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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8일 11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18일 14시 12분 KST

[공짜 영어 스쿨] 스티븐 킹에게 영어를 배우다

킹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영어를 배웠다. 정말 감사한 것은, 내겐 그것이 공부가 아니었다. 그냥 현실 도피 수단으로 재미난 영어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원서를 1년에 100권 씩 읽어대니 어느 순간 영어가 업그레이드 되더라. 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나의 문장력에 감탄하더라. 생각해보라, 한국에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데 오로지 조정래라는 작가가 좋아서 그의 작품 전권을 읽고 태백산맥 속 염상진의 말투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한국 3M 근무시, 본사 직원들 중엔 킹의 애독자가 많았는데 그들은 다들 날더러 Amazing! 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공짜 영어 스쿨] 35. 스티븐 킹에게 영어를 배우다

대학 시절, 영어 회화 교재 한 질을 통째로 받아쓰고 외운 덕에 영어 리스닝의 귀가 틔었다. 극장을 찾아다니며 자막을 보지 않고 미국 영화를 보는 맛에 빠져있던 나는 91년 '미저리'라는 영화를 봤는데, 스멀스멀 밀려오는 공포가 압권이었다. 영화의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였는데, 그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들이 다 대박이더라.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나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등. 초보 회화를 문장 암송으로 뗀 터라, 영화를 보다가도 멋진 대사가 나오면 외우고 싶었는데, 극장에서는 받아적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찾아 용산 미군 부대 앞 헌책방을 뒤졌다. 거기서 서가 한 칸을 빼곡해 채운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만났다.

좋은 영화 뒤에는 좋은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상영 시간의 제약 때문에 소설 속 성격 묘사나 배경 같은 디테일을 다 살릴 수 없다. 영화가 재미있다면 원작 소설을 찾아 읽으면 더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경우, 나중에 영화를 보고 실망하기 쉽다.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해석과 감독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영화로 본 작품을 영어 원문으로 읽으면 진도도 잘 나간다. 모르는 단어나 이해 안되는 문장이 있어도 전체 줄거리를 알고 있기에 넘어가도 지장이 없다. 영화 원작 소설 읽기, 다독의 비결이자, 즐거운 영어 공부 방법이다.

김영로 선생의 '영어 순해'라는 책을 공부한 후, 영어 문장을 읽을 때, 의도적으로 영어 문장 순서대로 해석하려고 했다. 영어 문장을 끝에서 역순으로 해석해 버릇하면 소설을 읽을 때 흐름이 끊겨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다. 의미 단락 별로 문장을 끊어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사전을 찾지 않고 계속 읽어나갔다. 이러한 순해 습관은 훗날 동시통역을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사변적이지 않고,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전개가 빠르다. 그의 작품이 헐리웃 영화로 히트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영어 공부에는 재밌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도움이 된다. 셰익스피어나 고전을 읽으면 지루해서 진도가 안 나간다.

영문 페이퍼백의 경우, 책이 작고 가벼워 언제든 들고 다니며 읽기에 참 좋다. 책 표지 뒤에 나오는 저서 목록을 보고 다음책을 정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이어 읽으면 작가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져 갈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스티븐 킹 소설이 재미있었던 것 이유가,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공포의 소재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Carrie 따돌림 당하는 옆집 소녀.

The Shining 작가로 고생하는 우리집 아빠.

Cujo 광견병에 걸린 우리집 개.

Christine 살인기계로 변한 우리집 차.

Pet Sematary 좀비가 되어 돌아온 고양이.

Thinner 다이어트로 살이 과하게 빠지는 우리 남편.

IT 아이들의 친구 어릿광대.

Misery 나의 넘버 1 팬.

Needful Things 동네에 새로 생긴 만물상.

등등등.

탁월한 작가는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공포를 지어낸다.

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82년에 나온 중편집 Differernt Seasons다. 여기에 킹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아끼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다. (이하 '쇼생크 탈출')

'사계'는 봄의 희망, 여름의 부패, 가을의 추억, 뭐 이런 식으로 부제를 붙인 4편의 소설이 실려있는데, 그 첫 작품이 봄의 희망, 쇼생크 탈출이었다. 영화도 좋지만, 진짜는 책이다. 원작을 꼭 한번 읽어보시라.

대학 3,4학년 시절, 왜 그렇게 스티븐 킹의 소설에 빠졌을까? 현실 도피에는 스릴러나 공포 소설만한 게 없다. 당시 나의 삶은 너무 지루하고 괴로웠다. 석탄채굴학이니, 석유시추공학이니, 재미 없는 전공 필수 과목을 들으면서, 늘 괴로웠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나는 공돌이의 육체 안에 갇힌 작가 지망생이었다. (나중엔 글 쓰는 재주가 없는 걸 깨닫고 TV 연출가로 진로를 선회하지만. ^^)

소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 듀프레인의 탈옥기는 정말 감동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 가석방도, 무죄 판결도, 무작정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선의는 없다. 자신의 탈출구는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킹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영어를 배웠다. 정말 감사한 것은, 내겐 그것이 공부가 아니었다. 그냥 현실 도피 수단으로 재미난 영어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원서를 1년에 100권 씩 읽어대니 어느 순간 영어가 업그레이드 되더라. 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나의 문장력에 감탄하더라. 생각해보라, 한국에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데 오로지 조정래라는 작가가 좋아서 그의 작품 전권을 읽고 태백산맥 속 염상진의 말투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한국 3M 근무시, 본사 직원들 중엔 킹의 애독자가 많았는데 그들은 다들 날더러 Amazing! 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다독의 힘을 믿는다. 아니, 무엇이든 즐겁게 꾸준히 하는 것의 힘을 믿는다.

MBC 입사하고 20년 가까이 영어를 쓰지 않아, 이제는 영어 소설을 읽는 속도가 느리다. 그래도 외국 배낭 여행을 나가면 다시 영문 소설을 꺼내든다. 영어로 소설을 읽다보면 다시 회화 감각도 살아난다.

최근 읽은 4편짜리 중편집이 Full Dark, No Stars 다. '사계'를 기대했더니 약간 아쉽다.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그럼에도 나는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를 여전히 좋아한다. 아니, 요즘은 인간으로서 그를 존경한다. 그는 이미 1970년대 히트친 소설 몇권을 내어 영화 판권까지 챙겼다. 미국에서 최고 수입을 기록한 작가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소설을 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쉬울 것 하나 없으면서도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딛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꾸준히 낸다. 초년의 빛나는 성공보다 노년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더 부럽다.

젊어서는 스티븐 킹에게 영어를 배웠고, 나이 들어서는 그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그의 소설은 이제 내게 너무 무섭다. Full Dark No Stars가 그랬다. 별빛 하나 없는 캄캄한 암흑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나이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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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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