴할줄 모르는 용감하고 슬기로운 인민'이라며 외세의 간섭과 박해를 견뎌낸 민족을 강조하면서도 '신라통치배'에 대한 묘사에서는 '가장 악착하면서도 제일 비겁하고 잘난체하면서도 가장 비굴한것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고조선에 있었던 순장 풍습에 대해 '노예주들은 죽은 다음에도 살았을 때처럼 많은 노예들을 부려먹으며 호화롭게 지내보겠다는 허황된 생각에서 노예와 물건들을 자기 무덤곁에 묻기 하였다'고 서술하며, 계급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조선력사』는 계급적 성격을 지닌 '망이농민폭동'과 같은 민중 봉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한 '3·1인민봉기'는 민족해방을 지향했음에도 '탁월한 수령, 혁명적인 계급과 혁명적인 당의 령도'를 받지 못해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문화유산이나 문화적 성취에 대한 예찬으로 나타났다. 『조선력사』는 신라 금관을 설명하며, '신라봉건통치배'들의 유산임에도 '인민들의 슬기와 재능'이 담긴 것이라며 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세공품'이라고 칭송한다.

주관적이고 역동적인 서술

『조선력사』 매 장의 첫 문단에는 '김일성대원수' 혹은 '김정일원수'의 교시가 있다. '반거란전쟁은 고려에 의하여 국토의 통일이 실현된 이후 우리 인민이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외적의 침공을 짓부시고, 민족의 존엄과 슬기를 떨친 대표적인 첫 투쟁이었습니다'와 같이 역사 전공자가 아닌 국가 지도자의 가치판단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이다.

남한의 역사교과서와는 사뭇 다른 주관적이고 역동적인 서술 방식이 등장한다. 부정적인 표현은 주로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인물이나 민중들을 착취하는 인물 혹은 세력에게 붙었다. 적에게 투항하려는 세력을 '배신자'라고 지칭하며, 고주몽의 행적을 묘사하며 '힘과 재주는 누구도 따를 수 없었고 그가 지휘하는 세력을 당해낼 수도 없었다'고 서술했다. 탐관오리나 양반지주와 같이 부정적인 인물에게는 '지방관리놈', '리지순놈' 등 비속어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몽골의 침략에 대해 서술하면서도 고려 군대, 인민들의 저항을 '가렬처절한 싸움'으로 서술하는 등 주관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반면 남한의 역사교과서는 신라의 통일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함께 수록하여 학생들의 토론을 유도하고, 호란 당시 주화론과 척화론 역시 두 가지 주장 중 한 가지 주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별 교과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중국이 참여한 『미래를 여는 역사』 편찬 과정에서도 나타났지만 참가국들은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역사교과서 편찬에 성공했다.

유물사관과 민족주의의 결합

1990년 이후 북한의 한국사 시대 구분론은 다음과 같은 체계를 갖추었다.

△고대 노예제 사회: 기원전 30세기 고조선, 기원전 5세기의 고구려, 부여, 진국

△중세 봉건제 사회: 삼국, 고려, 조선

△근대 반침략반봉건 부르주아 민족운동기: 1860년대~1919년 3·1인민운동

△근대에서 현대로의 과도기: 1919~1926년 ㅌ·ㄷ동맹 결성

△현대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운동기: 1926~1947년 2월

△현대 사회주의 혁명기: 1947년 2월~1958년 8월

△현대 사회주의 건설기: 1950년대 후반~1980년대

△현대 사회주의 완전승리기: 1980년~현재

원시 사회부터 중세 사회까지는 형식적인 유물사관의 시대구분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근대 사회부터 현대 사회까지는 혁명 운동의 변화 양상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조선민족이 대동강을 중심으로 우수한 고대 문화를 형성하였고, 중세봉건사회가 서구보다 이른 시기에 성립하였다는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반제국주의 투쟁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은 북한은 80년대 후반부터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동구권의 몰락과 중국의 개혁개방, 김일성의 사망과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체제 마주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 대응책이었다. 2009년에는 헌법을 개정하며 공산주의를 삭제하였다.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시하는 '북한식(우리식) 사회주의'를 국가의 노선으로 채택한 것이다.

계급투쟁과 함께 민족을 중시하는 역사관은 『조선력사』의 시기구분에도 혼재되어 나타난다. 단군의 출생은 '지금으로부터 5000여 년 전'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고조선 사회는 '노예폭동'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주몽은 '노예소유자국가'보다 발전된 '봉건국가'를 세웠으며 소국들을 하나하나 복종시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신라와 발해까지를 고대로 구분하고 고려를 귀족사회, 조선을 유교사회로 구분한 남한의 교과서와 크게 다른 부분이다. 남한 역사학계에서는 노예사회라는 표현 대신 삼국과 남북국 사회에 살았던 '천민', '노비'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들은 왕실과 관창, 귀족에게 예속되어 갖은 노역에 종사하였다. 이들의 신분은 '천민'이나 '노비'가 아닌 '평민'이었다.

이후 북한의 '혁명력사'에 해당하는 근현대사의 시기구분은 남한 교과서와 전혀 다르다. 북한은 조선 현대사가 1926년 김일성이 중국 지린에서 결성한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ㅌ·ㄷ동맹은 남한 교과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통치 방침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변했다는 서술은 등장하지만 이를 시기구분의 기준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광복 이후 북한의 역사는 사회주의 체제의 발달을 기준으로 서술되었다. 하지만 다른 체제를 수용한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이후 북한 지역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다.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대한 서술은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 확립', '주체사상의 공식화' 등으로 짤막하게 나타나있다.

출처 : 통일부

평양에 위치한 단군릉

『조선력사』는 '단군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와 창쓰기, 칼쓰기 등 무술을 익히는데 열중하였다'고 설명하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평양 인근에 위치한 단군릉 안에 '단군과 그 안해의 뼈가 보존되어 있다'고 서술하며 단군릉 역시 명확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남한 교과서는 '단군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로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를 뜻한다'고 서술했다. 단군의 고조선 건국 역시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서를 인용하는 데에서 그친다.

북한은 1993년 김일성의 지시를 받아 단군릉을 발굴했다. 조선력사학회는 1998년 3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일대 문화를 '대동강문화'로 명명하고 세계 5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추가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단군 인식은 남한지역보다 북한지역이 역사적으로 정통성을 지닌다는 국가적, 사상적 이데올로기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북한이 공유하는 정서, 민족주의

남북한의 역사인식은 시대 구분, 특히 근현대 시대 구분론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단일한 혈연·언어·문화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담론 위에 서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학계 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역사교과서는 역사 서술의 주인공을 단일 혈통의 민족으로 두고 있다. 역사교과서 첫 장의 제목은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 국가의 발전'이며, 학습 목표 1번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북한 역사학계는 민족이 부르주아 사회 형성기에 만들어진다는 유물사관의 기본논리와 달리, 민족의 원초성을 강조하며, '자기 민족 제일주의'를 제창했다. '자기 민족 제일주의'는 주체사상과 민족주의 논리가 결합한 담론이다. 조선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기초로, 계급주의에 앞서 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90년대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몰락을 지켜보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민족의 단결을 강조한 측면도 있다.

『조선력사』에는 외세, 특히 미국을 절대적인 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김일성의 교시를 인용하여 '미제국주의는 <샤만>호의 침입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여년 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온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고 서술한 것이 그 예이다. 남한의 역사교과서 역시 『조선력사』보다는 덜하지만 외세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표현이 눈에 띈다.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에 대해서 '야욕'이라는 부정적 어감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단일민족 개념의 해체와 다문화사회의 도래에 따라 극복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통일을 위한 민족 동질성 회복에서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2000년 6월 15일 남북한 정상이 발표한 남북공동선언문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를 제 1조항으로 삼았다. 이처럼 민족을 국가 형성의 공동체의 기초로 간주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자산이다.

남북한이 공유하는 가치, 문화

한·일 공통역사교재인 『조선통신사』의 경우 연구 주제를 외교사인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로 한정하였으며, 한·중·일 공통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는 연구시기를 근현대사로 한정했다. 『마주보는 한일사』는 고대부터 개항기를 우선적으로 편찬한 뒤 이후 현대사 부분을 추가적으로 출판했다. 이처럼 전체 시기, 전체 주제를 다루기 어려운 경우 남북공동역사교과서 역시 합의가 용이한 주제나 시기를 한정하여 교재를 편찬하고, 서술 범위를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남북한의 경우 가장 차이가 적고 이제까지 교류 협력의 경험이 있는 문화사부터 편찬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치사와 경제사가 남한과 북한의 체제 차이에 따른 이질성을 부각한다면 문화사의 경우 남한과 북한 교과서의 차이가 가장 작은 분야이다. 시기는 북한이 '혁명력사'라고 규정하여 연구하는 시기 이전, 즉 김일성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부터 공동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각 시대마다 문화사를 포함하고 있다. 고대사 부분에서는 이슬람의 문화의 수용과 일본 문화 형성에 삼국이 끼친 영향을 긍정적으로 서술하였으며 백제의 벽돌 신라 말의 승탑, 고구려 고분벽화 등을 종교의 발전과 함께 설명했다. 특히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현장에 직접 방문하기 힘들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설명했다. 고려시대의 문화재는 귀족문화의 특성을 강조하여 서술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있는 문화재는 직접 보고 연구하거나 풍부한 사진자료를 얻기 힘들지만 남한에 있는 고문서나 미국 보스턴박물관, 일본 센소사 등에 있는 불화를 통해 설명했다. 조선시대 문화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성리학의 발달, 조선후기 서민문화의 융성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북한의 주체사관과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민족의 문화적 성취를 예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력사』는 첨성대에 대해 '지금까지 세계에 남아 있는 천문대들 가운데서 력사가 제일 오랜것', 백제 사람들이 일본 나라현에 지은 법륭사를 '지금까지 남아있는 목조건물가운데서 제일 오래된 것'이라고 서술하며, 우리 민족의 문화적 성취를 세계적인 것으로 치켜세웠다. 『조선력사』는 "우리 조상들은 일본문화의 개척에도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는 김일성의 교시를 시작으로 한반도 고대문화가 일본의 역사와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고구려의 천문기술과 안학궁, 대성산성은 남한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고 북한 교과서에만 등장하는 내용이다. 신라의 첨성대, 금관, 불국사, 가야의 금속세공기술 역시 비중 있게 등장한다. 팔만대장경과 금속활자, 최무선의 화학무기, 고려자기, 왕건릉과 묘향산 보현사를 고려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조선력사』에서 선정한 조선 문화 역시 남한의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측우기와 의학서(향약집성방), 거북선, 평양 보통문, 안견과 김홍도의 그림 등이다. 평양의 보통문을 제외하고 남한의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문화재이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사 서술 내용과 등장하는 문화유산의 내용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안학궁이나 대성산성, 평양 보통문, 묘향산 보현사 등은 남한 학생들에게 생소한 문화유산이지만 이는 국토분단에서 비롯한 접근성의 한계에서 생겨난 차이일 뿐, 정치, 사상적으로 민감한 차이점은 아니다.

다만 북한은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불교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봉건통치배들이 불교를 퍼뜨리고 부처의 도움으로 봉건몽골의 침략을 막아보겠다는 허황된 생각'에서 만든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묘향산 보현사 등 불교 문화유산의 건축학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불교를 지배계급의 종교라고 간주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에서 기인한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그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박재영은 『조선력사』가 상당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유산과 옛 이야기들을 공평하게 소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남북한 문화사 이해의 공통점은 공동역사교과서 편찬의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육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한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 남과 북 모두 민족주의적 가치를 중요시하며, 자부심의 근원을 우수한 민족 문화에서 찾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 각 장 첫마디에 등장하는 지도자의 말은 역사 교육이 학문적으로 독립된 위상을 가지지 못하는 북한의 현실을 보여준다. 인물에 대한 긍정, 부정적인 평가가 이미 교과서 본문에 담겨있는 것을 통해 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 북한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 교과서가 한 국가공동체의 과거뿐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는 창인 이유이다.

때아닌 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논의가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거진 30년 동안 현장의 역사 교사로 재직해 온 한 교사는 "입시를 위한 등급을 맞추려다 보니, 수박 겉핥기 식의 암기 위주 교육이 이루어진다"며 토론과 성찰이 사라지는 교실의 풍경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반도 북쪽의 학생들에게 역사적 사건과 인물 대한 자유로운 토론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해묵은 이념논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한반도 남쪽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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